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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워내 Apr 13. 2022

잔디가 쏟아지는 때


여기 거꾸로 사는 사람이 있다. 언제나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두 다리를 위쪽을 향해 쳐든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오랜 시간 중력을 거스르는 몸뚱이를 잘 견딜 수 있다. 


거꾸리는 바닥에 붙어있는 눈으로 온갖 썩어가는 것을 본다. 괴로움과 함께 쏟아낸 토사물, 미워하는 사람의 신발, 도로에 쌓인 욕지거리. 대신 피어나는 것도 본다. 아기의 발, 미풍을 기다리는 이른 맹아, 눈길이 닿아 이는 물비늘. 


뒤집어 보니 그렇지 않을 때보다 보이는 게 많았다. 그럴 때마다 거꾸리는 거꾸로 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살기 전, 거꾸리는 세상을 뒤집어 보고 싶었다. 그랬지만 뒤집는 건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대체 뭐가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세상을 뒤집어 보고 싶다는 마음은 강렬했지만 미약했다. 거꾸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을 “그냥”이라며 뭉쳐 말하곤 했다. 


자신의 욕망을 설명하는 건 거꾸리에게 유난히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이든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가? 단순한 선호로만 남길 순 없는 건가? 어떤 때는 누군가 물어보지 않아도 설명을 요구하는 스스로에 잔뜩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충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뭉툭하게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생겨난 의문을 제대로 꼬집어야 풀리는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거꾸리는 노력했다. 어슴푸레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다 결국 물구나무를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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