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총구

구로동 꼬마가 1971년 8월 유한양행 앞길에서 목격한 시대의 비극

by 고영주



어떤 기억은 유년의 영토를 송두리째 폐허로 만들며 찾아온다. 내게는 유한양행 앞을 피로 물들였던 그해 여름의 총성이 그러했다."



​71년 8월의 어느 월요일, 구로동의 여름은 불길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나는 세실리아 누나의 손에 이끌려 영등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구로동 짐 근처를 절대 벗어너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나 구로동 공터의 조무래기들을 평정한 내게 영등포는 미답의 영토였다.


​구로동의 눅눅한 골목을 뒤로하고 대로변으로 나섰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오후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쏟아내는 가혹한 열기였다. 장마가 끝난 대기는 흡사 거대한 가마솥의 뚜껑을 덮어버린 듯 숨 막히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영등포를 향해 뻗은 아스팔트 길 위에는 그보다 더 뜨거운 열망이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풍경들은 서서히 그 기색을 바꾸어 갔다. 옹기종기 모여 생존을 가늠하던 가난한 지붕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내 녹슨 철골과 거대한 시멘트 담벼락들이 성벽처럼 우리를 압도하며 나타났다. 담장 너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육중한 기계들이 지면을 울리는 저주파의 진동을 내뱉고 있었는데, 그것은 흡사 거대한 짐승이 소화되지 못한 욕망을 토해내며 내지르는 신음과도 같았다.


​영등포의 심장부로 다가갈수록 공기는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분명 살을 태울 듯한 무더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매연 사이로 달궈진 쇳덩이가 식어갈 때 나는 그 특유의 비릿하고도 서늘한 금속 향이 배어 나왔다.


​그곳은 무언가 거대한 기계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킨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틀리고 있었다. 한여름의 습한 공기 속으로 역한 화약 냄새와 타이어 타는 고약한 악취가 섞여 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이 도시의 비정상적인 박동을 재촉하는 듯했다.


​"무장공비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과 동시에 고막을 찢는 굉음이 간신히 유지되던 고요를 산산조각 냈다. 유한양행 앞 대로상에 멈춰 선 버스는 이미 누더기가 된 채 헐떡이고 있었다. 차창 유리는 예리한 파편이 되어 아스팔트 위로 쏟아졌고, 벌집처럼 구멍 난 차체 사이로는 뜨거운 엔진의 비명 같은 희뿌연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채 버스 안의 무장 대원들은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총구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서릿발 같은 살기와 말로 다 못 할 허망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곧이어 길 건너편에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응사가 시작되었다.

​건조한 총성이 뙤약볕 아래를 가로질렀다. 보도블록은 탄환에 맞아 비명 지르듯 튀어 올랐고, 공중에는 화약 냄새와 타이어 타는 고약한 악취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군인들이 쏜 예광탄이 한낮의 빛을 뚫고 붉은 선을 그리며 버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버스 안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은 이내 총소리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실리아 누나는 내 머리를 가슴팍으로 거칠게 끌어당기며 담벼락 뒤로 몸을 날렸다. 내 뺨에 닿은 누나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떨리고 있었다. 담벼락 너머로 얼핏 보인 풍경은 지옥의 한 조각 같았다. 아스팔트 위로 번져나가는 검붉은 혈흔이 뜨거운 여름볕에 달궈지고 있었고, 부서진 버스 앞에는 주인을 잃은 군모가 맥없이 뒹굴고 있었다.

​"무장공비가 또 내려왔나 봐!"

​비명 섞인 외마디 소리가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니던 탄피만큼이나 차갑게 고막을 때렸다. 겁에 질린 세실리아 누나는 내 손가락 뼈마디가 바스러질 정도로 힘을 주어 맞잡았다. 누나의 손바닥에서 배어 나온 차가운 식은땀이 내 손등을 축축하게 적셨다. 우리는 영등포의 지옥을 등지고 구로동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내내 허파 속으로는 매캐한 화약 연기와 타이어 타는 냄새가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지난 6·25 웅변대회 때 단상 위에 올랐던 누나의 모습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불과 두 달 전, 누나는 야무지게 쥔 주먹을 휘두르며 "북괴는 호시탐탐 우리를 해치려 무장공비를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열변을 토했었다. 그날 누나가 토해냈던 서슬 퍼런 경고가 지금 내 눈앞에서 시커먼 연기와 총성이 되어 현실로 구현되고 있었다.

달리다 돌아본 하늘은 기괴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투명하게 부서지던 여름 햇살은 간데없고, 버스가 멈춰 선 유한양행 근처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거대한 기둥이 되어 하늘을 찔러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도시라는 거대한 짐승이 내지르는 비명 같았고, 누나가 그토록 경계해야 한다던 '악의 침입' 바로 그 자체였다.


​그날 저녁, 미디어가 쏟아내는 속보에 온 세상이 들끓었다. 무장공비 20명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경과 민간인 수십 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언론의 태도는 의문투성이였다. 처음엔 '북괴 무장공비'라며 적개심을 부추기더니, 돌연 '군 특수범'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꺼내 들었다. 엇갈리는 정보와 모순된 헤드라인 속에서 진실은 점점 더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흐른 뒤에야 나는 그날의 진실과 온전히 대면할 수 있었다. 영등포에서 그런 참혹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무렵, 나는 내가 목격한 것이 사실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북에서 내려온 괴물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에 의해 소환했다가 쓸모가 다하자 쓰레기처럼 내던진 우리의 아들이자 형제들이었다. 그날 내가 목격한 지옥의 실상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거대하고 잔혹한 역사의 부산물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 철저히 갈려 나간 인간들의 처절한 비명이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실미도 사건의 진실

​1968년 정월, 북한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했던 '김신조 사태'는 박정희 정권의 심장부에 지울 수 없는 공포와 치욕을 새겨 넣었다. 이에 대한 보복의 결기로 급조된 것이 바로 '684 부대', 즉 실미도 특수부대였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평양 주석궁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목을 베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무심하게 굴러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남북 사이에는 화해의 미풍이 불기 시작했고, 살인 병기로 길러진 서른한 명의 사내들은 일순간 국가의 '수치스러운 흉터'가 되어버렸다. 섬 안에 갇힌 채 3년 4개월이라는 무망(無望)한 세월을 견뎌야 했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급의 중단과 가혹한 매질, 그리고 존재의 부정뿐이었다.

​결국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한 24명의 대원(7명은 훈련 중 사망)은 기간병들을 처단하고 실미도를 탈출했다. 그들은 인천 독배부리에 상륙하여 시내버스를 탈취한 뒤, 자신들을 이 지옥으로 밀어 넣은 '상부'를 향해, 즉 서울 청와대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구로동에서 대방동 유한양행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3km 남짓한 그 지척의 공간에서 벌어진 참극은 국가 폭력이 잉태한 비극의 산물이었다. 유한양행 앞에서 멈춰 선 그 버스 안에서 뿜어져 나오던 연기는 버림받은 아들들이 국가를 향해 내뱉은 마지막 울분이었고, 자폭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밖에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었던 존재들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나의 유년은, 그렇게 진실을 거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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