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넘어가면서 누군가 내게 '나이처럼 보이지 않아요.'라고, 어려 보인다는 말을 하면 우쭐하곤 했다.
대부분 그 말을 칭찬으로 했고, 나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왜 일까?
오늘은 온라인으로 비대면 독서모임을 했다.
나이에 따른 차별과 편견에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언니 한 명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나이처럼 보이지 않잖아."
왜 일까?
나는 42살, 만으로 40이다.
외모를 평가하는 말은 그 자체로 칭찬도 좋은 말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어려 보인다는 말은 왜 달콤할까?
나는 내 나이가 부끄러운가?
오늘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로션을 바르다가 눈밑에 새로 생긴 기미를 보았다.
턱 밑 살은 전 보다 탄력을 잃었고, 시옷 모양을 한 양입가의 주름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언젠가 손금을 볼 줄 안다며 내 손바닥을 열어 본 열몇 살 어린 친구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손바닥에 주름이 왜 이렇게 많아요?"
라며 놀라서 물었다.
두세 정거장 함께 걸어주었던 남자는
"나 33살이야. 그러니까 잘해."
라고 했다.
"네가 33살인데, 왜 너한테 잘해야 해?"
라고 대답했더니 그 남자는 크게 웃었다.
왜 일까?
어려 보이든, 아니든 내 나이는 그대로다. 내가 태어난 날짜는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고, 날씬해야 매력적이라는 고질적인 생각은 내 나이를 한 살이라도 가져가 주지 않는다.
매력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에 이토록 마음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
매력은 이 시대의 또 다른 자본이 되어 하나의 능력이 되고 만다.
대단한 경제력이나 스펙을 갖추지도 못한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사랑하고 사랑받기란 점점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나일뿐. 다른 사람일 수 없다.
나는 내 삶에서 연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살고 싶다.
마음 깊이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나는 나를 받아들여야한다.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나답지 않다는 말을 칭찬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물론 특정 나이 이상의 사람이 이럴 것이라는 편견에
어느 정도 맞서는 칭찬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덫이 많은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말이며,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지목하는 말이다.
나이에 대한 편견보다,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상대방의 말에 황급히 나 자신을 조그맣게 접고서 그럴듯한 웃음을 지어내고 싶지 않다.
독서모임 중 그 언니가 다른 분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는 서로 나이를 아는데, 그쪽 나이를 모르네요?"
나이는 인간관계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