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땅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가 이 땅 위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고 해도. 그건 반쯤은 자기연민이고 반쯤은 착각이다.
지금은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사우나를 좋아했었는데, 반복해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 보면 가장 뜨거운 열탕에서도 꽤 오래, 그러니까 한 15분 정도는 앉아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열탕에 앉아있다가 보면 온탕에서 건너오던 사람들이 한쪽 발만 담궈보고는 앗 뜨거 하고 돌아가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니 45도 목욕탕도 뜨겁다고 못 들어가면서 불못은 어떻게 들어가려고들 그러지?’ 였다. 누군가를 특정해서 떠오르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 해도 살아있다면 적어도 하루에 일정량 이상의 음식을 먹고 있을 것이고, 비바람과 눈보라를 피할 지붕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저체온증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의복을 입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가끔은 달달한 간식도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어쩌다 한 번씩은 단백질이 풍부한 안주에 소주도 한 잔 해가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사실 대한민국 기준으로 따지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보다는 훨씬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사는 것이 지옥같아서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 40명이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말한다. 꿈을 잃어버렸다고. 세상이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아갔다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남들보다 특별히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고. 그래서 이 세상은 신이 타락한 인간을 벌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지옥이 틀림 없다고.
하지만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지옥이라는 단어의 ‘오리지날 의미’를 살펴보면, 모든 욕구는 그대로인데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곳, 온몸이 불에 타는 고통을 영원토록 느껴야 하는 곳이다. 목이 사막처럼 타들어가도 물 한 모금 축일 수 없고, 미치도록 배가 고파도 쌀 한 톨 먹을 수 없다. 성욕도 그대로이고 자존심도 그대로인데 벌거벗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영원토록 만인에게 노출해야 하는 곳이다. 죽고 싶어도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 불에 타도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살갖에서 기어나오는 구더기들을 끝없이 바라봐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지옥이라는 멀쩡한 단어의 원래 뜻을 편리하게 삭제하고는 마음대로 여기저기 갖다 붙이고 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아플 때, 사기나 배신을 당했을 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가지고 있던 것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했다’고 말하곤 한다. 잘못된 태도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분명한 것은, 어떤 고통을 당했든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면 지옥의 근처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한 고통은 ‘양심과 인격을 형성하기 위한 산고’에 불과하다. 지옥은 커녕 ‘천국으로 가는 길 안내자’가 고통이다. 고통을 못 느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될까. 아마 온 세상을 정복하려 들 것이다.
“또 천국은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으니라.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숨겨 두고 그것의 기쁨으로 인해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 마태복음 13:44 -
이 성경 구절에서 ‘밭’은 세상 혹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다. 밭(세상)은 흙(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 흙속에 보석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 한 사람이 보물을 남들 모르게 숨겨두고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밭 전체를 사버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목숨을 값으로 주고 이 세상 안에 숨겨둔 보석들을 취한 일,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누가 보석인지는 숨겨두었으므로 흙과 섞여서 잘 알 수 없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맞바꾼 밭이다. 지옥이 아니다. 반짝거리는 보석들이 흙속에 여기저기 파묻혀 있는 밭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가치없는 흙밭이지만 그 속에 천국이 숨어있다.
그럼 보석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흙속에서 모진 압력과 시간을 견뎌가며 만들어진다. 압력이 없는 지상이나 꽃밭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옥은 밭을 값 주고 산 사람이 목표한 만큼의 보석을 수확하고 나면 갈아엎어 버린 뒤 용광로 속에 넣어 영원히 보석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만세에 공표하는 박물관이다. 밭 전체를 샀으므로 보석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흙의 처리권한도 그 사람에게 있다. 보석이 만들어지는 땅과 용도폐기되어 불에 녹여지는 흙을 혼동하면 안 된다.
밭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고통을 양심과 인격을 다듬는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평하게 되면 보석이 되지 못하고 흙으로 남아 용광로에 넣어지게 된다. 이 세상은 지옥이 아니다. 보석밭이다. 나도 당신도 그 증거가 될만한 사람을 몇 명쯤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