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불리수(內不離秀)』 | 조선 선비 이연의 전기소설 큐레이팅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 이른바 ‘이계(異界)’라 부르는 곳이 있소. 오늘날 이야기꾼들도 이계를 서사의 무대로 자주 그려내지요.
이를테면 드라마 <더블유>(MBC, 2016)는 웹툰 속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초짜 의사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고, <호텔 델루나>(tvN, 2019)는 망자들이 머무는 호텔이라는 초현실적 공간을 통해 다양한 사랑과 이별의 모습을 보여주었소.
하지만 이와 같은 비현실의 세계가 현대 서사에서 비로소 생겨난 것은 아니오. 우리 전기소설 또한 오래전부터 현실을 벗어난 이계를 서사의 무대로 삼아 왔지요.
그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용궁, 곧 수부(水府)라 할 수 있소. <심청전>에도 등장하는 이 수중 세계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그려져 왔소.
작자 미상의 <최고운전>은 수부뿐만이 아니라, 금돼지가 왕처럼 군림하는 동굴 속 세계 등 다양한 이계를 중요한 무대로 삼은 작품이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역사 속 실존 인물, 곧 통일신라 말기의 대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908)이라는 사실이오.
제목 속 ‘고운(孤雲)’은 그의 자(字), 곧 또 다른 이름이니, 이제 <최고운전(崔孤雲傳)>의 서사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통일신라 말기, 문창(文昌) 고을의 현령 최충은 부임 직후 기이한 소문을 들었다. 이곳 역대 사또들의 아내가 하나같이 정체 모를 존재에게 납치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아내의 손목에 붉은 실을 매었다. 또한 여종들로 하여금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며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쳤다. 그 순간,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신을 가다듬은 최충은 붉은 실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고, 거대한 바위에 뚫린 굴 앞에 이르렀다. 밤이 되자 그는 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온갖 꽃나무가 우거지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다니는 황홀한 세계였다. 동쪽에는 옥황상제의 궁궐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집이 있었고, 창틈으로 엿보니 황금빛 돼지가 용무늬 자리에 앉아 아내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주위에는 아름다운 여인 수십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최충은 휴대하던 약주머니로 은은한 향기를 내어 아내에게 신호를 보냈다.
남편의 기척을 알아챈 아내가 잠든 금돼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신선 세계 사람은 호랑이 가죽을 보면 죽는다던데 사실인가요?”
금돼지는 잠결에 중얼거렸다.
“그런 소린 처음 듣소. 다만 사슴 가죽을 미지근한 물에 적셔 뒤통수에 붙이면 죽는다오.”
그 말을 들은 최충은 자신의 칼집 끈이 사슴 가죽으로 된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침에 적셔 금돼지의 뒤통수에 붙였다. 금돼지는 소리조차 못 낸 채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최충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아들을 금돼지의 자식이라 오해해 바닷가에 버렸다. 그러나 천상의 선녀가 바닷가에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목격하고서야 자신의 핏줄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아기를 데려오게 했지만, 책을 읽고 있던 세 살 난 아이는 집으로 가기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 여불위(呂不韋)가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왕족에게 바쳤다 하나, 그 왕족은 이를 알고도 차마 버리지 못했소.”
이 말을 듣고 뼈저리게 후회한 최충은 바닷가에 ‘월영(月影)’이라는 정자를 지어 아이를 머물게 했다.
이후 하늘에서 수천 명의 선비가 내려와 저마다의 학문을 가르치자, 아이는 곧 문장에 통달했다. 아이가 맑은 음성으로 시를 읊을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을 자아냈고, 아이의 소문은 어느새 당나라 황제에게까지 전해졌다.
황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월영대로 중국의 학자들을 보내 어린 천재와 겨루게 했으나 모두 패했다. 화가 난 황제는 달걀을 솜으로 싸서 돌함에 넣고 밀랍으로 봉한 뒤 신라 조정으로 보내며,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고 시를 지어서 바치지 않으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두려움에 떨던 신라 왕은 마침내 문제를 푸는 이에게 관작과 봉토를 내리겠다고 나라 안에 공표했다.
그 무렵 월영대에서 자란 아이가 장성하여 서라벌로 들어왔으니, 그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최치원이다.
한편, 신라 승상 나업에게는 재주와 미모가 나라 안에서 으뜸인 딸이 있었다. 그 소문을 들은 최치원은 해진 옷을 걸치고 거울을 고치는 행상으로 변장하여 나업의 집을 찾아갔다.
때마침 유모가 거울 수리를 청하자 일부러 거울을 깨뜨린 뒤, 값을 갚겠다며 종살이를 자청했다. 나 승상은 이를 허락했고, 최치원은 자신을 ‘파경(破鏡)’이라 했는데, 이는 거울을 깼뜨린 데서 붙인 이름이었다.
파경이 처음 맡은 일은 마구간의 말들을 돌보는 일이었는데, 천상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말에게 꼴을 베어 먹이니 말들은 금세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이후 파경은 화원을 관리하는 자리로 옮겨졌다.
그즈음, 당나라 황제가 신라에 보낸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자, 신라 왕은 이를 나 승상에게 맡기며 시를 짓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 협박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 승상은 통곡했고, 이를 본 파경은 기쁜 얼굴로 화원의 꽃가지를 꺾어 나 소저에게 주며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평소 파경이 범상치 않다고 여긴 나 소저는 부친께 그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고, 파경은 나 소저와의 혼인을 허락한다면 시를 짓겠다고 말했다. 승상은 마지못해 혼인을 허락했다.
이후 파경이 지은 시는 다음과 같았다.
돌 속엔 둥근 알
반은 옥, 반은 황금이로다
시간을 아는 새가 밤이면 밤마다
정만 머금고 소리는 내지 않누나
이 시가 당 황제에게 전달되자 황제는 함 속의 달걀이 병아리로 변한 것을 보고 탄복했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재주를 믿고 오만해질 것을 우려해 시를 지은 이를 중국으로 데려오라 명했다. 나 승상이 어린 사위 대신 가겠다고 했지만, 파경은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고집했다.
파경은 높이 50자에 달하는 모자를 마련해 달라 청하고는 스스로를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라 밝힌 뒤,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신방에서 밤마다 괴로워 마오
어여쁜 그대 얼굴 시들까 두렵소
지금 가면 부귀공명 마땅히 얻어
제후(諸侯) 되어 당신과 부귀를 누리리다
최치원이 탄 배는 순풍의 돛 단 듯 거침없이 바다를 누볐다. 하지만 첨성도라는 섬에 이르자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맴돌 뿐 더는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섬마을의 정장은 최치원 일행에게 용왕에게 제(祭)를 올리라고 조언했다.
막 제를 올리려던 순간,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용왕의 아들 ‘이목’이라고 소개하고, 최치원을 등에 태워 순식간에 용궁으로 데려갔다. 용왕은 최치원을 위해 성대한 술자리를 베풀었고, 앞으로 큰 재난을 막을 수 있을 거라며 이목을 데려가라고 했다.
이후 이목은 항해 중 최치원의 명을 받아 가뭄에 시달리는 섬에 단비를 내려 백성을 살폈다. 그러나 곧 푸른 옷을 입은 승려가 하늘에서 내려와, 옥황상제의 명 없이 비를 내린 것은 큰 죄라며 이목을 참하려 들었다. 이에 최치원은 재치 있게 이목을 구렁이로 변신시켜 자기 발밑에 숨겼다.
그 모습을 본 승려는 그제야 최치원은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신선이니, 그가 원한다면 이목을 용서하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떠올리며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잠시 뒤, 이목은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청룡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최치원은 중국 절강 땅에 도착하였고, 마침내 세상에 이름을 떨칠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길게 드리운 모자와 강가에서 만난 미녀가 건넨 오색 부적으로 황제가 설치한 온갖 함정을 단숨에 통과했으며, 줄지어 서 있던 중국의 학사들마저 그의 재능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마침내 황제를 알현한 그는 ‘하늘이 내린 인재’라 칭송받으며 과거시험에 응시하였고, 수많은 중국 선비를 제치고 당당히 장원급제하였다.
그때 황제가 급제자들에게 시를 지으라 명하자, 하늘에서 쌍룡이 내려와 최치원의 시를 물고 하늘로 오르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에 크게 감탄한 황제는 그를 천하가 인정한 글의 제왕을 의미하는 ‘문신후(文神侯)’에 봉했다.
세월이 흘러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치원은 단 한 장의 글로 난을 평정하였다. 최치원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눈부신 재능은 대신들의 시기와 모함을 불러왔고, 결국 그는 남쪽 외딴섬으로 유배되어 ‘간장에 적신 솜’을 빨며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 사신이 당나라로 향하다 외딴섬의 최치원을 만나 시 한 수를 청했고 그 시가 황제에게 전해지자, 황제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최치원을 다시 불러들이고자 사신을 보냈다.
섬을 찾은 사신은 무례하게도 최치원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 그러자 최치원은 사신을 크게 꾸짖은 뒤, 함께 낙양으로 돌아왔다.
다시 최치원을 만난 황제는 그를 외딴섬으로 내쳐 굶겨 죽이려 했던 일을 떠올리며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고는 그의 충성심을 떠보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경은 석 달이나 밖에 있었으면서도 어찌하여 한 번도 짐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는고? 하늘 아래 짐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짐의 신하가 아닌 이 또한 없다는 말이 있는데, 경이 비록 신라 사람이지만 신라 또한 나의 땅이요, 경의 임금 또한 내 신하가 아니더냐. 그런데 어찌 짐이 보낸 사신을 꾸짖었단 말인가?”
오만한 황제의 말에 최치원은 허공에 손으로 한일 ‘一’ 자를 긋더니, 그 위로 펄쩍 뛰어올라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여기도 폐하의 땅입니까?”
황제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사죄했고, 최치원은 황제의 불의를 꾸짖었다. 그러고는 곧장 돼지 ‘저(猪)’ 자가 적힌 종이를 땅에 던졌다.
그러자 종이는 푸른 사자로 변했고, 최치원은 그 사자를 타고 신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귀향길조차 평탄치 않았다. 신라 왕의 행차를 지나쳤다는 죄목으로 신라의 군사들에게 포박된 것이다. 이 일로 최치원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목숨은 건졌으나,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는 왕의 명을 받고 가족과 함께 가야산으로 들어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결말이다.
이 작품에서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은 용궁의 조력과 천지를 뒤흔드는 재주, 그리고 눈부신 명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부정과 모함 앞에서 끝내 빛을 잃고 말았소. 그리하여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마침내 신선이 되었지요.
천지를 울릴 재주와 명성을 지녔으나 결국 은거로 귀결된 결말은, 신라 말기 사회 개혁을 위해 힘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인사에 몸을 의탁했던 그의 실제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소.
그러나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지거늘, 왕도 아니고 영웅도 아닌 한 인간의 삶이 이처럼 신화로 남는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이오.
<최고운전>이 오늘까지 전해지는 까닭은, 아마도 안타까운 천재 시인 최치원에 대한 후인들의 깊은 연민이 빚어낸 것이 아니겠소?
전기소설은 우리 소설사에서 매우 이른 시기에 등장한 이야기로, 김시습이나 신광한 같은 학식 있는 선비들이 한문으로 지어냈소. 현실을 초월한 기이한 세계를 그리면서도 그 속에 인간의 욕망과 좌절, 사랑과 상실을 함께 담아낸 이야기들이지요.
앞에서 살핀 <이생규장전>, <하생기우전>, <운영전>은 모두 생사를 뛰어넘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품고 있었소. 최치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 또한 신라가 아닌 나 승상의 어여쁜 딸이었으니, 작품들 속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순애보라 이를 만하지요.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선의 혼인이 단순히 집안과 집안이 맺는 약속이나 삶의 통과의례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사랑은 삶에서 매우 소중한 것이었소.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제주 유배 중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이런 시를 남기며 처절한 슬픔을 토해냈지요.
누가 월하노인(月下老人)께 호소하여
내세에는 님과 내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
천리 밖에서 나 죽고 그대가 살아
이 슬픔을 알게 했으면
그러고 보면 전기소설 속 초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는 단순한 허구만은 아니었을 것이오. 현실에서 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이상, 그리고 인간의 깊은 정한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소.
독자여, 행여 지금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랑을 잃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붙잡으시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