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야기는 나를 유혹했다.
몇 살인지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시절 넓지 않은 방, 동생과 엄마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누워 계속 "또 해줘, 또 해줘"를 반복하던 내 모습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방 안이 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었고, 이제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도 다정하게 웃어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이야기꾼이 아니었다. 말주변이 좋지도, 내가 원하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열심히 반복 해줬다. 내가 멈출 때까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같은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담겨 있으면 된다. 범위가 얼마나 포괄적인가 하면, 소설·만화·드라마·영화(다큐멘터리)·에세이뿐만 아니라 상담 예능·시사고발 다큐 같은 프로그램도 챙겨본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는 대상의 실존과 상관없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에 강력한 매력을 느낀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누군가의 인생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는 튀르기예 출장 중에 골동품점을 찾는다. 마음에 드는 작은 병을 발견한 알리테아. 최근에 만들어진 모조품 같다는 양심적인 주인의 말을 뒤로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 같다며 그 병을 산다. 알리테아가 지저분한 병을 씻던 중 뚜껑이 열리고 만다. 이 일로 지니(이드리스 엘바)가 깨어나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고 말하는 알리테아. 지니는 소원을 빌지 않으려는 알리테아를 설득하기 위해 3천 년 동안 자신이 겪은 큰 사건들을 차례로 들려준다.
서사학자인 알리테아는 모든 문화권의 비슷한 이야기들이 행복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연구 과정에서 알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서도 들었다.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데."
엄마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지칠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에게 이 말은 의미보다 이쯤 반복했으면 그만하라는 신호로써의 기능이 더 큰 문장이었다. 어릴 땐 이게 엄마의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상의 말이었다. 왜 이런 말이 만들어졌을까? 어쩌다 온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와 가난을 인과 관계로 연결 지어 떠들게 되었을까?
그 답은 이 글에 없다. 정확한 결론을 추적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니까. 또 그런 건 내가 동경하는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니까. 때문에 나는 궁금함을 가지고 상상하며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영화 초반 소원을 말하길 주저했던 알리테아처럼 예정된 결말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쓰면 설명이 될까.
확실한 건 이야기가 내 삶을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