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백해무익(百害無益)인가, 백약지장(百藥之長)인가

『내불리수(內不離秀)』 | 조선 선비 이연의 가전체소설 큐레이팅

by 이연

사람이 술을 빚었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술이야말로 인간을 오래도록 빚어온 존재였소.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 대왕께서는 재위 중 금주령을 엄격히 시행하셨소. 이는 농본주의 국가에서 곡식을 아끼려는 실리뿐 아니라, 신참례 같은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풍습과 음주 후 낙마나 실수, 각종 불상사 등 술이 일으키는 폐단을 줄이려는 뜻이었지요.


지금도 주취 폭력이나 음주 운전 소식이 끊이지 않으니, 술이 부르는 화는 예나 지금이나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하오. 그렇다고 술을 그저 ‘해롭다’고만 하기에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다채롭소.


중국의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는 술을 백약지장(百藥之長), 곧 “온갖 약 가운데 으뜸”이라 하였고,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李瀷)은 노인을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 데 술만한 것이 없다고 했소. 또한 이덕무(李德懋) 역시 술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기혈을 순환시키고, 정을 펴며 예를 행하는 데 필수라 하였지요.


결국 술이 백해무익(百害無益)한지, 백약지장인지를 단정하기는 어려울 듯하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오. 사람들의 술타령만큼은 고금을 막론하고 끊긴 적이 없다는 사실이오. 조선 중기 문신 정철(鄭澈)은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이렇게 읊었소.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세어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시대가 달라져도 다르지 않소. 현대에도 편승엽의 <찬찬찬>(1995), 임창정의 <소주 한잔>(2003)처럼 술을 노래한 가요들이 여전히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 않소?


술의 달콤함과 해독, <국순전>


이제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술을 단순히 마시는 대상이 아니라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아 말문을 터뜨린 작품들이오.


고려 인종 때의 문신 임춘이 지은 <국순전>과 이규보의 <국선생전>이 그것이오. 두 작품 모두 술을 ‘국순(麴醇)’ 혹은 ‘국선생(麴先生)’이라 부르며 의인화했는데, 이때 ‘국(麴)’은 전통 술을 빚을 때 쓰는 누룩을 뜻하오.


먼저 <국순전>을 살펴봅시다.


국순의 도량은 크고 깊었으며 자못 사람들에게 기운을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와 담론할 때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탄복하여 쓰러진 것을 계기로 비로소 이름을 떨쳤으며, 호를 국처사(麴處士)라 했다. 공경과 대부, 신선과 방사는 물론 머슴과 목동, 오랑캐와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그를 흠모하여, 성대한 모임에 순이 오지 않으면 모두 실망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국처사가 없으면 즐겁지 않아.”


당시 세상에서 국순을 사랑함이 이와 같았다. 한편 산도라는 자가 감식안이 있었는데, 일찍이 국순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어떤 늙은 할미가 요런 갸륵한 아이를 낳았는가! 그러나 천하의 창생을 그르칠 자 또한 이놈일 것이다.”


관아에서는 국순을 불러 청주종사로 삼았으나, 마땅한 자리가 아니라 하여 다시 평원독우를 시켰다. 그러자 얼마 뒤 국순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쌀 닷 말 때문에 이런 시골 아이들에게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 내 마땅히 술잔과 술상 사이에 곧게 서서 담론하리라.”


그때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순에게 말했다.


“그대 얼굴에 불그레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보니 훗날 반드시 귀하게 되어 천종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좋은 자리를 기다렸다가 벼슬에 나가십시오.”


임춘은 이 작품에서 사람들이 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익살스럽게 그려냈소. 동시에 서진의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산도의 입을 빌려, 술이 끝내 창생을 해칠 존재임을 경고하였지요. 그러나 관상가의 입을 통해 그 번성을 예언하게도 했으니, 작자는 술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인식했던 듯하오.


작품 속 국순은 진나라 후주의 총애를 받아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예빈경(禮賓卿)의 벼슬을 얻고, 마침내 공(公)의 작위에까지 오른다오. 그러나 임금이 국순과 궁녀들만 가까이하자 조정의 신하들은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게 되었소. 급기야 주색에 빠진 임금이 정사를 게을리하자 세상은 순을 ‘망국주(亡國酒)’라 불렀지요.



끝내 임금이 그의 입냄새를 싫어한다고 하자, 순은 돌연 사직을 청하고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사이 병들어 죽고 말았소. 이는 술의 폐단을 문학적으로 징벌한 것이자, 그 해악에 대한 상징적 경고라 하겠소.


술의 덕과 향기, <국선생전>


한편, 이규보는 <국선생전>에서 주천군(酒泉郡) 출신으로 평원독우를 지낸 ‘차(醝)’와 ‘곡씨(穀氏)’ 사이에서 태어난 국성(麴聖)의 일대기를 통해, 술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드러냈소.


여기서 ‘차’는 흰 술, 곧 청주를 뜻하오. 또 ‘국성’이라는 이름은 중국 위나라의 서막(徐邈)이 지은 것으로, 맑은 술을 성인(聖人)에 비유한 것이오. 서막은 조조의 금주령을 어기고도 “술은 성인의 덕에 부합한다(中聖人)”며 자신의 음주를 정당화한 지독한 애주가였지요. 작자가 <국선생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이제 찬찬히 살펴보시오.


국성은 어릴 적부터 도량이 넓었으며, 성장한 뒤에는 유영과 도연명의 벗이 되었다. 공경들이 계속해서 국성을 천거하자 임금은 수레를 보내 그를 맞이했고, 주객낭중(主客郞中)의 벼슬을 준 뒤에는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삼아 예의사(禮儀使)를 겸임하게 하였다. 국성은 조회의 잔치, 종조(宗朝)의 제사, 천식(薦食), 진작(進酌) 등 여러 예식에 임하여 모두 임금의 뜻에 부합하게 행동했다. 이에 임금은 국성을 승정원의 재상으로 삼았고,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국선생(麴先生)’이라 일컬으며 특별히 우대하였다.


국성은 본래 성질이 구수하고 아량이 넓어 날이 갈수록 많은 이들과 친밀해졌고, 임금과도 가까워져 잔치 자리마다 함께하였다. 그러나 국성에게는 혹(酷), 포(䤖), 역(醳)이라는 세 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아버지를 믿고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중서령 모영(毛穎)의 탄핵을 받아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으며, 국성 또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다.


국성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제고을(臍故邑)’과 ‘격고을(膈故邑)’ 사이에서 도둑 떼가 일어났고, 이를 제압할 적임자가 없자 임금은 그를 다시 불러 원수(元帥)로 삼았다. 국성은 군을 엄격히 통솔하며 병졸들과 고락을 함께했고, 한 차례 전투로 ‘수성(愁城)’을 함락하였다. 이에 임금은 그를 상동후(商東侯)에 봉했으나, 2년 뒤 국성은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천수를 누렸다.


임춘이 <국순전>에서 술의 폐단을 경계하였다면, 이규보는 <국선생전>에서 술을 나라의 근심을 덜고 물러날 줄 아는 지혜로운 존재로 그려냈소. 국성이 도적을 평정하고 천수를 누리는 결말은, 술에 대한 작자의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겠지요.


벗이자 거울, 조선 선비와 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선 뒤에도, 술에 대한 선비들의 관심은 식지 않았소.



최연은 <국수재전>에서 순후한 성품의 수재가 괜한 비방에 시달린다고 한탄하며 술을 두둔하였고, 박윤묵은 <국청전>에서 우임금이 술을 배척한 일화를 인용하면서도 적당한 음주는 삶의 향취가 된다는 뜻을 은근히 전하였지요. 술을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끝내 그 곁을 떠나지 못한 모습은, 마치 미워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옛사랑과도 같았다오.


김득신은 <환백장군전>에서 근심이 가득한 수성(愁城)을 무찌른 조강, 곧 술을 ‘환백장군’이라 불렀소. ‘환백(歡伯)’이란 귀하든 천하든, 현명하든 그렇지 않든, 화이(華夷)를 막론하고 모두가 즐기는 존재라는 뜻을 지닌 술의 별칭이오. 그러니 근엄하게 칼자루를 쥐고 근심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환백장군의 모습은, 술이야말로 인생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일등 공신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소?


더구나 <취향지>에서 지광한은 ‘무수천자(無愁天子)’를 취향(醉鄕), 곧 술기운에 잠긴 무심(無心)의 세계를 다스리는 군왕으로 설정하였으니, 이 얼마나 발랄하면서도 애틋한 상상이겠소?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한 가지이오. 조선 문인들이 술을 사랑했다는 사실이오. 백해무익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술을 곁에 두었고, 백약지장이라는 찬사 속에서도 절제의 미덕을 논했으니, 이 양가적 태도야말로 조선 선비다운 풍모라 하지 않겠소?


그러니 술이란 그저 ‘취하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 마음을 달래는 지기(知己), 곧 소중한 벗이었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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