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불리수(內不離秀)』 | 조선 선비 이연의 가문소설 큐레이팅
앞서 본 위선화와 소운경의 이야기에는, 계모의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정절과 혼약을 저버리지 않았던 위선화가 마침내 한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지요. 그러나 소씨 집안의 자손들이 모두 그러한 도리와 절제의 길만을 걸은 것은 아니었소.
이 집에는 빼어난 재주를 지녔으되, 그 기질 또한 쉽게 제어되지 않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소운성이오. 이제 소운성을 비롯한 몇몇 자식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봅시다.
소운성은 석명혜에게서 태어난 소현성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질이 남달랐다. 여덟 살이 되도록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나, 어느 날 『육도삼략』을 펼쳐 병법의 요체를 단번에 깨달았다. 그러나 소현성이 병법을 논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자, 운성은 뜻을 접고 유학에 힘썼고 불과 삼 년 만에 만 권의 책을 읽어냈다.
그는 기개 또한 남달랐다. 열 살 무렵 외증조부인 석수신 장군의 집에서 석가산(石假山)을 들어 옮기자, 이를 본 사람들은 운성의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며 감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오만한 운성의 기세를 한 번 눌러주고 싶었던 석씨는 운성이 잠든 틈을 타 장난삼아 그의 팔에 여인들만 찍는다는 앵혈을 새겼다. 그러나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운성은 분을 참지 못하고, 석씨가 아끼던 소영을 겁탈한 뒤 훗날 첩으로 삼겠다고 한다.
이처럼 운성은 문과 무를 겸비한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한편으로는 거칠며 방탕한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한편, 운성은 종종 자운산 밖에서 놀았는데, 그러던 중 참정 형옥의 두 아들과 사귀게 되었고 그 집을 드나들다가 형 참정의 외동딸 설희를 만나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형설희는 아름답고 현숙한 여인으로 온 나라 사람들의 칭송을 받던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하였고 운성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꼈다.
이듬해, 나라에서 과거가 열리자 소운성은 장원으로 급제한다. 그러나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우연히 궁중에서 운성을 본 황제와 황후의 외동딸 명현공주가 그를 마음에 품은 것이다. 공주는 곧장 황제에게 운성을 부마로 삼게 해달라고 청했다. 황제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 과거에 급제한 수재들을 모두 궁으로 불러라. 공주가 방울을 던져 맞히는 자를 부마로 삼겠다.”
황명을 받은 급제자들은 속속 궁으로 모여들었다. 공주는 잠시 운성을 바라보더니 힘껏 방울을 던졌다. 방울은 곧장 날아가 운성의 왼쪽 어깨를 정확히 맞혔다. 그 순간 운성의 운명은 바뀌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소현성은 이미 아내가 있는 아들을 부마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여러 차례 상소했다. 그러나 황제는 끝내 뜻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운성은 형설희와 눈물로 이별하고, 명현공주의 부마가 된다. 황제는 공주를 위해 자운산 소씨 집안 인근에 화려한 명현궁을 짓게 하였고, 공주는 그곳에서 수많은 시녀의 시중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소운성과 명현공주의 혼인 생활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운성은 스스로 남편을 택한 공주를 못마땅히 여겨 끝내 마음을 주지 않았고, 공주는 그러한 냉대를 견디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공주는 양씨 부인을 비롯한 시댁 사람들 앞에서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고, 당황한 집안 사람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일찍이 청주자사가 운성에게 선물로 미녀들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질투심에 사로잡힌 공주는 그들의 머리털을 자르고 코와 귀를 베어 차가운 궁에 가두는 등 잔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이 거듭될수록 형설희에 대한 운성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졌고, 마침내 그리움은 병이 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형설희를 다시 소씨 집안으로 돌려보냈으나, 공주의 악행은 그치지 않았다. 공주는 형설희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려 했으나, 시동생 운현이 달려드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자, 공주는 마침내 황후에게 소운성과 소부 사람들이 자신을 박대한다며 참소한다. 황후는 형설희를 대궐로 불러들여 엄히 문초하였고, 운성 또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때 형설희가 스스로 팔을 베어 피로 글을 써 황제에게 올렸다. 남편을 대신하여 모든 죄를 감당하겠다는 절절한 내용이었다. 이를 본 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마침내 운성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공주의 악행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끝내 할머니 양씨 부인마저 욕보이는 지경에 이르자, 이를 지켜보던 소현성도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상소를 올리고, 가법(家法)에 따라 공주를 집안의 옥에 가두었다. 공주는 시댁에 잘못을 비는 글을 올린 뒤에야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공주는 한결 온순해진 모습을 보였다. 전과 달리 시할머니와 시부모께 문안을 올리며 예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돌아선 운성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명현궁을 찾지 않았고, 공주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 사이, 마음에 병이 든 공주의 몸은 날로 쇠약해져 갔다. 화려하던 기색은 사라지고, 핏기 없는 얼굴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석 부인이 소운성을 불러 조용히 타일렀다.
“공주가 아무리 미운 짓을 했다 하나, 병든 사람을 이토록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더구나 공주는 황상과 황후마마의 하나뿐인 따님이 아니더냐. 어찌 이리 박대할 수 있겠느냐?”
어머니의 타이름에 마지못해 명현궁을 찾은 운성은 깜짝 놀랐다. 이미 몸이 크게 쇠하여 오빠인 칠왕이 곁에서 약을 쓰며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하고 오만하던 공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창백한 얼굴만 남아 있었다. 운성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난 일은 더 말하지 않겠소. 부디 몸을 아끼시오.”
그 말은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모든 것이 뒤집혔다. 공주는 번뜩 눈을 치켜뜨더니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곁에 놓인 철여의(鐵如意)를 움켜쥐고 그대로 운성을 향해 내리쳤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운성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맞은 채 뒤로 물러섰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숨을 몰아쉬던 공주는, 이를 악문 채 절규하듯 외쳤다.
“오라버니!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저자를 당장 죽이세요! 저자와 그 천한 형씨의 머리를 베어, 이 동생의 원한을 풀어주십시오! 그것이… 이 동생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날 이후 공주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며칠 뒤 공주는 열아홉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시신을 수습하던 궁인들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한다. 공주의 팔에 찍힌 앵혈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황제는 노하여, 공주의 시신을 소씨 가문의 선산에 묻지 못하게 하였다. 소부 사람들은 겉으로는 침통한 기색을 보였으나, 속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얼마 뒤 황제는 부마의 인수를 거두고, 소운성을 병부상서로 삼는다. 그리고 운성은 다시 형설희와 부부로 살아가게 된다. 이로써 소씨 가문은 길고도 격렬했던 파란을 지나, 다시금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게 된다.
소운명은 화수은에게서 태어난 소현성의 여덟째 아들이었다. 그는 열네 살에 태상경 임보수의 딸 경령과 혼인했다. 임경령은 학식과 덕이 뛰어난 여인이었으나, 용모가 빼어나지 못했다. 혼인날 신부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화 부인은 아들의 앞날을 그르친 혼사라며 눈물까지 흘렸다. 운명 또한 처음에는 아내를 없는 사람처럼 외면하려 했다. 이를 지켜보던 양씨 부인은 끝내 엄하게 꾸짖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헤아린다면, 네 눈이 먼저 어두운 것이다. 저 아이의 됨됨이를 보아라. 너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
그제야 운명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이자, 그는 점차 경령의 깊은 인품과 재주를 알아보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를 진심으로 존중하게 된다.
몇 해 뒤, 나라에서 과거가 열렸다. 이때 운명은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젊은 나이에 옥당에 들어 황제 곁에서 문장을 맡게 되었다. 그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여러 명문가에서 혼인을 청해 왔으나, 소현성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무렵 운명은 감찰어사로 산서 지방에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부모를 잃고 가세가 기울어진 재상가의 여식, 이옥주였다.
홀로 남은 옥주는 도적에게 모든 가산을 빼앗기고, 시비 앵춘과 함께 남장을 한 채 떠돌다 우연히 운명을 만난 것이다. 그녀는 남자인 척하며 자기를 ‘원경’이라 소개했고, 운명은 갈 곳 없는 그녀의 처지를 가엾게 여겨 관아에 머물게 했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이내 의형제를 맺고 가까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글을 짓던 운명은 문득 그녀의 팔에 찍힌 앵혈을 발견하고 비로소 이옥주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순간 모든 것을 깨달은 그는 더 이상 옥주에게 형제의 의를 말하지 않았다.
“그대가 어찌 남자로 내 곁에 있었단 말이오. 이제는 형제가 아니라… 내 사람으로 남아 주겠소?”
임기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경사로 돌아왔다. 이어 할머니와 아버지 앞에 엎드려 그간의 사정을 아뢴다. 양씨 부인과 소현성은 이옥주의 팔에 남아 있는 앵혈을 보고 그녀의 사람됨을 인정하여 혼인을 허락하였다. 또한 그녀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집안 한켠에 부모의 사당까지 마련해 주었다. 첫째 부인 임경령 역시 이옥주를 자매처럼 대하며 따뜻이 맞이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소씨 집안은 더없이 화목하였다.
하루는 여승(女僧)이 찾아와 길흉을 점쳐주겠다고 하자, 양씨 부인은 집안 사람들의 화복을 물었다. 여승은 처음에는 길한 말만 늘어놓았으나, 유독 이옥주를 바라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눈썹을 찌푸리던 그녀는 낮게 입을 열었다.
“저 여인은 수명이 길지 않습니다.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할 상이오. 다만 남편의 사랑을 여러 사람과 나눈다면, 서른까지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뜻밖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양씨 부인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여승에게 많은 돈을 시주하며, 옥주의 장수를 빌어 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운명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친구에서 부부가 되어 누구보다 깊은 정을 나누던 소운명과 이옥주의 앞날에,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마침내 운명은 황후의 친척이기도 한 정 참정의 딸, 강선과 혼인하게 된다. 이옥주와 달리 세도가에서 자란 정강선은 겉으로는 공손한 듯 보였으나, 속으로는 교만과 시기, 그리고 간교함을 품은 인물이었다.
그 무렵 나라에는 큰 변고가 일어났다. 요나라 군사가 국경을 침범하고, 운남국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조정의 안팎이 어지러워진 것이다. 승상 소현성은 소운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급히 전장으로 떠나게 된다.
아들이 집을 비우자 마음이 허전해진 양씨 부인은 둘째 며느리 석명혜를 데리고 강정의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하여 소씨 집안의 살림은 자연히 화수은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으나, 화수은은 측근들만을 가까이하고 편애하여 집안을 공정하게 다스리지 못하였다.
그 틈을 노린 이가 있었으니, 정강선이었다. 강선은 집 안에 머물던 경박한 선비 성영과 하인들을 은밀히 매수하여, 이옥주가 외간 남자와 사통해 아이를 가졌다는 거짓 증거를 교묘히 꾸며냈다.
이 소문은 머지않아 운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분노에 사로잡힌 운명은 사실을 가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곧장 칼을 들고 이옥주의 처소로 달려가 거칠게 외쳤다.
“내가 그대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아꼈거늘, 어찌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단 말이냐! 음란하고 요망한 계집인지도 모르고, 이 소운명이 온 마음을 주었구나!”
쏟아지는 악담 속에서도 이옥주는 끝내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경령을 비롯한 집안의 며느리들과 형제들 또한 그녀의 결백을 거듭 호소했으나, 유독 남편 운명과 시어머니 화수은만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이옥주는 후원 깊숙한 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경령이 몰래 옷가지와 음식을 보내며 보살폈으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화수은은 그마저도 금했다. 그 사이 정강선은 금은보화와 산해진미, 그리고 교묘한 말로 남편과 시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집안에서 점차 입지를 넓혀 갔다.
이러한 일은 뒤늦게 강정에 머물고 있던 양씨 부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시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화수은은 홧김에 이옥주의 부모 사당에 불을 지르고 신위를 훼손하려 하였으나, 자식들의 만류로 간신히 멈추었다.
그러나 집안의 불길한 기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 사이 정강선은 시녀를 매수하여 이옥주를 죽이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봄이 되자, 옥주는 후원에 갇힌 채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이의 혈통을 의심하는 운명이 끝내 아이를 해칠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출산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제대로 몸을 돌보지 못한 옥주는 날로 쇠약해져, 마침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오직 생사를 함께해 온 시비 춘앵이 몰래 약을 구해 먹여 간신히 목숨을 붙들어 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탄생을 끝내 숨길 수는 없었다. 출산 사실이 드러나자, 분노에 사로잡힌 운명은 칼을 들고 후원으로 달려갔다.
“그 아이가 과연 내 자식이란 말이냐. 그렇지 않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버리겠다.”
차가운 말과 함께 칼끝이 번뜩였다. 그 순간, 경령이 몸을 던져 앞을 막아섰다. 경령의 간절한 만류 끝에 옥주 모자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초췌하여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일 년 뒤, 전쟁에서 승리한 소현성과 소운성이 자운산으로 돌아왔다. 소현성은 이옥주의 일을 전해 듣고 곧바로 관련된 하인들을 잡아들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정강선의 음모를 밝혀내어 관련자들을 엄히 처벌하고, 정강선을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또한 운명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어 곤장을 맞게 되었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소운명은 이옥주에게 눈물로 사죄하였고, 누명을 벗은 이옥주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취봉각으로 돌아왔다.
이 일 이후, 소현성은 오랫동안 화수은의 처소를 찾지 않았다. 한편 양씨 부인은 옥주의 수명을 염려하여 운명에게 여러 아내를 더 들이게 하였으니, 그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많은 아내를 둔 인물이 되었다.
소현성의 넷째 딸 수빙은 석명혜 소생으로, 자태가 빼어나고 성품 또한 온화하여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어머니 석명혜는 이 딸을 각별히 아꼈고, 형제들 또한 수빙을 귀히 여겼다.
소씨 집안에는 딸들의 모습을 그려 화상으로 간직하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이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소현성의 벗이자 고인이 된 예부낭중 김희의 둘째 아들인 김현이 우연히 소부를 방문하였다가 수빙의 초상을 보게 되었고, 그 아름다움과 기품에 마음을 빼앗겨 끝내 상사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병세가 깊어져 자리에 눕게 되었다는 소문은 마침내 소현성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소현성은 죽은 벗의 아들이 병으로 신음하는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내 수빙과 김현의 혼인을 허락한다. 이후 김현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곧 두 사람은 혼인한다.
그러나 이 혼인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김현에게는 이미 정실부인 취씨가 있었고, 시모 왕 부인 또한 편벽된 사랑으로 취씨만을 아꼈기 때문이다. 수빙이 시가에 들어가 예를 올렸으나, 취씨는 노골적으로 수빙을 시기하며 끊임없이 험담을 늘어놓았고, 왕 부인 역시 이에 휘둘려 수빙을 냉대하였다.
수빙은 묵묵히 시모를 섬기며 도리를 다하려 하였으나, 집안의 기류는 점점 험악해져갔다. 여기에 김현의 형 김환의 악의까지 더해진다. 그는 명망 있는 소씨 집안을 처가로 둔 동생을 시기하여 김현과 수빙 부부를 함께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아내 위씨와 취씨까지 끌어들여 끊임없이 두 사람을 모함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수빙은 집안 깊숙한 곳에 갇혀 남편과 생이별하게 되었고, 김현 또한 모친의 노여움을 사 매를 맞은 뒤 끝내 감금되는 신세가 되었다.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서로를 마주할 수 없는 처지였으니, 두 사람은 애타는 그리움만을 품은 채 서로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김환이 수빙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는 거짓 죄목을 꾸며 관아에 고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음모는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 소운성에게 발각된다. 소운성은 즉시 김환을 추궁하여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소씨 집안에 알린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황제는 취씨와 위씨의 집안을 벌하고 김환을 유배 보내어 죄를 물었다. 이로써 수빙은 깊은 고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소운성의 도움으로 자운산으로 옮겨 살게 된다.
이후 김현이 돌아와 사태를 수습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왕 부인 또한 자운산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된다. 수빙은 시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고, 그 정성에 왕 부인의 마음도 점차 풀려갔다.
한편, 모든 것을 잃고 거지꼴로 떠돌던 취씨가 다시 돌아왔을 때, 김현은 분노하여 그녀를 죽이려 하였으나 수빙이 이를 만류하였다. 수빙은 오히려 그녀를 받아들여 집안에 머물게 하고 후하게 대했으며, 자신의 지위마저 나누려 할 만큼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후 수빙은 아들을 낳아 김씨 가문의 대를 이었고, 집안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중심이 되었다. 김현 또한 벼슬길에 올라 이름을 떨쳤으며, 왕 부인 역시 수빙을 진심으로 아끼게 되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도리를 지켜낸 수빙은, 마침내 시댁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소현성과 석명혜 또한 그런 딸을 내심 자랑스럽게 여겼다.
소현성의 막내딸 수주는 석명혜의 소생으로,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석명혜가 태음성을 삼키는 꿈을 꾸고 낳은 아이라 하여, 집안에서는 일찍부터 범상치 않은 운명을 지녔다고 여겼다. 양씨 부인 또한 이 아이가 장차 만인의 위에 설 것이라 짐작하였다.
과연 수주는 자라날수록 기품과 자질이 남달라, 일찍이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된다. 마침 황태자의 비를 간택하는 자리가 열리자, 수주는 여러 규수들과 함께 그 후보에 올랐다.
본래 황후는 수주를 태자비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간신의 술수로 또 다른 후보인 곽씨가 정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수주는 끝내 후궁으로 밀려나고 만다. 이로써 수주는 황제의 여인이 되었으되, 정궁이 아닌 후궁의 자리에서 궁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태자가 즉위하여 인종 황제가 된 뒤, 궁중의 기류는 점차 험악해졌다. 곽 황후는 질투심이 심하여 다른 후궁들을 억누르고, 특히 아름답고 지혜로운 소수주를 경계하였다. 황제는 소수주를 아끼면서도 태후의 뜻과 궁중의 질서를 염려하여 쉽게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수주는 스스로를 낮추며 더욱 조심스럽게 처신하였다.
어느 날, 곽 황후가 후궁들을 불러 세워 모욕을 주었을 때였다. 황제는 우연히 그 자리에 들었다가, 모욕을 묵묵히 감내하는 소수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순간 황제의 마음은 더욱 깊이 그녀에게 기울었다.
그러나 수주는 황제의 부름에도 쉽게 응하지 않았다. 총애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며, 끝내 자신의 분수를 지키려 하였다. 황제가 몸소 찾아올 만큼 마음을 보였으나, 수주는 그 뜻에 기대지 않고 더욱 절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럴수록 황제의 마음은 더욱 수주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수주는 시어머니인 태후를 곁에서 모시기 위해, 스스로 궁을 떠나 북궁으로 들어가기를 청하였다. 이는 총애를 피하고 궁중의 분란을 막으려는 선택이었다. 황제는 이를 거듭 만류하였으나, 수주의 뜻이 굳건함을 보고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총애에 기대어 머문다면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제 자리를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
이처럼 소수주는 황제의 사랑을 좇기보다 스스로 물러섬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 나갔다.
한편, 곽 황후의 질투는 점점 더 심해져 끝내 큰 화를 불렀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황후가 황제에게까지 무례를 범하자, 조정에서는 폐후를 논의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는 폐위되고 만다.
이후 황제는 소수주를 새 황후를 세우려 하였으나, 수주는 끝내 이를 사양하였다. 그러나 거듭된 권유를 물리치지 못하고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니, 이는 수주가 궁을 떠난 지 오 년 만의 일이었다.
황후가 된 뒤에도 수주는 조금도 교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폐위된 곽 황후를 불쌍히 여겨 여러 차례 선처를 청하였고, 그 마음에 감동한 황제 또한 그녀를 후대하게 된다. 궁중 사람들 또한 소 황후의 인품에 감복하였고, 질투하던 이들마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소 황후는 아들을 낳아 황실의 대를 잇고, 궁중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중심이 되었다. 총애를 탐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던 그녀는, 마침내 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리하여 소씨 가문의 영광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소현성의 자식들, 곧 소씨 가문을 이어간 한 세대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소. 소씨 가문의 자손들은 번성하여 대를 이어 갔소. 그러나 아무리 영화로운 집안이라 한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오.
양씨 부인을 비롯하여 소현성 부부와 여러 자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나니, 남은 자손들 또한 흩어질 위기를 맞게 되었소. 이에 운성은 형제와 자손들을 불러 모아 맹약을 세우고 가문의 질서를 다시 바로 세우려 하였지요. 이후 이들은 더 이상 권세를 좇지 않고 물러나 조용히 삶을 지키며 명맥을 이어갔으니, 사람들은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을 ‘소가촌(蘇家村)’이라 불렀다 하오.
또 작품의 끝에는 인종 황제가 소현성의 행실을 기려 그 일대기를 기록하게 하였고, 훗날 명나라의 유기가 이를 얻어 세상에 전하였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있소. 이러한 장치까지 더해지니, 이 모든 이야기는 마치 실재했던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듯한 인상을 주게 되지요.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부모를 섬기고 임금을 받들며 부부의 의리를 다하는 일—곧 충과 효, 그리고 열이라 하는 바가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 있음을 알 수 있소.
순조 임금의 따님이신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尹伯榮) 또한 이러한 이야기들이 <춘향전>이나 <심청전>과 같이 ‘전(傳)’으로 끝나는 짧은 작품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큰 서사라 평한 바 있으니, 실로 인간이 지켜야 할 법도를 온전히 담아낸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니 독자여, 이 이야기를 한낱 꾸며낸 이야기로만 여기지 마시오. 허구로 시작되었으되 현실을 닮아 있고, 한 집안을 그렸으되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으니, 이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한 편의 거울이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