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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Mar 21. 2022

페미니즘의 기원

대한민국의 여성해방은 일제에 의해서였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집에만 묶여있던 여자아이들에게 ‘신식교육’을 제공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일제는 조선의 신분제(노예제)를 철폐해서 남녀를 불문하고 상놈 출신에게도 능력에 따라 출세길을 열어주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인들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억압받는 조선의 노비들과 여성들을 가엾게 여겨 ‘옳은 일’을 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서는 많은 일꾼이 필요한데 그런 인력들을 죄다 양반 사대부가 노비로 소유하고 있으니 신분제를 철폐해야 했고, 노비들 중 여성인력이 절반인데 당연히 여성해방도 필요했던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소위 ‘민주주의’역사를 들여다 봐도 스토리는 똑같다. 역사의 어느 대목에서도 인류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예해방이나 여성해방을 한 일이 없다. 지방마다, 집집마다 있던 농토에서 농사를 짓던 것이 산업혁명을 맞이해 도시의 공장에서 대량의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공장의 경영자와 투자자들이 나라의 제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뿐이다. 언론과 정치인들, 시민운동가들이 매수되었고 그렇게 산업혁명과 함께 노예제가 철폐되고 여성해방이 이루어졌다. 




바보같은 대중들은 ‘민주주의’라는 허상을 진짜라고 믿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일은 단한번도 없었다. 지방의회 의원에서 대통령까지,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천억까지 선거자금이 필요한 시스템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은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국민중에 선거 출마를 위해 수십억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죽기전에 그만한 돈을 모아보지도 못한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선거란 물주들의 잔치에 불과한 것이다. ‘금권주의’가 정확한 명칭에 더 가깝다. 우리가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환상이다. 




가정에, 지방 호족에게 묶여있던 인력을 빼앗는 과정에서 자본가들이나 국가권력이 노예해방과 여성해방이라는 미명을 내걸었고, 이 사심 가득한 글로벌 인권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다. 지주에게 묶여있던 노예들은 이제 도시로 나와 자본가들의 노예가 되었다. (자유시민이라 불리우는 노예가 된 부분이 특이하다.) 해방을 맞이한 여성들은 소수 자본가 남성들의 위안부가 되었다. 돈 좀 써주고 사귀는 척 해주면 얼마든지 데리고 잘 수 있고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 예전처럼 첩으로 들여서 먹여살릴 필요조차 없어졌다. 질리도록 여러명 데리고 놀다가 헤어지면 끝인 시티(City) 하렘이 열렸다. 때마침 자본가 남성들의 시녀인 여성인권 운동가들이 여성들에게 섹스를 '가볍고 자유롭게' 하라고 바람을 잡고 나섰다. 처녀성은 소중한 게 아니라 '떼버려야 하는 딱지'라고 헐리우드를 통해 세뇌했다. 여성해방만세! 를 외치는 자본가 남성들에게 최대의 악몽은 세상 모든 여성이 스물 넷에 시집가버리는 일이다. 




그런데 사심 가득한 사람들의 눈에 한 가지 문제가 눈에 띄었다. 기껏 여성해방이랍시고 교육 시켜서 공장으로, 사무실로 배치했던 여성 노예들이 결혼과 동시에 탈노예를 선언하는 것이다. 집값이 저렴하니 남편이 혼자서 번 돈으로 단칸방에서 시작해 십수년이면 번듯한 방 세칸짜리 주택을 보유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라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일찍 은퇴하고 그만큼 남자 인력들의 몸값이 비싸지고 만다. 반대로 여자들이 결혼을 안하고 그대로 남아서 일을 하게되면 잠재적인 인력풀이 두배가 되니 그만큼 임금인상의 필요성이 낮아지게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여자들의 결혼은 막고, 집값은 올려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여성인권 운동가들을 시켜서 '여자 인생에서 커리어가 최고다', '가정은 족쇄다'라고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70-80년대에 행복한 부부가 많았을까 지금이 많을까. 간통을 봐도, 폭력을 봐도,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봐도, 우울증을 봐도 지금이 훨씬 불행하다. 싱글여성들은 어떨까.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절대다수는 젊은 싱글 여성들이다. 그들의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비율도 끝도없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들은 외친다. ‘여성의 인권이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과연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더 독립적이고 더 당당해지면 여성들은 행복해질까? 평생 먹고살 돈이 주어지고 남녀가 모든 부분에서 정확히 5:5가 되면 여성들은 행복할까? 




과학적으로 보면 남자와 여자는 명확하게 다르다. 많은 관점에서 ‘동등’하지 않다. 가령 같은 몸집과 운동 정도를 가정해도 남자의 물리적인 힘이 여자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다. 특히 상체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공격적인 동작에 남자의 골격과 근육은 수십배의 효율을 내도록 특화되어 있다. 골밀도가 다르고, 뼈의 생김새와 비율이 달라서 여자의 경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지렛대 원리를 사용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자의 경우에는 골격 자체가 남자보다 ‘유연하고 보기 좋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남자의 뼈대는 힘쓰는 용이고 여성의 뼈대는 섬세한 일 용도나 관상용이다. 심지어 해골을 갖다가 봐도 여자 해골이 더 곡선이 유연하고 아름답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물리적인 특성뿐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남녀는 명확하게 다르다. 아이큐(지능지수)를 조사해 보면 국적이나 인종을 불문하고 남자의 분포도가 더 팻테일(Fat Tail)이다. 최상위와 최하위에 분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기다. 반대로 여자의 아이큐 분포는 중간에 더 몰려있다. 즉, 어딜 가나 천재도 남자가 많고 바보도 남자가 많다고 보면 된다. 여자는 아무나 뽑아도 중간 이상은 갈 확률이 높다. 천재 남편들이 앞장서고 바보 남편들이 그들을 도와 밖에서 일할 동안 아이들은 중간 이상은 가는 엄마들 품에서 말을 배운다. 그래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모국어(Mother Tongue)라고 부른다. 부국어(Father Tongue)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천재 아빠한테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거나 바보 아빠에게서 바보같은 소리를 듣고 자라는 것보다 아이 입장에서 훨씬 낫다. 




정신적인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자는 공간과 패턴을 인식하고 그를 기반으로 논리적 추론을 하는 능력 면에서 뛰어나다. 그래서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편, 남자와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여자의 정신적 특징은 수용성(Agreeableness)이다. 여자쪽이 포용력과 공감능력이 더 뛰어나다. 아마 이 부분이 보이스피싱 사기에 여성이 더 취약한 이유일 것이다. 남자는 ‘그러므로’나 ‘그래서’에 강하고 여자는 ‘그래도’와 ‘어쨌든’에 강하다.




이렇게 남녀는 애초부터 서로 다르고, 그래서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남자팀’, ‘여자팀’ 나눠서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고 논쟁을 하는 일은 굉장히 한심하고 바보같은 일이다. 인서울 대학교 커트라인 안에 여자가 더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고 스카이 최상위 학과에 남자가 훨씬 많은 것도 ‘자연적인’ 일에 불과하다. 어느쪽이 더 똑똑하다거나 할 수 없는 문제다. 여자들이 보이스 피싱에 잘 속는다고 해서 남자들이 그걸 두고 바보라 할 수 있는가. 여자들의 그 논리를 벗어난 포용력과 공감능력이 주는 위안이 없다면 남자의 인생은 죽음의 사막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도 페미니즘도 일부의 사실에 근거한 사심이 담긴, 꿍꿍이가 따로 있는 선동에 불과하다. 앙꼬없는 찐빵이고 속없는 김밥이다. 민주주의에는 ‘민주’가 없고 페미니즘에는 ‘페미닌’이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과학적인 여성성(페미닌)의 특질과 장점들을 내다버리고 남성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여성의 해방이자 성공인듯 얘기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토끼같은 마누라와 자식들 때문이지 그것으로 대단한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렇게 남성들도 하기 싫어하는 직업전선에서의 전투를 왜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강요하는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여자 아이들에게 남성호르몬을 맞고 성전환 수술을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페미니즘은 매스큘리니즘(Masculinism)이다. 여성성은 열등하고 가치 없는 것이므로 여성 모두가 남성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남성들의 남성성은 해로우므로 거세해야 한다고 하는 괴랄맞은 주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은 ‘과학적인 여성성’이 뚜렷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과학적인 남성성’이 뚜렷한 남자를 좋아한다. 일부는 속일 수 있어도 전체를 속일 수는 없다. 선동에 낚이는 사람만 바보되는 것, 보이스피싱처럼 걸릴 사람은 걸리라는 것, 그것이 지금의 페미니즘이고 남녀대결구도이다. '자유', '해방'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물고 '여자답다'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켜댄 결과는 어땠는가. 여탕에 남자가 당당하게 돌아다니고, 남녀 화장실이 통합되고, 여성 스포츠 경기에 남자들이 출전해서 메달을 싹쓸이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아직도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문제라고 항변하는 보이스피싱 피해여성 같은 세뇌된 싱글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과거의 전통적인 여성억압은 ‘여성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가 적고,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지고, 논리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여성이 열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중간이상은 가는 엄마의 품에서 말을 배우고, 논리나 잘잘못을 떠나 포용해주고 공감해주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는 남자들이 할 소리는 아니다. 그런 여자를 만나면 남자는 목숨을 바쳐 사랑하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 그런 남자를 위해 여자또한 못 할 일이 없다고 다짐하게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지점에서 인류의 시작과 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가장 숭고한 사랑은 '자유'나 '쾌락'이나 '행복' 따위가 아니라 '책임'과 '희생'에 맞닿아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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