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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May 20. 2024

아들과 인생동반 여덟 번째 이야기

 운동으로 대화하는 아들

아들은 고학년이 되면서 ‘떠벌이’라는 별칭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말수가 줄고 조용해졌으며 에너지나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었다.   

   

과묵해져 가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러니하게 여자 아이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자모들을 만나면 아들의 근황을 듣곤 했는데, 아들의 인기가 많다고 귀띔을 해주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까불고 귀찮게 구는 친구보다 말없이 조용한 아들이 편하게 느껴진 듯하다.

5학년 때는 여자친구들의 질투가 극에 달아 아들이 낭패를 겪는 사건도 있었다. 

여자 아이들이 신발을 숨겨서 슬리퍼를 신고 오는가 하면 가방을 나무에 달아버려서 울고 온 적도 있었다.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에 대처 방법을 몰라 힘들어하는 날들도 있었다.

아들의 관심 분야와는 전혀 다르게 이성 친구들은 다가왔다.


아들은 그리기에는 소질이 없었으나 교내 그리기 대회에서 창의상을 받아왔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자 랩장르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를 지어 엄마의 귓가에 들려주고 

제법 랩가수처럼 손짓을 하는 시늉을 보여줄 때는 어이없게 지켜봐야 했다.

그것이 무슨 노래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때부터 홀로 방에 들어가 조용히 뭔가를 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최근에 아들의 소지품들을 정리하면서 아들의 취미생활을 들춰볼 수 있었다.

아들은 ‘어린이 동시집’을 만들어 자신만이 소장하기도 했다.  

 

  

아들에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동네에 친구가 없었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통학을 했기 때문에 사귈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다.

아들이 다니던 교대부설초등학교는 ‘토요휴업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였다.

그래서 놀토(노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는 것이 樂인 아이였다. 

우리는 휴업일인데도 학교에 데려다주는 열성을 보였다.  

아들은 미리 약속한 친구들과 만나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야구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고 신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들은 모든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5학년 때부터는 ‘학교 축구팀’에 선발되었다.

‘목포축구센터’ 개관 첫해에 새롭게 개장한 시설에서 초등학교 대항 축구경기를 했다.

응원하며 자녀들을 격려하는 자모들의 열성 가운데 나도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축구공을 잡으면 끝까지 차면서 달려가는 모습에서 승부 근성을 보았다.     

 

친구들끼리 팔씨름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집에 와서도 팔씨름 연습을 했다. 우리는 힘없이 당하기만 했다.

근력을 기를 수 있는 완력기를 사서 손의 근력을 기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아령을 골고루 구입하는 열심을 보였다. 0.5kg, 1kg, 3kg,.. 점점 늘어갔다.

그때 근력 기르기에 열중했던 것이 아들의 키가 예상했던 것보다 작게 자란 원인이 되었다고들 한다,

무엇 때문에 열성인지 알 수 없었으나

뭔가에 열정을 다할 줄 아는 아들과 함께 우리도 날마다 꿈꾸는 날들이었다.  

    

아들은 태권도장에 다녔다. 

3학년 때부터 자기를 보호하고 운동신경을 자극하고 성취동기를 경험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급수 레벨업 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잘 해냈다.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고 의욕도 보였다. 

그러나 선수로서 욕심은 없는 것 같았고, 

고학년이 되면서 학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태권도장을 끊었다.

그래도 6학년 때까지 꾸준히 하였으니 웬만한 실력은 되었다.     


6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중학교 배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들은 야구에 재미를 붙여 틈만 나면 야구를 하러 다닐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요청했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아들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안 돼, 넌 이미 늦었어.”라고 말하며 단념을 설득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나의 대화 방법은 달랐다.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우리는 무조건 반대하거나 좌절시키는 대화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꿈을 이루기 위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점검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정보를 수집했다.

같은 아파트에 인근 대학의 야구팀 감독이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분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고 아들의 실력을 테스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은 일주일간의 테스트를 하는 도중 객관적인 자신을 발견했고,

허무하고 허탈하게 스스로 야구선수의 꿈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선수가 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야구는 계속했다.

얼마 동안, 다른 것에 열정을 빼앗기기 전까지 생활야구단에서 주 1회 야구를 배우며 자신만의 욕구를 해소했다.

마침 교회에서는 생활야구단을 조직했는데 청소년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수가 되었다. 

남편 또한 교회야구단 선수였는데 아들과 함께 하는 것에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른들 사이에서 하는 야구 경기에 싫증을 냈고, 더 이상 야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선수가 부족하다고 아들에게 시합 참가를 사정하는 남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아들이 안타깝게 보이기도 했다.

     

아들은 중학교에 가서 학교 생활농구팀에 들어갔다. 

전문 선수는 아니지만 열과 성을 다해 참여했다.

지역대회가 있다고 해서 응원하러 갔다.

경기도중 열심히 최선으로 뛰어다니는 아들이 가장 크게 보였다.

막바지 아들은 극적으로 경기 종료 1초 전 3점 슛을 넣었다. 

TV중계에서 보았던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으로 아들의 팬이 되었다.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들은 주말에는 친구들과 만났다. 가족들은 뒷전이 되어갔다. 

학업에도 열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한 텀을 넘기고 있었다.

농구, 축구, 그리고 컴퓨터 게임이 그들의 대화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우정을 쌓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았고, 행복해했고, 즐길 줄 아는 아이였고 엄마는 팬이었다.


그런 아이가 노래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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