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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Jan 06. 2022

소중한 무력감

무력감은 소중하다. 어떤 일을 처음 시도하거나, 이미 썩 잘 하는 일의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어 더 잘 하려고 할 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바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절망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력감을 피하려고 한다. 그 결과 즉각적이거나 확실한 즐거움만 쫓아다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반복한다. 





무력감을 피하려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진지하게 배우지 못한다. 처음 일본어를 배우거나, 작문을 연습하거나, 그림을 시작하면 누구나 바보가 된다. 머리가 좋아서 처음치고는 썩 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본격적인 수준에 들어가면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을 피할 수 없다. 





무력감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력감만 들면 이리저리 다른 것들로 관심을 옮기는 사람은 못 하는 것은 없는데 딱히 뛰어나게 잘 하는 것도 없게 되어버린다. 또는 스스로의 기준을 낮춤으로써 무력감을 상쇄시키기도 한다. 나는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이 정도만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 그냥 소소한 인생 즐기겠다는데, 하고. 두 가지 모두 무력감이 싫어서 무력한 결말을 맺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무력감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가 바보같다는 느낌의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가 계속해서 안개속을 전진한다.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남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바보같이 무력하다는 느낌도 여전하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겸손을 배운다. 겸손을 배워가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1년, 3년, 10년이 흐르고 난 뒤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경지에 다다른다. 주위 사람들은 10년 전만 해도 나랑 비슷하던 녀석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거나, 놀라기조차 자존심 상해 못 본 척 하면서 역시 돈이 최고라던가 맛있는 거 먹는 게 행복이라며 자위한다. 





때론 무력감이 너무 깊어 무너질 수도 있다. 인간은 그럴 때 기도라는 걸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앞에서, 도저히 끊지 못하는 갖가지 중독 앞에서,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성격 앞에서, 청천벽력같은 불치병 선고 앞에서, 가족의 수술실 앞 의자에서, 문을 두드리는 나치 병사들을 피해 다락방에 숨어서.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고 죽는 것이 당연한 그 때,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의 무력함을 절절하게 시인하는 그 순간, 기적은 찾아온다. 아무런 무력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적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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