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의 볶음국수

by 이유

타이베이에서 먹은 중 가장 맛있었던 게 무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음식이 있다.

얇은 볶음 국수인데, 마른 새우와 다진 야채를 함께 볶은 것이었다. 간은 삼삼하고 기호에 따라 매운 소스와 함께 먹기도 한다. 약간 잡채 같기도 한데, 그보다 면에 찰기는 없고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의 길이로 뚝뚝 끊겨있다. 나는 그 국수를 비탄의 조용한 주택가, 작은 빵집에서 먹었다. 일출을 보고 난 후였다.


타이베이로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크게 탈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노로 바이러스라고 했다.

“며칠 후에 여행을 가는 데 어쩌죠. 큰맘 먹고 가는 여행인데, 괜찮을까요.”

나도 모르게 진단을 받다가 신세한탄을 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을 따랐더니 어느새 나는 비타민D 검사를 하고 있었다. 비타민D 수치가 심각하게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몸이 안 좋은 거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몇 만 원짜리 비타민제를 권했다. 이거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지사제도 처방해주면서 말했다.

“여행 가서 푹 쉬고, 햇볕을 최대한 듬뿍 쬐고 와요.”


2월의 타이베이는 햇볕을 쬐기 좋은 날씨였다. 머무는 동안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고 맑은 날이 이어졌다. 햇볕 욕심을 냈다. 임가 화원의 연못 앞에 몇십 분이고 앉아서 수면에 부서지는 볕을 구경했다. 깃털 하나가 공연이라도 하듯 빙그르르 돌아 수면 위에 착지했다. 신 베이터우에서 온천을 한 후, 개울가 옆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볕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가방에서 비타민D가 잔돈처럼 소리를 냈다. 짤랑짤랑, 짤랑짤랑.

문득 일출이 보고 싶었다. 타이베이에서 일출을 보기 좋은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보았다. 유스호스텔 로비에 놓인 여행책자에서 비탄이라고 했다. 타이베이를 떠나는 마지막 새벽, 비탄으로 갔다.

비탄은 아담한 산과 잔잔한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숙소에서 MRT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도착을 했어도 뜨는 해를 어디서 보면 좋을지 몰랐다. 동서남북. 해는 동쪽에서 뜨니까, 그런데 동쪽이 어디더라? 어둔 새벽하늘을 두리번거리는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하던 주위가 가벼워지고 있었다. 이럴 수가. 동그랗게 올라오는 붉은 해를 보고 싶었는데.

실망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저만치 낮은 건물들 너머로 솟아오르는 황금빛이 보였다. 해가 뜨고 있었다. 동그란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막 올라오는 해가 뿜어내는 황금색 선이 보였다. 빠끔히 머리카락 정도 보이는 일출에 내 마음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제대로 된 일출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햇살이 기지개를 펴듯 화려한 색을 펼쳐 보였다. 매일 뜨고 지는 해를 이렇게 관심 있게 바라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뭐하느라 일출도 안 보고 살았던 걸까. 비타민D가 모자란 사람답다고 생각했다.


밝아진 아침, 이제 뭐라도 먹어야 했다. 일찍부터 나왔더니 배가 고팠다. 그런데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직 7시도 되지 않은 아침이었고, 주위에 영어로 된 메뉴가 있는 음식점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저기 다리 건너 주택가 초입에 오렌지색 불빛이 보였다. 어쩐지 믿음직스러운 불빛이었다. 무작정 그곳까지 가보니, 빵집이었다. 화려한 간판도 없었고 체인점도 아니었다. SNS에서 구경도 못한 곳이었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여러 종류의 빵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먹음직스럽고 깔끔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창가 진열대에는 아침메뉴로 보이는 찹쌀밥과 볶음 국수가 있었다.

여행 오기 전에 탈도 났는데, 잘 모르는 음식을 먹어도 좋을지 잠깐 망설이다가 주문을 했다. 막 일출을 본 설렘 때문이었을까, 일출과 비슷했던 빵집의 따스한 불빛 때문이었을까, 볶음 국수는 친근하고 안전해 보였다. 무엇보다 맛있어 보였다. 바깥에 놓인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주문한 국수를 먹었다.

한입 먹었는데, 입이 찢어져라 귀에 걸리고 말았다. 아, 적당히 짭짤하고 맛있게 담백했다. 고소하고 부담이 없었다. 잘 선택했다는 뿌듯함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단순한 기쁨에 젖었다. 가게로 한두 명씩 들어와서 찹쌀밥과 볶음 국수를 포장해갔다. 찹쌀밥이 더 인기였다.

저절로 피실 피실 취사 중인 밥솥처럼 웃음이 났다. 그때 가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물 한잔을 들고 다가오셨다.

“하오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갸웃할 뿐.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씀하셨길래 나도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우며 자신 있게 “니하오!”라고 말했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갸웃하셨다.

어렴풋이 무언가 이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아주머니도 마주 웃어주셔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들어가셔서 찹쌀밥을 한 덩이 가져다가 내 그릇에 올려놔 주셨다. 가져다주신 물을 마셔보니 따뜻한 물이었다.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서 공항으로 가야 했다. 햇살 따사로운 타이베이를 떠나야 했다. 비탄의 주민들은 활기차게 등교를 하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음식 값을 치르는데 이번에는 이름을 물어보시는 것 같아서, 주민등록증을 보여드렸다. 거기에 한자로 내 이름이 쓰여 있으니까.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대만 말로 내 이름을 말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생소해서 기억하지 못하고 말았다.

빵집을 나서며 빠이빠이를 하고 아주머니께 한 말씀드렸다.

"니하오!"

아주머니가 문 밖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서울로 도착하고서 비로소 생각이 났다. 니하오는, 안녕하세요 라는 뜻이로구나. 나는 최고예요, 띵하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구나. 타이베이에서 보았던 같은 해가 씨익 웃었다. 가방 속의 비타민D가 촐랑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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