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1
자주 꾸는 꿈이 있다.
나는 난데없이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이다. 꿈속의 나는 시간이 얼마 없다. 한정된 시간은 꿈마다 다르다. 30분일 때도, 몇 시간일 때도 있다. 하루를 넘기는 법은 여태껏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혼자다. 주어진 시간동안 나는 파리와 단둘이 있을 수 있어서 잠시 기쁘다. 그러다가 서둘러 뭘 할지 고민한다. 역시 답은, 걷기다. 나는 쓰다듬고 싶은 파리의 거리거리를 걷는다. 무프타 거리, 보쥬 광장에서 마레로 이어지는 거리, 시떼 섬과 생루이 섬을 잇는 다리를.
걷고 걷다가 성에 차지 않아서, 신발을 벗는다. 한 손에 신발을 들고 파리를 맨발로 걷는다. 걷다가 달리기 시작할 때쯤, 잠에서 깬다. 그때면 이게 꿈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때문이다.
현실의 파리를 맨발로 걸은 적은 없다. 그 대신 일산의 큰 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맨발로 걸은 적은 있다. 비가 오던 여름이었다.
#맨발 2
파리를 다녀온 후, 나는 20유로 정도 주고 샀던 벤시몽 스니커즈를 매일 신었더랬다. 선명한 푸시아 핑크색 선이 얇게 둘러져있는 갈색 엘라스틱 모델이었는데, 통 그 모델을 찾을 수 없는 걸 보니 아마도 한정판이었나 보다. 그 당시 벤시몽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웠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의 일상이 여전히 녹록치 않아 자주 슬펐는데, 벤시몽을 신고 있으면 파리와 조금이라도 연결된 느낌이었다. 당연히도 스니커즈는 점점 해어졌다. 그런 신을 발견하면 마음이 조금 더 쓰리곤 했다.
어느 날, 퇴근길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광역버스 창밖을 빗줄기가 세차게 두드렸다. 우산도 없는데 난감했다. 무엇보다 벤시몽을 비에 젖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과감히 신발을 벗어 가슴에 품었다. 정류장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집이었다. 큰 사거리를 건너서 조금만 더 가면 집이었다.
빗속을 맨발로 걷기는 처음이었다. 아니, 일상의 아스팔트 도시를 맨발로 걷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신경은 쓰였지만 내게는 파리에서 사온 벤시몽이 더 중요했다. 가죽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나를 설레게도 하고 마음 아프게도 하는 그 벤시몽이.
막상 걷기 시작하니 가슴이 쿵쿵 뛰기는 했지만, 소중한 것을 위해 미친 짓을 하는 내 자신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5분 남짓 동안 마치 파리를 걷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 맨발 3
심해진 코로나로 인해 스윙 강습도, 소셜도 모두 중단된 지 몇 달 째였다. 스윙을 함께 배우는 친구 C와 Y랑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마음이 동했다.
‘춤을 추고 싶어.’
‘안 되겠어! 우리 춤추자!’
‘마스크 쓰고, 사람들 없는 곳에서 추면되지 않을까?’
인적이 없는 탁 트인 공간을 찾다가 친구네 근처 공원이 물망에 올랐다. 당첨. 금요일 저녁 우리 셋은 스피커를 챙기고 공원으로 향했다. 장마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밤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장마 피해의 흔적이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코로나가 무색하게 딱 붙어있는 연인들도 몇 쌍 보였다.
딱 좋은 공간이 있다고 C가 말했다. 작은 연못을 뒤로하고 펼쳐진 너른 무대였다. 저 멀리 사이가 좋아 보이는 연인 세 쌍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우리, 여기서 하는 거야?”
“저 사람들..... 우리 보고 있는 거 맞지?”
“몰라, 그냥 하자. 노래 틀어.”
음악이 흘렀다. Y가 나에게 춤을 청했다. 스윙댄스를 배운 후로, 음악이 흐르면 나는 내가 모르는 걸음을 걷는다. 음악이 시작되어야 알 수 있는 걸음이다.
락스텝, 트으리플, 트으리플
이 얼마 만에 밟는 스텝인가.
우리는 초보 스텝부터 트리플 스텝까지 함께 배웠다.
스윙화가 아니다 보니, 스텝이 잘 밟아지지 않았다. 신발이 바닥과 부대끼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내 발걸음은 무엇에 걸린 듯 절뚝거렸다. Y의 리딩도, 음악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재빨리 신발을 벗어 저만치 던져버렸다. 다시, 다시.
락스텝, 트으리플, 트으리플.
빌리 할리데이가 ‘All of me’를 열심히 불러주었다. 이제 내 발바닥은 무대와 갈등하지 않는다.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나는 맨발의 감각에 집중했다. 단단한 바닥에 닿는 내 발바닥은 생각보다 말랑하고 탄력이 있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맨발의 감각이었다. 꿈에서, 비오던 횡단보도에서 느꼈던 두근거림이었다.
춤을 추는 동안 내가 밟고 있는 공간이 그토록 원하는 장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로든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시기여서 더욱 뭉클했다. 잔잔한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춤출 수 있는 친구들 덕분이었다. 음악이 끝날 때 나와 Y는 신나게 웃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이제 C와 춤 출 차례.
맨발로 밟는 ‘여기’는 충분히 '지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