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을 권리

임현석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by 히스클리프

임현석 소설가외 7명의 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나'는 참, 거슬리는 게 많은 인간이다. 사소하게는 1초 남짓 스쳐 지나간 타인에게서 흘러온 향수나 담배 혹은 체취 때문에 하루 종일 괴롭고 또 어떤 날에는 누군가 (아마도 무심코) 내뱉은 말속에 그의 진심이 몇 프로쯤 되는지 상상하느라 스스로를 괴롭힌다.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밥벌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 가진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8편의 작품을 읽었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라면 느껴봤을 이런저런 상황과 관계에서 오는 갈등에 태그도 붙이고 밑줄도 그었다. 특히 표제작이 된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의 제목이 주는 보편적 공감이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소개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점주와 인간적 관계를 발전시키며 동시에 매장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회사의 매뉴얼의 일환이다. 영업부 전체 회식 날, 본부장은 화장품이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해 한가해 점주의 불만이 많은 거 같다며 히죽거린다.


다른 부서원들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로 따라 웃었다. 진영은 웃지 않았다. 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 웃을 것. 그냥 웃을 것. 그래야 인성 좋아 보여. 일도 잘 풀리고. 순오가 해줬던 조언이었다. (중략) 아주 잠시 동안, 진영은 그곳에서 아무 표정도 없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을 매개로 얽혀있다. 수월한 일처리를 위해 '잘 웃는 것, 그냥 웃는 것'이라는 옵션이 필요하다. 하지만 웃지 않을 권리도 잊지 않아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참, 거슬리는 게 많은 인간이다. 스스로가 어떠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표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애쓴다는 것은 진심이다. 감정과 생각, 특히 부정적인 요소를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배설하듯 말하지 않기 위해.

모든 걸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어쨌든 자신의 내부의 남겨진 말의 비율이 거의 없는 사람은 분명 있다고 본다. '뒤끝은 없다'면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걸 일단 말하고 보는 류의 사람이 내가 속했던 거의 모든 집단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어마어마한 뒤끝을 가진 사람인가?


"남자들이랑 일하니까 좋다. 여자들 많은 데서 일하는 거 징글징글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조직에서 이직한 새 동료가 첫 출근 날 내게 한 말이다.

"저도 여잔데요."

내가 남긴 건 웃지 않고 말한 이 말 뿐이다.


그는 내가 보였을까? 나만 빼고 보였을까?

몇 달 전 그가 뱉은 말을 여전히 곱씹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져진 말일 수도, 무심코 속엣말을 해버린 것일 수도 있다. 허나 무엇이 진실이든 이제 그 말은 나의 것이 되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일반 직원들의 성별은 쏠려 있고 또 다른 성별만이 상사인 조직에서 느꼈을 피로감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 말속에 담긴 다양한 측면의 불편함이 캐러멜처럼 이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입 안에서 서서히 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빨리 양치를 해버리고픈 심정이다.

그런데 내가 칫솔과 치약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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