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로맨스, 광무제의 사랑과 배신 <옥환기봉> ②

『내불리수(內不離秀)』 | 조선 선비 이연의 가문소설 큐레이팅

by 이연

황제의 자리, 흔들리는 마음


왕망이 죽자, 경시제는 낙양으로 천도하고 유수에게 한단에서 스스로 황제를 칭한 왕랑을 토벌하라 명한다.

유수는 사력을 다해 왕랑을 무너뜨리고 큰 명성을 얻게 되지만, 이를 시기한 경시제는 오히려 자객을 보내 그를 제거하려 한다.


이후 정치는 날로 어지러워지고 민심 또한 흉흉해진다. 결국 경시제는 부하 장수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만다. 이 틈을 타 장수들의 거듭된 추대를 받은 유수는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연호를 ‘건무’라 하였으니, 그가 바로 후한의 초대 황제 광무제다.


광무제는 덕행이 뛰어난 음 씨를 황후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음 씨는 이를 완강히 사양했고, 모친을 비롯한 유 씨 집안 또한 이를 반대한다. 결국 첫째 아들 유강을 낳은 조강지처 곽 씨가 황후로 책립 된다. 그녀가 바로 후한의 초대 황후, 광무황후 곽성통이다.


그러나 황제의 마음은 오직 귀인에 봉해진 음 씨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곽 황후는 황궁 안에서도 늘 홀로 남겨진 듯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세월이 흐르며 곽 황후는 음 귀인의 온화한 성품을 깨닫고, 서서히 마음을 풀어 간다. 두 사람은 원망 대신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어 간다.


그러나 파국의 불씨는, 뜻밖의 곳에서 피어오른다. 곽 황후를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 온 보모 윤 씨였다. 주인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며 쌓인 분노는, 결국 음 귀인을 향한 증오로 굳어져 있었다.


윤 씨는 곽 황후를 설득해 음 귀인을 몰아낼 계책을 꾸미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홀로 종남산의 도인을 찾아가 음 귀인을 증오하게 만드는 단약(丹藥)을 구해 온다. 그리고 그 약을 몰래 광무제의 음식에 섞어 넣는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광무제가 그 음식을 곽 황후에게 내린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이 내린 음식을 기뻐하며 즐긴 곽 황후. 그날 이후, 그녀는 음 귀인만 보면 마치 귀신에 씌인 듯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이 거듭되자 광무제는 황후의 투기를 꾸짖는다. 그러나 이미 이성을 잃은 곽 황후는, 용상을 손으로 치며 스스로를 폐위하라 외치는 등 체통을 잃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음 귀인이 첫아들을 낳는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광무제는 크게 놀란다. 그 모습이 전생에 억울하게 죽은 여태자의 아들, 태손 유양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광무제의 마음속에 하나의 결심이 또렷이 자리 잡는다.


‘언젠가, 황후와 황태자를 모두 바꾸리라.’

음 귀인의 시련과 곽 황후의 몰락


세월이 흘러, 광무제가 제위에 오른 지도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


이 무렵 외효가 난을 일으키자, 광무제는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정벌에 나섰다. 황제가 궁을 비운 사이, 오래전부터 음 귀인에게 비수를 품고 있던 윤 씨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또다시 종남산 도사를 은밀히 궁 안으로 불러들여 독을 탄 감로수를 먹이려다 실패했고, 환술(幻術)로 백운도사를 곽 황후로 변신시켜 음 귀인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 심지어 음 귀인의 세숫물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적염단(赤染丹)을 넣는 등, 온갖 계략을 꾸몄다.


다행히 곽 황후가 이를 알아차리면서 윤 씨의 악행은 잠시 잦아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윤 씨는 곧 광무제의 또 다른 후궁인 왕 첩여와 손을 잡고 곽 황후의 어린 아들 경왕을 독살하고, 그 죄를 음 귀인에게 뒤집어씌웠다. 이 일로 인해 음 귀인은 형주로 유배되었는데, 윤 씨는 유배길에 자객을 보내 음 귀인의 목숨을 노리기도 하였으니 그 악행은 차마 다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5년 뒤, 진상이 밝혀져 음 귀인은 궁으로 돌아왔지만, 곽 황후는 여전히 자식을 죽인 원수라 여기며 미움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곽 황후가 사소한 일로 음 귀인의 둘째 아들을 매질하자, 이 사실이 음 귀인의 측근인 경 첩여를 통해 광무제에게 전해졌다. 광무제는 곽 황후를 엄히 꾸짖었고, 분노한 곽 황후는 윤 씨와 왕 첩여를 시켜 경 첩여를 독살했다. 이 일 계기로 건무 17년, 곽 황후는 마침내 폐위되었다.


당시 황태자였던 곽 황후의 큰아들 강은 스스로 음려화의 아들 양에게 황태자의 자리를 양보했고, 광무제는 곧 음 귀인을 황후로 책봉했다. 또한 강을 중산왕에 봉하고, 곽 황후를 중산왕이 있는 동해로 내쫓았다.


동해에서 보내는 날들은 의미 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아껴주던 시어머니 번 태후의 부고가 전해지자, 곽 황후는 깊은 상심에 병석에 눕게 된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는 삶의 끝자락에서 남편을 향한 원망과 자책을 섞어 이런 말을 토로했다.


“상이 예전에 말씀하시길, 부인은 나의 조강지처요, 어린 시절 머리 묶어 혼인한 인연이라. 음 씨와는 비할 바 아니니, 제 감히 나와 함께 늙어 같은 무덤에 묻히는 것을 바라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다만 용납하고 날 원망치 말라고 하셨으니, 내 어리석어 장부의 일언은 반드시 변치 않으리라 믿어 허물을 지으면서도 거리낌 없이 여기까지 왔노라. 그러니 모든 잘못은 결국 내 탓이다. 하나 군왕이 한 여인을 속였다면, 그 또한 심한 일이 아니냐?”


이 말은 곽 황후의 유언이 되었고, 그녀는 곧 쓸쓸히 눈을 감았다. 이후 음 황후는 곽 황후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돌보았으며, 훌륭한 성품으로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그녀가 바로 후한 제2대 황제 명제의 어머니이자, 광무제의 두 번째 황후인 광렬황후 음려화다.


세월은 또다시 무정하게 흘러, 어느덧 곽 황후는 광무제에게 애증의 대상이 아닌, 보리밥 한 그릇을 나누던 고마운 조강지처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행길에서 잠든 광무제는 꿈속에서 모친과 함께 있는 곽 황후와 마주한다. 반가운 마음에 모친께 청해 그녀를 만나려 했으나, 곽 황후는 끝내 그를 외면한다. 광무제는 슬픔 속에 잠에서 깨어 깊은 회한에 잠겼고, 마침내 그녀를 복위시킨다.


이후 광무제는 재위 32년 만에 붕어하고, 영평 7년에는 음 태후 또한 세상을 떠난다. 마침내 두 사람은 원릉에 함께 묻혔고,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을 증명하듯 나누어 끼던 한 쌍의 옥가락지 또한 그 곁에 함께 잠들었다는 것이 <옥환기봉>의 결말이다.


자, 이야기 잘 보셨소?

<옥환기봉(玉環奇逢)>, 곧 ‘옥가락지를 매개로 한 기이한 만남’을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후한서(後漢書)》에 전하는 광무제의 한나라 재건과 두 황후, 곽 씨와 음 씨의 폐립(廢立)을 바탕으로 한 30권짜리 국문 장편소설이오.

특히 전생담에는 간신 강충이 주술로 황제를 해치려 했다는 누명을 여태자에게 씌워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무고(巫蠱)의 화(禍)’라는 역사적 사건이 활용되었소.

《후한서》에는 곽 황후가 원한을 품어 임금의 뜻을 거스르고, 한 고조의 여후나 선제 때의 곽후처럼 잔인한 행태를 보이다 폐위되었다는 기록이 전하오. 반면 음 황후는 덕성과 인품이 뛰어나 본래 황후가 되었어야 할 인물로 평가되지요.

<옥환기봉>의 서사는 이러한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전개되었소. 더구나 작자는 창작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소.

“어리석은 내가 전(傳)을 지었으니, 빈말이나 거짓은 한 마디도 없도다. 음 황후의 지극히 귀하고 위대한 행적과 자손들의 창성함은 말할 것도 없으며, 온화하고 공손하며 지극히 효성스러운 덕은 태임‧태사에 견줄 만하도다. 그러나 불행히도 먼저 자색(姿色)으로 이름을 얻으셨고, 오랫동안 후궁에 머무르셨으며 광무제의 사랑이 지나치게 편벽한 것을 어찌하랴. 하지만 황제께서 처음 황후를 세우실 때 음 황후께서는 곽 황후께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셨으니, 그 덕은 이미 만세토록 증명되었을 터. 그런데도 후세 사람들은 그 덕을 말하지 않고, 다만 음려화가 미모로 적자의 자리를 빼앗았다 하니 한탄스러울 뿐이로다.”

작자는 음 황후가 덕으로 황후가 되었음에도, 세간에서는 미모로 황제를 유혹해 곽 황후를 몰아내고 자기 아들을 제위에 올렸다는 오해가 퍼져 있음을 바로잡고자 했소.

이러한 작자의 의도를 반영하듯, 이야기 속 음 황후는 미모와 덕성, 그리고 앞날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두루 갖춘 현명한 여인으로 그려졌소. 반면 곽 황후는 조강지처였으나 실덕(失德)을 거듭한 끝에 폐후(廢后)가 되어 동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지요.

작자는 이 모든 일을 하늘이 정한 운명으로 풀어내고 있소.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소. 당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인물은 음 황후가 아니라, 오히려 폐후 곽 씨였다는 사실이오.

작자가 음 황후를 통해 ‘여성의 덕성(德性)’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곽 황후의 서사는 의도치 않게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리(義理)’라는 문제를 떠올리게 하였소.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문제의식이었고, 부부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뿐이겠소? 곽 황후가 낳은 무양공주를 비롯한 세 공주의 혼인담을 다룬 <취미삼선록(翠薇三仙錄)>, 그리고 이어어서 보게 될 <한조삼성기봉>과 같은 후속 이야기들을 낳았으니, 그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짐작할 만하지 않소?










작가의 이전글황실 로맨스, 광무제의 사랑과 배신 <옥환기봉>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