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층사(層辭): 1971년 전주동국민학교의 봄
1971년의 봄, 전주동국민학교의 광활한 운동장은 유년의 비등하는 아성(兒聲)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해 어린이날을 즈음하여 거행된 백일장은, 갓 입학한 아이의 명징한 눈에 비친 세계만큼이나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론 국가라는 거대 서사가 부여한 준칙의 현장이었다."
효(孝)와 반공(反共)의 이중주
당시 백일장의 시제(詩題)는 아이들의 분방한 상상력을 동원하기보다, 시대가 요청하는 ‘도덕적 지향’을 내면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학년별로 약간씩 다르기는 했었으나, 그 줄기는 대개 세 갈래로 수렴되곤 했다. 오월의 눈부신 신록 아래 ‘어린이날의 희락’을 노래하다가도, 문장은 이내 ‘부모의 은애(恩愛)’라는 숙명적인 효심으로 흘러들었으며, 그 종착지는 예외 없이 '반공(反共)'이라는 결의로 매듭지어졌다.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수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관통하는 모든 어린이가 입어야 했던 사상적 제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백일장의 막이 오르면 교실 안은 일순간 정적에 잠겼다. 창밖의 녹음보다 푸른 꿈들이 원고지의 빈칸마다 채워지는 고요한 사투의 시간. 칠판 위에 정갈하게 쓰인 ‘반공’이라는 두 글자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서슬 퍼런 시대의 격식(格式)이자 단순히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당시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했던 가장 강력한 시대적 명령(命令)이었다.
세실리아와 헬레나 나의 두 누이들은 저마다의 내밀한 사유를 원고지 위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서걱거리는 연필 소리만이 감도는 그 공간은 유년의 사색이 문장으로 화(化)하는 엄숙한 산실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몽당연필의 끝을 짓씹거나 혹은 침을 묻혀가며, 200자 원고지의 좁은 칸 속에 자신들의 미숙한 내면을 우직하게 밀어 넣고 있었다. 그것은 고독한 사투였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저 멀리 운동장이나 거리의 소요(騷擾)는 마치 다른 세계의 소음인 양 아득하게 멀어졌다. 열린 창틈으로 스며든 오월의 농익은 풀냄새와 교실 마룻바닥의 참나무 향이 뒤섞인 공기는, 아이들의 사유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미처 채우지 못한 칸을 바라보며 막막한 눈을 들어 허공을 응시했고, 누군가는 이미 가득 찬 원고지를 넘기며 승리감에 젖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커튼 사이로 오월의 햇빛은 고요하고도 묵직하게 교실 바닥을 가로질렀다.
헬레나의 최우수상(最優秀賞)
글쓰기 시간이 끝나고,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은 풍금소리에 맞춰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를 제창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되는 '반달'도 불렀다. 그 후로도 서너 곡의 노래가 이어졌다.
노래가 끝나고 단상 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수거해 갔던 그 무거운 사유의 결과물들이 엄격한 선별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세상 밖으로 호명되는 순간이었다. 상장과 상품들을 선생님들이 날라왔다. 전교생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몇 사람의 이름들이 호명되었다. 마지막은 최우수상을 발표할 차례였다.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 이름은 바로 헬레나 누나였다.
기자촌의 좁은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이가 깨진 적이 있는 헬레나 누나는 그날따라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을 오월의 바람에 휘날리며, 수많은 시선이 겹겹이 쌓인 단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 뒷모습은 단순히 상을 받으러 나가는 어린 여학생의 발걸음이라기보다, 자신이 구축한 문장을 공식적으로 승인받으러 가는 승리자의 행보처럼 당당했다.
교장 선생님의 손에서 건네진 상장에는 ‘최우수상(最優秀賞) 헬레나’라는 글씨가 묵직한 서체로 쓰여 있었다. 그것은 누나가 원고지 칸마다 눌러 담았던 고뇌와 문학적 감수성이 국가와 학교라는 거대 체제로부터 얻어낸 값진 징표였다. 누나의 손에 들린 상장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으며, 부상으로 주어진 여러권의 공책과 연필 꾸러미는 그 시절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영광스러운 전리품이었다.
단상 아래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의 망막에는, 상장과 상품을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내려오는 누나의 상기된 얼굴이 강렬한 상(象)으로 각인되었다. 그것은 집안의 자랑을 넘어, 문장을 다루는 이가 도달할 수 있는 첫 번째 정점(頂點)을 목격한 경외심이었다.
누나의 그 작은 성취는 훗날 내 삶의 서사를 직조해 나가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이정표이자 긍지의 원천이 되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