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겨울이었다. 집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먹으며 조촐한 연말 파티를 하기로 했다. 내가 완벽한 닭구이를 만들 것이다.
‘완벽한 닭구이‘란, 내가 자신 있는 특별 메뉴다. 오븐에 구운 엄청나게 맛있는 통닭을 말한다. 외국 요리책에서 ‘퍼펙트 치킨’ 이라고 소개된 레시피를 응용한 것이다.
먼저, 신선한 생닭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그런 후 닭의 안팎의 물기를 제거한다. 양념을 문질러서 몇 시간 재워 둬야하는데, 물기가 있으면 양념이 잘 배지 않는다.
이제 양념을 만든다. 소금 넉넉히, 파프리카 파우더, 후추, 잘 닦은 레몬의 껍질 갈은 것을 섞는다. 기호에 따라 마늘 다진 것, 시나몬 가루를 추가해도 좋다. 양념 잘 섞은 것을 생닭에 마사지하듯이 안팎으로 문질러준다.
그리고 닭 속에, 버터 작은술을 넣고, 레몬 반 자른 것, 사과 4분의 1조각, 로즈마리를 넣는다. 그런 후 닭다리를 교차해서 묶어주고 3시간 이상 냉장고에 넣어둔다.
3시간 정도 지났으면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닭의 표면을 노릇노릇할 정도로 굽는다.
그리고, 당근, 감자를 손가락 길이, 두께(보다 조금 더 두껍게)로 자른다. 닭을 구웠던 팬에 당근 감자를 코팅하듯이 볶아준다. 소금 간을 살짝 한다.
오븐을 200도 정도에 맞춘다. 오븐에 들어갈 팬에 당근 감자를 아래에 깔고 위에 프라이팬에 표면을 익힌 닭을 올린다. 호일로 닭과 당근 감자가 담긴 팬을 감싼다.
닭 크기에 따라 시간이 차이가 나는데, 호일을 감싸고 40분 정도 구운 후 호일을 벗겨서 40분 정도 굽는다. 닭 껍질이 북경오리처럼 살짝 갈색으로 부풀어 오르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면 끝.
이 레시피가 나오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요리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 조리법이었다. 만들고 있는 요리가 섬세하다면 조리 기구에 따라서, 그 주방의 습도나 온도에 따라서,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괜찮은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모두에게 완벽한 레시피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믿어야 효과가 좋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레시피가 딱 하나라면, 믿는 것이 좋다. 레시피를 볼 때 문제의식은 갖되, 믿고 따르는 것. 그것이 요리 성공의 비결 중 하나다. 온전히 믿었는데도, 그 레시피가 배신을 했다면, 적어도 그 레시피가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레시피를 믿지 못해 미심쩍은 마음에 이것저것 나의 생각을 보태어 만들었다면 무엇이 잘못인지 알 수도 없게 된다.
연말, 작은 방에 모인 친구들은 그 해에 많은 일을 겪었다. 실직을 한 친구도 있었고, 많이 좋아한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항암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사실을 하루 전에 알게 된 친구도 있었다.
나는 종종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 모를 때,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 요리를 해서 함께 먹는다. 야채를 더 잘게 다지고, 고기를 더 조심스레 뒤집고, 소인국 사람을 다루듯 소금을 집는다. 그날 우리에게는 먹음직하고 완벽한 닭구이가 있었다. 오븐에서 띵, 하고 알람이 울렸다. 나는 장갑을 끼고 닭을 오븐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엎드린 모양의 닭 한가운데를 칼로 찔렀다. 안에서 온갖 향이 퍼져나왔다. 뜨거운 레몬을 꺼내 즙을 내어 소스처럼 뿌렸다.
어제 동생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는 별로 말이 없었다. 껍데기만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각이 딴 데 있는 것 같았다.
“어! 위시본이다!”
그런데, 말없이 닭을 먹다가 내가 위시본을 발견했다.
위시본은 닭의 쇄골정도 되는 부위인데, 하나의 뼈에서 두 갈래로 뻗어 나온 모양이다. 이것의 양 끝을 두 사람이 잡아당겨 부러뜨렸을 때, 긴 쪽을 갖는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느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에서 보았다.
“이거 같이 잡아당겨 보자.”
말이 내내 없는 친구에게 위시본을 건넸다.
“이거 잡아당겨서 긴 걸 갖는 사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잡아당기기 전에 먼저 소원을 빌자고 했다. 나와 친구는 그 자리에서 눈까지 감고 기도하는 자세로 소원을 빌었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 친구와 나는, 우리가 어떤 소리 없는 소원을 비는지 알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뚝.
긴 것이 내게로 왔다. 순간 친구의 표정이 흠칫하더니 더 어두워졌다. 친구는 더 말이 없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왜 닭뼈는 긴 걸 잡고 있어서 안 그래도 마음이 힘든 친구를 심란하게 했나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삼켰다. 나는 그냥 친구에게 별 말 없이 닭다리를 하나 접시에 올려주었다.
친구 동생의 머리가 다시 자라 단발머리가 되었을 즈음에야 나는 친구에게 말 할 수 있었다. 항암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였다.
나는 뚝, 하고 위시본이 부러지는 순간, 친구 동생이 쾌유하기를 빌었던 것이다. 내 소원이 혹시나 이뤄질까봐 서둘러 친구의 동생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 나도 갑자기 절박한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때가 있다. 정답도 없고, 어느 방향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믿고 싶다. 막막하지만 간절히 바라면 어떤 소원은 이뤄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원을 소중한 것에 빌고 만다.
그나저나 이만하면 정말 완벽한 닭구이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그 친구의 동생은 건강하니, 맛도 좋은데 소원까지 이뤄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