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불리수(內不離秀)』 | 조선 선비 이연의 가문소설 큐레이팅
세상에는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깊이 울림을 주는 사랑 이야기가 있소. 내가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그러하오.
1989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대만의 한 여자 유도 대표가 북한의 스포츠 영웅을 보고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오. 경기가 끝난 뒤, 호텔 로비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던 여인은 조심스레 기념사진을 청했는데, 셔터가 눌리는 순간 북한 영웅이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지요. 그 순간, 국적도 언어도 뛰어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소.
이듬해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키워 갔으나, 시련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소. 북한 선수가 한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탄광으로 끌려간 것이오. 그러나 그 절망은 오히려 그의 삶을 뒤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으니, 마침내 탈북을 결심한 것이오.
그리고 1991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석한 북한 선수는 달리는 기차에서 몸을 던졌고, 마침내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은 가정을 이루었지요. 세월이 흘러 노년을 함께 맞이한 두 사람에게 누군가 물었소.
“다시 태어나도 서로를 만나고 싶으십니까?”
그때 여인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지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을 꼭 만나고 싶어요. 다만, 그땐 제가 남자이고, 여기가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그 한마디에는 둘 사이의 깊은 사랑과 함께, 여자로서 살아온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소. 부부가 다음 생에 성별을 바꾸어 다시 태어난다면, 과연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요.
이제, 전생에서 맺어진 인연이 다시 엮이는 <한조삼성기봉> 속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당나라 현종 연간, 오랫동안 막역하게 지내온 네 벗이 있었으니 설흠, 위성, 조희, 지명이었다. 어느 봄날, 소상강(瀟湘江)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기던 이들은 잠시 잠든 사이 똑같은 꿈을 꾸고 깜짝 놀라 깨어났다.
얼마 뒤, 지명을 제외한 세 벗은 각각 딸을 얻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하자 지명이 세 벗을 불러 딸들을 보여 달라 청했고, 며칠 뒤 세 아이가 부친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에 모였다. 아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위성의 딸 옥희는 이제 막 젖을 뗐건만 온몸에서 성덕(盛德)과 광휘(光輝)가 빛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희의 딸 수아는 맑은 눈동자와 새하얀 치아를 지닌 절세미인이었다. 그러나 설흠의 딸 여주는 얼굴이 못났을 뿐 아니라 몸이 비대해 걸음조차 버거워 보였다. 게다가 모친이 딸의 추한 외모를 가리려 입힌 사치스러운 옷과, 얽은 뺨을 가리기 위해 바른 짙은 분은 오히려 아이의 모습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어, 마치 잔나비를 목욕시켜 관(冠)을 씌운 듯했다.
세월이 흘러 세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자, 미색으로 이름난 위옥희와 조수아는 황제의 셋째 아들 강왕(康王)의 비(妃)와 부빈(副嬪)으로 간택되었다. 그러나 설여주는 모친이 딸의 용모를 부끄러워해 집안 깊숙이 숨겼고, 매파들이 가져오는 혼담도 모두 거절해 혼인은커녕 세상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매파들 사이에서 설여주가 ‘감추어진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이 돌더니, 그 이야기를 들은 강왕이 여주를 후궁으로 삼겠다고 고집을 부려 황제의 윤허까지 받아낸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설흠은 깜짝 놀라 딸이 황자의 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강왕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벗들은 소상강에서 꾼 꿈이 두 사람의 인연을 예고한 것이라며 이 혼인을 하늘의 뜻으로 여겼고, 설흠은 결국 여주를 궁으로 들여보냈다.
혼인을 며칠 앞둔 강왕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절세미인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흉측한 추녀로 변하는 꿈이었다. 덕분에 기대를 내려놓았던 탓인지, 강왕은 설여주의 실물을 보고도 불평 없이 후궁으로 맞았다.
더 기묘한 일은, 평소 질투가 심하던 조수아가 설여주에게는 전혀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무렵, 조수아는 궁에서 홀연히 사라진 위옥희를 대신해 강왕의 정비가 되었고, 첫딸에 이어 남녀 쌍둥이까지 낳았다. 그녀는 남편이 다른 여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기를 바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당당한 왕의 조강지처요, 다른 여인들은 한낱 찬바람에 시든 꽃과 들풀에 불과하니 감히 나를 넘볼 수 없다. 만약 저들이 항거하여 옛날 척부인이 한 태조를 홀린 것처럼 행한다면, 나 또한 여태후처럼 칼을 들어 저들을 인간 돼지로 만들 것이다.”
그런 조수아가 경쟁자인 설여주를 따뜻하게 대했다는 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설여주의 궁중 생활이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낯선 환경과 엄격한 규율,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로움이 그녀를 괴롭혔다.
혼인 후 강왕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고, 이내 산적을 토벌한다며 군사를 이끌고 궁을 떠나버렸다. 구중궁궐에서 설여주를 챙겨주는 사람은 오직 조수아뿐이었다.
반년 뒤, 설여주가 궁중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궁 안이 갑자기 술렁였다. 남서 지방에서 도술을 부리며 백성을 괴롭히던 영천의 무리를 평정하고 돌아온 강왕이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한 여인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 여인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갖추어, 나타나는 순간 궁중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몇 해 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강왕의 정비 위옥희였다는 사실이었다.
궁은 순식간에 놀라움과 기쁨으로 들끓었고,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위옥희와 조수아를 각각 ‘남궁우비(南宮右妃)’와 ‘북궁좌비(北宮左妃)’로 책봉해 동등한 반열에 올렸다. 그러나 이 소식을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이는 다름 아닌 조수아였다. 삼 남매를 낳아 황실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려 온 그녀에게 정비의 귀환은 단순한 재회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위옥희와 조수아가 궁에 들기 전, 이웃에는 병부상서를 지낸 양의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현종의 총애를 받던 양귀비의 일가로, 외아들 양재왕의 혼처를 찾던 중 절세미인으로 이름 높던 위옥희나 조수아를 며느리로 맞이하고자 했다. 그러나 위성과 조희는 양의의 청혼을 단칼에 거절했고, 두 소저는 결국 강왕의 아내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의와 양재왕 부자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마침내 도술을 부리는 백운도사를 앞세워 대낮에 궁궐에 침입해 위옥희를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행히 위옥희는 선녀(仙女)의 도움으로 백운도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이후 은거하며 도술과 의술을 익혔다. 그러다 남서 지방에서 도적을 토벌하던 강왕을 도와 공을 세우면서 마침내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한편, 납치한 위옥희를 잃은 백운도사는 길에서 주워 온 걸인 소녀 윤교란을 위옥희로 속여 양재왕과 혼인시켰다.
위옥희의 귀환 소식이 백성들 사이에 퍼지자, 윤교란을 진짜 위옥희라 믿은 양의는 분통을 터뜨리며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양재왕은 이미 윤교란에게서 아들을 본 터라,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들 부자는 다시 백운도사를 앞세워 이번에는 조수아 납치를 꾸몄다. 불나방이 스스로 불길에 뛰어드는 격이었다. 그러나 조수아는 꿈속에서 신인(神人)의 경고를 받고 미리 위험에 대비했다. 영리한 궁녀 하나를 자기처럼 꾸며 두고, 자신은 설여주의 처소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백운도사는 궁녀를 조수아로 착각해 납치하여 양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그 궁녀는 영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곧장 양의의 집에서 탈출한 뒤, 이들이 저질러 온 악행을 낱낱이 밝혀 황제에게 고한 것이다.
분노한 황제는 양의와 양재왕 부자를 사형에 처하려 했으나, 승상 이임보와 양귀비의 사촌 오라비 양국충의 간청으로 두 사람은 목숨만 건진 채 절도에 유배되었다. 이때 백운도사는 요술을 부려 감옥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양의와 양재왕 부자로 인해 어수선하던 궁중도 잠시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설여주의 앞날에는 오히려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다. 환궁한 강왕은 여전히 설여주를 찾지 않았고,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눈인사만 건넬 뿐 곧장 위옥희의 처소로 향했다.
조수아 역시 위옥희가 돌아온 뒤로는 설여주에게 미소 한 번 보이지 않았고, 궁인들 또한 그녀의 눈치를 보는 통에 궁 안은 한층 더 살얼음판이 되었다. 여기에 위옥희가 강왕에게 세 명의 미인을 후궁으로 추천한 일까지 겹치며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분노한 조수아는 점점 거칠어졌고, 설여주는 궁중에서 설 자리를 잃은 채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상황은 뜻밖의 인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조수아의 모친이 유배지를 탈출해 신분을 속이고 접근한 양재왕과 윤교란 부부를 조수아 곁에 바짝 붙여 둔 것이다.
이들은 은밀히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미혼단(迷魂丹)’을 음식에 섞어 조수아에게 먹였다. 점차 이성을 잃은 조수아는 위옥희는 물론 강왕 앞에서도 거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한편, 백운도사와 양재왕, 윤교란은 허약하던 황태자의 침전에 저주가 깃든 물건을 숨겨 위옥희를 모함했고, 나아가 강왕의 목숨까지 노리다가 발각되었다. 결국 윤교란은 참형을 당했고, 홀로 달아난 양재왕은 조수아의 오라비들이 반역을 꾀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위조해 조정에 고발하는 악행까지 저질렀다.
그러나 위옥희의 남동생이자 부마인 위자경이 나서 조씨 가문은 화를 면할 수 있었고, 양재왕은 끝내 조희에게 붙잡혀 경사로 끌려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조수아는 마침내 위옥희와 화해했고, 긴장과 불안으로 얼룩졌던 궁중에도 조금씩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뜻밖의 곳에서 다시 파란이 일어났다. 황제를 대신해 조정을 장악하며 권세를 휘두르던 승상 이임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후 양국충을 비롯한 양귀비 일가는 더욱 기세를 올려, 현종을 부추겨 강왕을 비롯한 장성한 황자들을 봉국(封國)으로 내쫓았다. 머지않아 범양절도사 안녹산이 반역을 일으키면서 천하는 다시 큰 혼란에 빠졌다.
현종은 장안을 버리고 서촉으로 몸을 피하며, 황자들 가운데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이를 추대해 황위에 올리라 명했다. 또한 신하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토록 사랑했던 양귀비마저 눈물 속에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실연의 아픔은 황제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이 무렵, 봉국인 광평국에 머물던 강왕이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황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당나라 제7대 황제 숙종이었다. 숙종은 안녹산이 죽자 이광필, 곽자의와 함께 잔당을 몰아내고 장안을 되찾았다.
궁으로 돌아온 그는 황후 책봉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침내 숙종은 장자를 낳은 조수아 대신 위옥희를 황후로 삼고, 조수아와 설여주를 각각 귀인과 숙빈으로 봉했다. 이때 숙종은 황후 책립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했다.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듯, 궁에는 두 황후가 있을 수는 없다. 짐이 위 황후를 책립하는 것은 사사로운 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짐의 어린 시절 배필이었을 뿐 아니라, 그 성덕이 태임·태사에 견줄 만하기 때문이다. 조 귀인 또한 짐의 어린 시절 배필이지만, 함께 빈천을 겪거나 간고(艱苦)를 나눈 적은 없으니, 짐에게 한나라 광무제가 음려화를 사랑해 곽 황후의 공을 잊은 허물은 없을 것이다.”
숙종이 위옥희를 황후로 삼았다는 소식을 들은 조수아는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 그녀는 귀인 직첩을 집어던지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탄식했다. 이처럼 실덕이 거듭되자, 숙종은 마침내 조수아와 그녀의 아들 동해왕 부부를 동해로 내보내기로 결심했다.
동해로 향하는 길, 슬픔에 잠긴 조수아는 부친 조희가 남긴 편지를 전해 받는다. 그 편지에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 부친과 그의 벗들이 소상강에서 함께 꾼 기이한 꿈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를 읽은 조수아는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닫는다. 자신과 강왕, 위옥희, 설여주에게 얽힌 사랑과 질투, 배신과 화해가 모두 전생에서 비롯된 인연이었음을.
그리고, 그 깨달음과 함께 <한조삼성기봉>의 서사는 조용히 막을 내린다.
이야기 잘 보셨소? 이쯤 되면 설흠, 조희, 위성, 지명이 동시에 꾸었던 ‘소상강의 꿈’이 무엇인지, 또 어찌하여 당나라 이야기임에도 ‘한조삼성기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오.
그 사연은 이야기의 첫머리에 실려 있소.
소상강에서 풍류를 즐기던 네 벗은 봄바람과 술맛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천상으로 올라가 한 장면을 목격했지요. 찬란한 옷차림의 여인이 옥황상제 앞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소. 바로 신의 없는 남편에게 버림받아 동해에서 쓸쓸히 죽은 곽 황후였지요.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 전생의 원한을 갚게 해주소서….”
그 간절한 기도에 옥황상제의 마음이 움직였소. 곽 황후와 광무제의 성별을 바꾸어, 곽 황후는 당나라 현종의 아들 강왕으로, 광무제는 미녀지만 교만한 조수아로 환생하게 했지요.
또한 곽 황후가 전생에서 자신을 극진히 아껴주었던 시누이, 영평공주 유백희의 환생까지 청하자, 유백희는 위옥희로 다시 태어났소.
허나 어찌 된 일인지 음 황후는 여전히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나 외모가 못생긴 설여주로 환생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네 벗이 소상강에서 꾸었던 그 기묘한 꿈의 전말이라오.
이 작품의 제목 ‘한조삼성기봉(漢朝三姓奇逢)’은 바로 후한의 세 인물, 유(劉), 곽(郭), 음(陰) 세 성씨가 당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 기이한 인연을 뜻하는 것이지요. 이제 이 작품의 서두에 나타난 곽 황후의 사연을 들려드리리다.
“유 씨 집안은 본래 가난했으나 곽 씨는 부귀하여 황녀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의 인연으로 곽 씨는 유 씨 집안에 시집가 작은 초가에서 보리죽으로 연명하며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친정의 재산을 아낌없이 들여 남편의 대업을 도왔으니, 비록 유수에게 천명이 있었다 해도 곽 씨의 내조와 공덕은 작지 않았다. 이렇게 고난을 함께하며 헌신했음에도 훗날 곽 씨는 마치 헌신짝처럼 버림받았고, 그 억울함과 통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폐출된 것만으로도 모자라, 죄 없는 태자까지 폐위되어 동해로 내쫓겼으니 후세 사람들이 가련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신의 없고 불의한 사람으로 광무제를 으뜸이라 할 만하며, 후인들 또한 모두 이를 개탄했다. 비록 음 씨가 황후가 된 것은 천명이었다 하나, 사정이 이러하니 곽 황후의 처지가 어찌 가엾지 않겠는가. 옛말에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월에 서리가 내린다 하였으니, 곽 씨의 한이 천 년이 흘러도 사라질 리 없었다.”
작자는 <옥환기봉>에서 쓸쓸히 삶을 마친 곽 황후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이 이야기를 지었소.
곽 황후는 강왕으로, 광무제는 조수아로 다시 태어나 전생의 빚을 갚게 했지요. 또한 미모와 덕을 겸비했던 음려화는 박색(薄色)인 설여주로 환생하여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었는데, 이는 여성을 향한 깊은 연민과 함께 색(色) 없는 덕(德)이란 무력할 뿐이라는 작가의 현실 인식이 드러난 결과라 하겠소.
허나 작자는 알았을까요? 역사 속에서 광무제가 어릴 적부터 사랑하여 첫 번째로 맞이한 아내가 음 씨, 곧 음려화였다는 사실을 말이오. 《후한서》에는 소년 유수가 신야 땅에서 아름다운 음려화와 장렬한 집금오의 행렬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기록되어 있소.
“벼슬을 한다면 반드시 집금오가 될 것이요, 아내를 얻는다면 당연히 음려화를 얻을 것이다.”
이 기록을 떠올리며 다시 작품을 읽어보면 강왕으로 환생한 곽 황후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서사도 흥미롭지만, 전생의 기억을 잊은 채 조수아와 설여주로 다시 태어나 서로를 걱정하고 보듬는 광무제와 음려화의 모습이 더 오래 가슴을 울리더이다.
복수가 누군가에게는 정의로운 한 방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슬픔이 되지요.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끝내 누구의 편에도 서지 못한 채 오래 머물러 있었소.
<한조삼성기봉>은 단순한 전세 보복담을 넘어, 인간의 인연이 지닌 부조리와 사랑의 미묘한 결까지 품어낸 이야기라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