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는 음식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삶은 계란.
계란 후라이도, 스크램블도, 수란도 먹는다. 삶은 계란만 못 먹는다. 아니, 이제 못 먹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해야겠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먹을 수 있으니까.
초등학교 1, 2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엄마는 계란을 삶았더랬다. 어쩌면 봄, 부활절 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자꾸 까먹었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그것을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손바닥만 한 접시에 삶은 계란이 여러 알 있었다. 모두 내 거였다. 엄마는 내게, 그것을 다 먹어야한다고 했다.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로구나, 깨달았던 것 같다. 싫은 것도 씹어 삼켜야하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그렇다, 나는 조숙한 아이였다.)어린아이라고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나는 미끈한 삶은 계란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비릿함, 노른자의 퍽퍽함이 싫었다. 가끔 보이는, 계란 흰자와 노른자 경계의 푸른색도 싫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했다. 나에게 실망할까봐 숨을 쉬지 않고 꿀꺽 꿀꺽 삼켰고, 한참을 토했다.
그 후로 삶은 계란을 보면 그날 역류하는 계란 비린내와,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종종 내가 누군가에게 불충분하다는 자괴감이 소환됐다.
모든 삶은 계란이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혼자 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고서적을 파는 책방들이 많았던 진보초 거리에 카페 에리카가 있었다. 여행을 가면 유독 집 같은 공간에 끌리곤 한다. 특히 도시를 여행할 때 그렇다. 무심한 듯 당연하게 반겨주는 공간을 그리워한다. 카페 에리카가 내게는 그런 공간이었고, 나는 매일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꾸벅꾸벅 구석에 기댔다,
직원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혼자였다. 잔이 하얗고, 커피가 까맣고, 테이블마다 노란 프리지어와 안개꽃이 놓여있었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실 때면 ‘끄응’하고 힘내는 소리를 하셨고,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면 낮고 간결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음악이라곤 손님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 얼음이 담긴 물 주전자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 커피잔이 받침에 부딪히는 소리, 담배필터가 타들어가는 소리, 바깥에서 스쿠터가 지나가는 소리가 다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에리카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계란과 버터 바른 토스트가 제공된다고 메뉴에 쓰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토스트에 버터를 찹찹찹 바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런데 나온 계란은 후라이도, 스크램블도 아닌, 껍질째 갸름한 삶은 계란이었다. 계란 하나가 작은 그릇에 담겨 오도카니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계란은 단단하게 완숙한 것이었다. 테이블 한편에 빨간 뚜껑의 맛소금이 놓여있었다.
삶이 그렇게 단단하고 팍팍하고 비릿하기만 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미 내게 주어진, 환불 할 수도 없는 삶이 아닌가. 나는 내 앞에 놓인 계란을 ‘삶’으로, 대입하고 있었다.
에리카의 계란은 따뜻하고, 하얗고, 노른자가 앞에 놓인 프리지아 색 같았다. 푸른 경계도, 비린내도 없었다. 고소하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단순한 맛이었다. 숨을 쉬면서 천천히 삶은 계란을 다 먹었다. 처음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삶은 계란을 싫어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삶은 계란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 싫어할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구운 훈제란도 있고, 노른자를 촉촉하게 반숙한 것도 있다. 연잎과 계피, 간장을 넣고 끓인 차 계란도 있다.
지난여름 친구가 집으로 초대해서 먹음직한 냉면을 만들어주었다. 냉면 위에는 삶은 계란을 반으로 자른 것이 두 개나 있었다. 친구는, 특별히 계란이 잘 삶아졌다면서 내게 많이 먹으라며 자기 것을 하나 더 내 그릇에 올려주었다. 삶은 계란을 먹을 수 있게 되어서 좋은 점은 이럴 때다. 냉면을 먹을 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주는 삶은 계란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