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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인 말과 비효율적인 산책

by 이유

나는 그렇게 속도가 빠른 사람이 아니다.

짧은 점심시간 식사를 꿀꺽꿀꺽 삼키지도 못하고, 무엇을 결정할 때 몇 번이고 망설인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정이 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한 번 정이 들면 마음을 쉽게 거둬들이지 않는다. 나의 이런 성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굳이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내가 사는 세상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 보니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세상의 속도가 빠르다는 감각은 역으로 내가 느린 것을 체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어쩌면 나를 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혐오의 말들, 재빨리 상대방과 저너머를 단정 짓는 말들에서 그런 조급함을 느낀다.

사실 카카오톡 같은 문자를 매게로 한 대화방식에서도 같은 맥락의 조급함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필요한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 문자뿐 아니라 사진, 영상, 혹은 링크를 동원할 수 있으며 점점 신속하고 간편하게 전달이 가능하다.

추가할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점점 많아지며, 더불어 그 친구들을 그룹별로 구분하는 기술 또한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는 방법 또한 돈만 있다면 간편하고 다양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볼 일이다. 나의 말을 전하고 언제 어디에서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술이 늘어나는 반면, 잘 듣는, 상대방을 판단 아닌 존중으로 대하며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가?

그런 소통의 태도와 인간관계의 정성이 과연 기술의 몫일까? 사람의 마음을 얻고 감동시키는 데에 '효율'이 활약을 했던 경우가 있을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기꺼이 상대방에게 내어주는 기품 있는 바보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가 말이다.


언젠가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평일 저녁이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니 그가 실망스러운 얼굴로 조금 후 나타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속 장소로 가는 길목에 일찍 나타나 나를 깜짝 놀래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이다. 그리고는 "왜 다른 길로 온 거야?"라고 물었는데, 나는 잠시 '다른 길'에 대해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제시한 길로 가지 않았을 뿐인데 내가 걸어온 길은 '다른 길'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걷는다.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앰뷸런스를 운전하지 않는 한, 나는 걷고 싶은 길을 선택할 것이다. 출근길에는 최단거리의 길을, 퇴근길에는 분홍색 솜사탕 같은 구름이 잘 보이는 길로 걸어갈 것이다. 종종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을 걷고, 많은 모퉁이를 돌아 작은 골목길을 걸을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는 않았다. 잠시 키보드 위의 손을 멈추고 그 사람과 함께 걸은 길을 떠올려 보았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와 나는 주로 각자의 방법으로 어딘가에 도착해서 만났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를 잘 모른다. 반면 그는 헤어지기 전, 나를 잘 안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로맨틱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어떤 폭력으로 쉽게 변주 혹은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대화와 소통의 기술이 나날이 빠르게 발전하는 요즘, 나는 공허함과 폭력을 보다 쉬이 느낀다.

비대면의 시대라 소통은 더욱 중요하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말하는 자 위주로, 소비하는 자의 효율에 최적화된 소통방식으로 이 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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