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사우(文房四友)―글방의 벗이자 삶의 증인

『내불리수(內不離秀)』 | 조선 선비 이연의 가전체소설 큐레이팅

by 이연

요즘 사람들은 움직이며 노래하고 춤추는 그림을 ‘애니메이션’이라 부르지요.


이 말이 라틴어인 anima—영혼, 숨, 생명—에서 비롯되었다 하니, 결국 애니메이션이란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 할 수 있겠소.


<토이 스토리 Toy Story>(1995)는 장난감들의 세계를 열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울고 웃게 했고, 재기 발랄한 눈사람 올라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초로 <겨울왕국 Frozen>(2013)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또한 <인사이드아웃 Inside Out>(2015)의 기쁨이나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생명을 얻어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으니, 애니메이션 속 세상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다정하더이다.


허나, 그대들은 아시오? 사물이나 감정에 영혼을 불어넣어 이야기를 빚는 전통이 이미 이 땅에서 오래되었다는 것을.


내가 살았던 그 시절에도, 그 이전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이야기는 꾸준히 지어졌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가전(假傳)’ 또는 ‘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이라 부르지요.


조선의 선비들은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던 전기의 형식을 빌려,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동식물, 심지어 감정에도 삶을 부여했소. 그리하여 붓과 먹, 종이와 벼루가 한 사람처럼 살아 움직이고, 술이나 꽃, 나무 또한 제각기 사연을 지닌 존재로 태어나게 되었지요.


그대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가전은, 아마 임춘의 <국순전>이나 이규보의 <국선생전>과 같은 고려 시대의 작품들일 것이오. 허나 가전의 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소. 1933년, 이가원의 <화왕전>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으니, 이 얼마나 유구한 전통이라 하겠소. 놀랍지 않소?


문방사우(文房四友)―글방의 벗이자 삶의 증인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라면 대체로 비슷한 하루를 보낼 것이오. 아침에 가볍게 식사하며 뉴스를 보고, 이내 노트북을 켜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겠지요. 모니터가 채워지면 프린터를 돌려 종이에 출력한 뒤, 내용을 검토하고 이를 고쳐 쓰기 위해 또다시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놀릴 것이오. 그러한 일상이 오랜 세월 지속되다 보면, 노트북은 단지 업무의 수단을 넘어, 삶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하나의 기록장이 되겠지요.


내가 살던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소. 다만, 노트북 대신 붓을 들고, 프린터 대신 먹과 벼루를 갈았으며, 종이 한 장에 글로 마음을 새겼지요. 조선의 선비에게 붓은 오늘날의 키보드, 먹과 벼루는 프린터, 종이는 A4용지나 모니터 같은 것이었소. 이 네 가지를 아울러 ‘문방사우’라 불렀으니, 이는 글방의 네 벗, 곧 붓・먹・벼루・종이를 가리킨다오.


그저 도구라 하기엔 지나치게 정겨운 이 사물들은 나와 같은 선비들의 하루를, 나아가 생을 함께한 벗이자 삶의 증인이었소.


문방사우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중국 당나라 대학자 한유가 쓴 <모영전(毛穎傳)>을 빼놓을 수 없소. 이 작품은 ‘털로 만든 붓’을 뜻하는 모영(毛穎)을 한 인물로 세워, 붓과 먹, 벼루와 종이 같은 문방의 사물들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야기이오.


이처럼 사람이 아닌 사물을 한 사람처럼 그려내는 방식은 이후 가전으로 이어져, 문방사우가 벗이 되고 삶을 함께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전통을 낳았소.


문방사우가 말을 걸어온 밤, <서재야회록>


조선 전기의 관료이자 문인 신광한 역시 가전의 서사적 전통을 이어 문방사우를 의인화한 짧은 이야기를 남겼으니, 바로 <서재야회록(書齋夜會錄)>이오.


배경은 조선 달산촌의 작은 집. 이야기는 독서에 몰두하던 한 선비가 가을밤 흥취에 빠져 뜰을 거닐며 시를 읊던 중 서재에서 들려오는 낯선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창틈으로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깊은 가을밤, 선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조용한 서재 안에는 낯선 이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까만 비단옷을 입고 검은 관을 쓴 이는 치의현관(緇衣玄冠)이라 하였는데, 중후한 풍모와 말수가 적은 모습으로 볼 때 나이가 가장 많은 것 같았다. 또 알록달록한 옷차림에 맨 상투를 드러낸 이는 반의탈모(班衣脫帽)라 불렸는데 매우 날카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흰옷에 두건을 쓴 백의윤건(白衣綸巾)은 마치 백옥처럼 맑고 단정하였으며, 검은 옷과 모자를 갖춰 입은 흑의흑모(黑衣黑帽)는 검푸른 얼굴빛에 못생기고 체구는 작달막했다. 그때 백의윤건이 말했다.


“주인께서 안 계신 틈을 타 우리가 방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너무 방자하지 않은가?”


이에 반의탈모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였소.


“우리가 누구인가? 주인을 위해 오래도록 살갗을 문지르고, 뼈를 갈고, 땀에 등을 축축하게 적시며 살아온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 나는 늙고 둔하다는 놀림을 받았고, 자네는 경박하다는 핀잔을 들었네. 그뿐 아니라, 흑의흑모는 이제 수명이 다한 듯하고, 치의현관은 이가 빠져 못쓰게 되었으니 이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아무 말 없이 시간만 보내기엔 저 고운 달빛이 아깝지 않은가 말이야.”


이들은 누구인지, 이미 짐작이 가겠지요? 바로 오랜 세월 주인을 섬긴 벼루, 붓, 종이, 먹 곧 문방사우였소. 사람이 된 듯 서로의 속내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토이 스토리> 속 장난감들이 주인 몰래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연상케 하오.


이윽고 바깥에서 들려온 헛기침에 놀란 그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인의 말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소. 각자 내력을 털어놓고 시를 읊은 뒤, “부디 우리를 멀리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사라졌지요.


날이 밝자 선비는 깨진 벼루, 망가진 붓, 닳아빠진 먹과 낡은 종이를 발견하였고, 닥종이에 정성껏 싸서 땅에 묻은 뒤 제사를 올렸소. 그날 밤, 꿈속에 다시 나타난 문방사우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는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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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쓴 신광한은 젊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벼슬을 잃고 20여 년을 은둔했으나, 다시 등용되어 조선의 문풍을 이끈 대제학에 오른 인물이오. <서재야회록>은 단순한 환상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신광한을 비롯한 선비들의 삶을 함께한 문방 도구에 대한 연민과 감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야기라 하겠소.


문필(文筆)과 여공(女工) 사이, <사성록>


허나 그 시절, 붓을 쥔 이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소. 남성 중심의 세상 속에서도 여성들은 조용히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성찰하고 있었지요. 부덕(婦德)을 통해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가정의 경제를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속에 살면서도 글과 바느질 사이에서 갈등했던 마음—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당대 여성들이 실제로 겪었던 삶의 한 조각이었소.


지금 소개할 <사성록(四誠錄)>은 비록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짧은 이야기이지만, 남성의 시선이 아닌 문필과 여공(女工),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요히 흔들리던 한 여성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기록이오. 함께 들여다봅시다.


사성국의 주인인 단장왕(端裝王) 규(閨)는 승상 양척기, 직금오 철재선, 대사마 장지장 등 어진 일곱 신하와 함께 나라를 잘 다스려 왔다. 그런데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해진 단장왕은 필학사 등 문필을 관장하는 네 명의 신하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사랑하던 일곱 신하를 박대하며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라는 곧 어지러워졌고, 마침내 일곱 신하는 상소를 올려 바른 정사를 요청했으나 왕은 듣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벌주려 했다. 그러나 필학사의 눈물 어린 간청에 마음을 돌린 왕은 초심으로 돌아가 길쌈에 능한 적장군(績將軍)과 누에를 잘 치는 잠사도(蠶司徒)를 기용하여 위태로워진 나라의 살림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만 이후에도 왕은 문방 사신을 버리지 못해 결국 양편의 신하들을 함께 품게 되었다.


19세기에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사성록>은 여성들의 바느질 도구 일곱 가지와 문필을 상징하는 문방사우를 한 나라의 신하들로 의인화한 작품이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이들은 단장왕과 함께 국정을 논하고 때로는 왕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으며, 대립과 화합을 거듭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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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여공을 책임지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글쓰기를 담당하는 신하들만 가까이하다가 나라가 기울자 다시 여공을 책임지는 신하들을 기용해 국정을 안정시키는 전개는, 당시 여성의 삶에서 바느질과 가사 노동이 차지하던 비중을 잘 보여주오.


그런데 그 의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소. 겉으로는 ‘여성은 문필보다 여공에 힘써야 한다’는 교훈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문필에 대한 동경, 여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지적 욕망이 은근히 스며 있소.


결국 단장왕이 모든 신하를 함께 품는 결말은, 일과 취미, 노동과 예술, 현실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했던 당대 여성들의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바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소.


전통적으로 문필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소. 그러나 율곡 선생의 모친이자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알려진 신사임당은 시와 글씨뿐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나, 훗날 숙종이 그녀의 그림에 직접 발문을 남겼다 하오. 또 허균의 여동생인 허난설헌의 시는 조선을 넘어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져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지요. 그러니 문필에 대한 재능과 갈망이 어찌 남성에게만 국한되었다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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