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시원이는 자주 거짓말을 해댔다. 그렇지만 걔의 거짓말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스스로 거짓말 자제 권고를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일 년 중 거짓말을 가장 많이 했던 달은 3월이었는데,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고로 자기소개란 자기를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없던 시원이는 거의 모든 걸 지어냈다. 취미, 특기, 좋아하는 과목 … 그중 공을 많이 들인 거짓말은 단연 장래희망이었다.
‘꿈 없는 애’
시원은 꿈이 없었고, 그 사실이 꽤 창피했다. 꿈이 없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면 어린이 다운 푸릇함이 없는 애로 보일까 걱정됐다. “아니 너는 왜 꿈이 없니?”라는 말을 듣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다른 애들과 달리 바래 보이고 싶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면 상담 카드의 마지막 한 칸(장래희망)을 비워 둔 채 오랜 시간 고민했다. 2학년 때에는 아빠의 의견에 따라 파일럿을 적어서 냈고,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즐겨보던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을 적어냈다. 그건 정말이지 되고 싶은 꿈이 아니었다.
언제 한 번 장래희망 발표 시간에 당시 인기 직업이었던 의사를 말했는데, 시원의 차례 이후로 여섯 명의 애들이 같은 꿈을 말했다. 아무래도 그중 몇몇은 진짜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공부에 일가견이 없던 시원이는 자신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골머리를 썩여온 장래희망은 이후 진로로, 희망 학과로 이름을 바꿔댔고,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로 시원의 옆에 앉아있는 중이다.
언제쯤 장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정말 그녀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요구받지만, 계속해서 요구하는 걸 줄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의 초입을 더듬어보며 직업으로 설명되는 미래의 틀이 정말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