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淸泠浦)​, 그 머나먼 유배 길

그날 조선의 심장은 멈추었다

by 고영주


1457년 정유년(丁酉年) 유월, 창덕궁 돈화문 앞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수양대군(首陽大君 )에게 보위(寶位)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열 일곱 소년 왕이 마침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오백리 유배길에 오른 날이었다.


​창덕궁의 기와지붕 위로 유월의 뙤약볕이 칼날처럼 쏟아졌으나, 배웅하는 이들의 가슴속에는 시린 서리만 가득했다. 정순왕후 송 씨의 애끓는 곡성(哭聲)이 도성 안을 메웠고, 그 뒤를 따르는 궁녀와 내관들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채 옷소매를 적셨다. 수양대군의 감시 아래 서슬 퍼런 칼날의 침묵만이 흐르던 그 아비규환의 이별 앞에서, 소년 왕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가장의 부재(不在)는 소리 없이 우리 삶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철부지였던 나는 그 거대한 결핍의 무게를 미처 가늠하지 못한 채, 먼지 풀풀 날리는 구로동의 골목과 잡초 무성한 공터를 유령처럼 배회했다.

​어머니는 기울어가는 가운(家運)을 붙들기 위해 홀로 고독한 사투를 벌이고 계셨다. 푹 꺼진 눈동자 너머로 수천 번의 수습책을 모색하고 또 뒤엎으셨겠지만, 냉혹한 서울의 콘크리트 바닥 어디에도 어머니와 어린 남매들을 위한 구원의 묘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가 내린 결론은 조상의 뼈가 묻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오지 망덕으로의 퇴각이었다.


금부도사 권반이 이끄는 군사 오십 여 명에 둘러싸인 행렬은 처연한 장례의 행렬과도 같았다. 사육신의 절개는 이미 단죄되어 피로 씻겼고, 곁을 지키는 이는 몇몇 하인과 소수의 궁녀뿐이었다.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거친 한강 물살을 건널 때, 노산군의 시선은 멀어지는 한양 도성에 머물렀다. 그것은 임금이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건너는 망각의 강이었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인후동의 낯익은 골목 어귀, 우리가 한때 뿌리내리고 살았던 그 정겨운 풍경이 어디쯤인지 기를 쓰고 찾아내려 애썼으나, 무심한 버스는 소년의 향수를 비웃듯 휙휙 소리를 내며 과거의 기억들을 뒤편으로 밀어낼 뿐이었다.


노산군은 영월로 향하는 굽이진 길 위에서, 문득 일 년 전 그 참혹했던 추국장의 환영을 떠올렸다.
​매질에 터진 살점이 시뻘건 낙형(烙刑)의 불길에 지져지며 고약한 비린내를 사방에 흩뿌리던 그날, 성삼문은 신음 한 자락 섞이지 않은 형형한 목소리로 숙부를 끝내 ‘나리’라 불렀다. 붉게 달궈진 인두가 가슴을 파고드는 극통 속에서도 그는 어좌를 쏘아보며 만고의 대의 앞에 권력의 부당함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었다. 비루한 육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으되, 죽음을 넘어서려는 유자(儒者)의 결벽한 기개만큼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살아 도리어 집행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 뒤로 멀어지는 한양 땅에는 그때의 피 냄새가 여전히 진동하는 듯하여, 노산군은 시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발길을 옮겼다.


​전주를 지나 진안으로 향하는 길은 이제 문명의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고행(苦行) 길이었다. 버스가 엔진의 비명 섞인 굉음과 함께 곰티재의 가파른 굽잇길을 돌 때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천 길 낭떠러지의 아찔한 높이는 우리가 다시는 서울로, 혹은 전주의 평온으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길을 지워버렸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내가 맞닥뜨린 가혹한 형벌은 차멀미였다. 곰티재의 험한 고갯길이 버스의 차체를 무자비하게 흔들어댈 때마다, 내 몸뚱이는 영혼마저 게워낼 듯 요동치고 있었다.


양평과 여주를 거쳐 강원도 원주에 닿는 길은 더위와 흙먼지가 뒤섞인 고행이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마른하늘 아래, 말발굽이 일으키는 뿌연 먼지는 노산군의 눈가를 붉게 물들였다. 갈증에 목이 타들어 갔으나 호송 책임자의 냉대 속에 물 한 모금 청하기 어려웠던 그 가혹한 여정 속에서, 왕의 위엄은 길가의 잡초처럼 짓밟히고 있었다.


​달궈진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기름 냄새와 비포장도로의 먼지가 뒤섞인 버스 안의 공기는 이미 숨을 쉴 수 없는 질식의 공간이었다. 창밖의 낭떠러지를 볼 겨를도 없이, 밀려오는 구역질은 사정없이 내 마른 가슴팍을 훑고 올라왔다. 결국 참지 못한 신음과 함께 토사물을 뿜어냈다. ​누나들의 질겁하는 비명 사이로, 어머니는 말없이 무명손수건을 꺼내 하얗게 질린 내 입가를 닦아내고, 바닥에 흩어진 오물들도 훑어내셨다.


주천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영월 청령포(淸泠浦)는 가혹하게도 아름다운 천혜의 감옥이었다. 서쪽은 육육 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이 병풍처럼 앞을 가로막고, 삼면은 서강(西江)의 깊은 물줄기가 휘감아 돌아 영락없는 배의 형상[行舟型]을 하고 있었다. 육지 속의 섬, 그 거대한 배의 갑판에 유폐된 소년 왕은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고립의 형틀에 갇힌 셈이었다. ​산세가 험해질수록 노산군의 눈망울에서 희망의 빛은 사위어갔다. 청령포의 소나무들이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여 왕을 맞이했다.


버스가 우리를 목적지에 부려 놓았다. 풀을 뜻하는 모실(모곡(茅谷)이라는 곳이었다. 풀 마을...어머니는 무거운 보따리와 누이들의 지친 기색을 이끌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논밭 사이의 황톳길을 걸었다. 하얀 꽃이 가득 핀 메밀밭을 지나자 징검다리가 강물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서강(西江)의 푸른 물줄기는 자비 없는 포위망이 되었고, 퇴로 없는 유배지는 산 자의 무덤이 되었다. 그렇게 영월의 굽이치는 물살 속에는 지워지지 않을 비운의 서사가 새겨졌다. 유폐된 소년 왕은 단 한 걸음도 밖으로 내디딜 수 없는 고립의 형틀에 갇힌 채, 서서히 스러져 갔다.


​마침내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망덕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듯 휘감아 흐르는 정자천의 강줄기였다. 우리는 점점이 박힌 징검다리를 건넜다. 뒤돌아보니 강물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지워버렸고 감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매미 울음소리는 유배된 영혼들이 당도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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