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중입니다

김보라 [벌새]

by 히스클리프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지난 5월, 처음으로 값을 지불하고 뿌리가 있는 식물을 샀다. 절화가 아닌 식물을 나를 위해 산 건 처음이었다. 사실 분홍색 잎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충동적으로 선택했는데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건 사고 난 후 알았다. 그래도 얼마간 그 잎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속으로 ‘식집사가 된 건가?’ 생각하며 조금 키득거렸다. 부연하자면 나의 일상 전반은 대세나 유행과는 다소 멀기 때문에 ‘식집사’같은 신조어가 어쩐지 낯설었기 때문이다. 겨우 작은 화분 하나 들이고 ‘식집사’를 거론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아쉽게도 핑크색 잎은 금방 지고 말았다. 초록 잎들이 남았고 나는 핑크색 잎 없는 핑크콩고를 키우고 있다. 포털에 검색해보니 결론적으로 핑크색은 약품으로 만들어낸 사기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새잎이 나오니 모를 수가 없었다. 연둣빛 잎으로 태어난 새잎은 점점 색이 진해질 뿐이었다. 사실 나는 새잎이 나오는 과정에서 끝내 기대를 버리지 못했었다. 다를 수 있다고 마지막까지 바라고 또 바랐다.


영화 [벌새]에서 은희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여러 번 어긋나고 상처받는다. 그러다 우연히 한문학원에서 영지 선생님을 만난다.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있지 마. 알았지?

오빠의 잦은 폭력에 무기력했던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영화 내내 은희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악을 써 소리쳐도 외침은 도달되지 못한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준 영지의 말에 은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무력해 보이는 중학생 은희가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쩐지 이 대사는 미처 영화에는 드러나지 못한 숨겨진 영지의 서사 속 스스로를 위한 대사인 것처럼도 읽힌다. 다시 말하면, 영지의 의도보다 더 크게 은희의 삶에 파동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밀도가 낮은 행동이나 말이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트리거가 되는 찰나.


나의 핑크콩고는 9월 말부터 두 번째 새잎을 품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줄기를 가르며 새잎이 존재를 드러내는 중이다. 며칠 전 밤이었다. 새잎은 여전히 중심 줄기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으나 크기는 꽤 부풀어 있었다. 며칠 사이로 곧 분리되어 태어날 것 같았다. 흙을 만져보니 꽤 건조*했다. 언제 물을 주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무심코 물을 주었다. 핸드 드립 할 때처럼 천천히, 골고루, 충분히.

*핑크콩고는 흙이 충분히 마른 상태에서 물을 주면 된다고 한다. 오히려 물을 많이 주는 게 더 문제가 될 거라고 들었다. 그래서 특별히 날짜를 정해두지 않고 흙을 만져보고 필요할 때 주고 있다.


목말랐던 걸까?

받침대로 떨어진 물을 빼고 화분을 제자리로 올려두자마자 몇 초도 안 되어 “뾱”하고 새잎 일부가 분리되었다. 한 모금의 물이 필요한 순간이었나? 나는 내일 혹은 모래 물을 줄 수도 있었다. 아니 일주일쯤 더 두고 봤어도 핑크콩고는 시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새잎은 그 한 모금의 물 때문에 그 타이밍에 당당하게 홀로 설 결심을 했다.

새잎의 징조가 보이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루하루 더디게 크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전체를 돌아보니 새잎은 혼자서 굉장한 성장을 거듭 중이었다. 오롯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면서. 기특하다.


나는 핑크콩고가 아닌 누군가에게 한 모금의 물을 나눈 적이 있었나?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