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는 순전히 '비포선라이즈' 영화 때문에 갔다. 그냥 그 영화에 담긴 거리를 걷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식탐이 하늘을 찌르지만, 그때는 아무거나 먹어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먹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먹어야 힘이 날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먹는 시간은 지친 여정의 휴식이요, 그 곳을 내 마음에 각인할 가장 확실한 감각이었다.
그 당시 식탐보다 수줍음이 컸던(지금으로써는 이해가 통 되지 않는) 조그만 마음의 나는, 어색하고 수줍은 것보다 배고픈 것이 더 나았다. 그래서 주로 걸으며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을 사먹거나, 손님이 별로 없는 가게에서 산 음식을 대충 먹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음식을 대충 먹은 여행지에서는 추억도 적다. 비엔나에서도 컵에 담긴 체리를 먹으며 걸었고, 콜라를 사서 거리 벤치에 앉아 마셨다.
비엔나에는 슈니첼이 있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읽었다. 그가 짤막하게 쓴 에세이에 연달아 세편 정도 슈니첼이 언급되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세 번이나 생각하며 글을 쓰는 음식이라니. 그리고, 송아지 고기를 튀긴 것이라니!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도 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메뉴는 정해졌다.
슈니첼을 먹어야지. 혼자 식당에 들어가 앉아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슈니첼을 먹어야지. 시원한 음료수도 마시고.
숙소를 떠나기 전, 슈니첼이 맛있는 집을 한군데 찾아서, 위치와 주소를 숙지하고 길을 나섰다.
화창한 비엔나의 거리, 슈니첼이 맛있기로 유명한 그 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 집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이 아닌가! 가게 안은 사람들로 활기찼고, 날은 너무나 밝고, 저 레스토랑 안의 근사한 수트를 입은 직원 분은 나를 보면서 환히 웃고 있다. 그렇다, 나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다. 아이 때도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 동네에서 어린이 인형극을 한다고 여기저기서 초대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돈을 주고 구매한 친구의 티켓과 초대권인 나의 티켓의 모양이 다른 것을 깨닫고, 공연장에서 쫓겨날까봐 무서워서 기어코 인형극을 보러 가지 않았더랬다. 어색하고 수줍은 것보다 보고 싶은 인형극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안전제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안고, 나를 보면서 활짝 웃는 레스토랑 직원 분을 보면서 걸어가다가, 그러다가 그 가게를 훽 지나쳐 버렸다. 아, 레스토랑이 멀어졌다. 내 뒤로, 뒤로, 레스토랑이 멀어졌다. 지금 유턴해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너무 창피하지 않냐말이다. 나는 자꾸자꾸 앞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은 길을 잃었을 때 무조건 직진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나는 그때 어디로 갈지 몰라 미아처럼 마냥 직진했다. 나는 직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걷고 걸었더니, 다시 그 레스토랑이 나왔다. 익숙한 길을 따라서 한 바퀴를 돌았나보다. 아,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일까, 어떡하지, 비행기를 타고 아주 오랜 시간을 날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날 상냥히 반겨주는 레스토랑에조차 들어갈 용기가 없다니. 모두가 날 바라보는 것 같고, 저 레스토랑 안의 직원을 실망시키는 것 같아 진땀이 났다.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그 구역을 한 바퀴 더 돌고 말았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이정도 용기도 내지 않고서야, 뭐가 혼자 하는 여행이냐.
아무리 내 자신에게 호통을 쳐봐도,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마음은 조그맣다. 하지만 그날은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렇게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겠냐고.
이미 그 레스토랑은 또 지나쳤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사람이 거의 없는, 그리고 레스토랑의 그 누구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그냥 들어갔다. 사실, 무엇을 파는지, 슈니첼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레스토랑 테이블에는 자주색 식탁보가 깔려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하얀 머리의 직원분은 셔츠에 조끼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내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어정쩡하게 들어가자, 직원분은 과하지 않게 다가오셔서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나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슈니첼 플리즈"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직원 분은 내 앞에 놓인 유리잔에 물을 따라주시며 잠깐 웃어주었다.
다행히, 슈니첼은 있었다. 이윽고 레몬이 곁들여진 슈니첼이 나왔다.
레스토랑 안에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고소한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송아지튀김 위에 레몬즙을 뿌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자르기 시작했다. 바삭한 튀김옷이 나이프에 벗겨지고, 부드런 송아지살이 드러났다. 포크와 나이프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좋다. 앉은 의자도 편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정말 배가 고팠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나는 안전만을 바라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모험이 하고 싶다.
쪼로록, 물 따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먹는데 온통 집중이 돼서 옆에 누가 다가오는 지도 몰랐다.
오후 3시 즈음, 그렇게 점심을 먹었다.
하얀 머리의 직원분이 멀찌감치 서서 맛있게 식사를 하는 나를 보고 잠깐만 웃어주었다. 그 거리감이, 잠깐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