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 이야기

사랑이란 때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다.

by 고영주


.현재 시부야역 앞에는 하치를 기리는 '충견 하치코 동상'이 세워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이란 때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다. ​ 그 뒷모습이 영영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남겨진 자의 시간은 그곳에 얼어붙어 화석이 된다.


​​겨울의 시부야역은 언제나 바람이 심했다. 하치는 그 바람찬 플랫폼 위에서 우에노 교수를 10년 동안 기다렸다. 하얗게 서리 내린 플랫폼 위,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고개를 들었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그가 기다린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늙고 병든 하치는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시부야역 입구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를 ‘충성의 개’라 부르며 동상을 세웠다.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하치 이야기>

눈이 내리는 날 일본 아키타현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나고 이 강아지는 동경제대의 우에노 교수에게 보내지게 된다. 우에노 교수는 강아지가 뒷다리를 힘차게 벌리고 선 모습이 한자 '여덟 팔(八)'자와 닮았다고 하여 '하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를 극진히 아끼며 정성으로 키우고 하치 역시 사랑에 보답하듯, 매일 아침 출근하는 우에노 교수를 시부야역까지 배웅하고 저녁 퇴근 시간에는 역 앞으로 마중을 나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하치의 모습은 역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에노 교수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뇌일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주인은 죽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하치는 그날 저녁에도 변함없이 시부야역에서 우에노 교수를 기다린다. 하치는 다른 곳으로 입양되기도 하고 길거리를 떠돌지만 하치는 저녁만 되면 우에노 교수가 돌아오던 시간에 맞춰 시부야역으로 향한다. 그렇게 무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치는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역 앞을 지킨다.

세월이 흘러 늙고 병든 하치는 눈이 내리는 추운 어느 겨울날, 시부야역 입구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하치는 꿈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우에노 교수와 재회하며 평온하게 잠이 든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러나 과연 충성이라는 단어로 하치의 10년을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하치의 10년은 충성이 아니라 상처였다. 살아갈 자리 전체가 무너져 내린 자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흔적 앞에서 하치의 시간도 멈췄다. 세상 사람에겐 단단한 믿음으로 보였던 그 기다림이, 정작 그에게는 자신이 속했던 세계로 돌아가려는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인지과학자 호로비츠는 하치의 기다림은 '사회적 맥락의 소멸' 이후 짐승의 뇌가 선택한 처절한 방어기제였다고 말한다. 주인이라는 유일한 세계의 축(軸)이 사라진 하치에게, 시부야역은 단순히 기다림의 장소가 아니라 무너진 우주를 복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억의 장소'였던 것이다.


하치의 고독을 '충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했으나, 실상 그 세월은 버림받은 존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이자 처절한 단절과 결핍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비극은 비단 하치만의 것이 아니며, 이 땅의 모든 유기견은 하치의 그 쓸쓸한 그림자를 숙명처럼 닮아 있다.

​버림받은 동물에게 유기란 우연한 사고나 일회적인 불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총체적인 파국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품은 단순한 안식처 그 이상이었다. 손에 쥐여주는 먹이보다 중요한 것은, 막막한 세상을 온전히 버티게 해주는 단 하나의 정박지(碇泊地)가 바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생의 유일한 ​유일한 지표(指標)가 끊기는 순간, 개들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날 선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적막한 고립 속에서 서서히 넋을 잃어간다. 어느덧 그들의 눈망울에는 세상을 향한 신뢰 대신, 이해할 수 없는 공포만이 덧칠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실감과 고독은 그들의 비극적인 행동 양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처음 길 위에 남겨진 개들은 자신이 버려진 그 지점을 숙명처럼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배회와 고착'의 과정을 겪는다. 그것은 충성심이라기보다, 무너진 세계가 다시금 복구되기를 갈구하는 처절한 기도의 몸짓에 가깝다.

그러다 보호소라는 낯선 공간에 던져지면, 많은 개들이 식음을 전폐하거나 벽을 향해 몸을 웅크리는 무기력증을 보인다. 이는 타자와의 소통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최후의 방어기제이자,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해 품었던 무조건적인 신뢰가 난도질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때로는 생존을 위해 지나가는 인간에게 과도하게 구걸하거나, 반대로 작은 자극에도 소스라치며 이빨을 드러내는 극단적 경계를 보이기도 한다.


이 모두가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는 슬픈 외침이다. 동물 심리 전문가의 안목에 비친 하치의 거동은, 단순히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쫓는 행위가 아니라 파쇄된 생의 근거를 기어이 복구해 내려는, 처절하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한 존재론적 강박(强迫)이라는 것이다.

​주인이 사라진 역전 광장은 하치에게 더 이상 공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주인이 건네던 다정한 음성과 손길이라는 ‘유일한 세계의 질서’가 마지막으로 작동했던 성역이다. 그 질서가 무너진 순간, 하치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버린 채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생 전체를 던진 것이다.


이렇듯 하치의 화석화(化石化)된 시간과, 유기견들이 허공을 향해 토해내는 유령 같은 비명, 그리고 1971년 낯선 구로동의 거친 골목에 속절없이 내던져졌던 나의 유년은, 결국 상실이라는 하나의 서사 속으로 무겁게 엉겨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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