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생겼다고?

이기호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by 히스클리프


이기호 소설가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中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둘째가 생겼다고?

몇 주 만에 집에 갔다가 앞집에 둘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앞집에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관리소 직원에게 직접 들었다고 강조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고 평온한 톤이었다. 나는 분명히 알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구름이(가명) 동생? 둘째가 생겼다고?

이건 최근 일어난 일 중 가장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이 삐뚤빼뚤해졌다.


구름이는 앞집 반려견이다. 2012년도의 내 기억 속에 구름이가 있는 걸로 보아 추정컨대 못해도 열 살은 먹었을 것이다. 2012년 혹은 그 이전 어느 때쯤부터 구름이는 앞집을 지켰다. 구름이는 앞집의 충직한 일원이다. 지나칠 정도의 충직함이 문제가 될 뿐. 구름이는 제집 문 근처에 바람이 지나가는 꼴도 못 보는 강아지다. 복도에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문을 흔들기라도 하면 구름이는 미끌거리는 거실 바닥을 힘차게 가로질러 현관 앞으로 달려 나와 거세게 짖는다. 얼마나 전속력으로 달리는지 밖에서도 다 들릴 정도이다.

언젠가 혼자 집에 있던 평일 낮에 무슨 연유인지 갑자기 짖기 시작한 구름이는 다섯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짖었다. 나중엔 목이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데도 짖음을 멈추지 못했다.

캉캉캉캉 컹컹컹컹 캉캉캉캉 컹캉 컹캉 우르르우르르 컹 컹

구름이는 자신이 왜 짖기 시작했는지 기억이나 했을까?


이렇게 한번 시작된 짖음은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네다섯 시간 심할 땐 앞집 사람 중 누군가가 돌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짖음 이전에 칭얼거림에 가까운 하울링이 있었다. 그때는 온 지 얼마 안 되어 구름이가 새끼 때였던 거 같다. 가늘고 얇은 목소리로 깡깡 거리다가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지쳐 포기했던 거 같다. 그것도 잠깐 구름이는 누구보다 전투적인 강아지로 성장했다. 언제나 예민하게 모든 순간을 포착해 강렬하게 짖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서른 가구 중 구름이가 몇 호에 사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구름이와 그 가족에 대한 불만이 없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 집에 남을 때 짖음은 더 심해졌기에 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앞집 네 식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로 살았다. 그런 얼굴을 마주하면 때론 부아가 치밀었다. 특히 아빠는 누구보다 분노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직접 항의한 적도 있었던 거 같다. 민원은 셀 수 없이 발생했다. 관리실과 경비실에서 꽤 자주 찾아와 앞집 문을 두드리고 읍소했다. 하지만 이는 구름이를 더욱 자극했고 더 맹렬하게 짖을 뿐이었다. 그저 아무도 앞집 근처에 오지 않을 때 우리 층은 평화로울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엘리베이터 등에서 이웃을 만나면 괜찮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구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겠냐고, 아니 어쩌면 교육이 어려운 예민한 강아지를 키우며 앞집 가족들도 놀라고 있을 거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는 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정중하게 합시다, 정중하게. 이건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 남자를 돕는 게 아니고 502호 할머니를 우리가 도와드리는 거예요.

…중략…

저는 이 돈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 갑시다! 사람들의 성의를 원 저렇게 무시해서야……

돈을 받으러 왔다는 안타까운 권순찬의 사연을 들은 아파트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그에게 전달하기 전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권순찬은 단번에 거절한다. 요청되지 않은 선의에 정중함 마저 더해 그에게 전달하려는 착한 사람들을.


피해를 당하고 있는 편에 서 있으면서도 나는 앞집 사람들이 개를 키울 자유를 떠들었다. 더불어 구름이의 ‘견권(犬權)’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가 생겼다고?


복도에서 구름이의 컹컹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실 이제 예전 에너지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소리는 꽤 작아졌고 목도 금방 쉰다. 아직 둘째가 따라 짖는 거 같진 않다.

누가 이들에게 둘째를 가질 자격을 주었을까?


십 년 넘게 나는 수없이 상상했으나 앞집 가족은 결코 떠올리지 않은 것.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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