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테이크 쉘터]

by 이유

지난가을이었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불안했다.

뉴스에서 건물이 흔들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태풍이라고 했다. 하여튼 대단하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잡히지 않아 더 두려웠다. 엄마 아빠 사시는 낡디 낡은 본가도 떠올랐고, 블루베리 나무들도 걱정됐다. 집에 전화를 걸어 비닐하우스 기둥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비닐하우스 밖에 블루베리랑 포도나무들 어떻게 하냐고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빠는 괜찮어 괜찮어. 태풍 대비는 했으니 기도나 해.라고 하셨다. 엄마가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설거지를 하며 기도해라 기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도는 늘 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나를 지켜주시기를.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시기를.


언젠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내 편 들어주고 같이 욕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둘이서는 부단히 싸우겠지만 세상이 나를 공격할 때만이라도 내 편 되어줄 사람."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찔끔 났는데, 오래오래 생각난다. 태풍 같은 것이 오니까 또 생각났다.


요즘 세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세상이 사람을 얼마나 공격하는지. 혼란에 빠뜨리는지. 바로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랑보다 두려움이,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차단이 손쉬운 세상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이 해주신 말씀에서 '둘이서는 부단히 싸우겠지만 세상이 나를 공격할 때 만이라도 내 편 되어줄 사람'대목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세상의 편에 서서 상대방을 싸늘한 얼굴로 바라보곤 하는지! 둘이서 싸우기 싫다는 평화의 이유로 말이다. 상대방은 사람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비효율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골칫덩어리, 정리되어야 할 무엇.

우리는 더 잘 싸워야 한다. '무엇'이 아니라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잘 싸우는 법을 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접촉해야 한다. 피부와 피부를 맞대고 서로에게 체온이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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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크 쉘터가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따뜻한 포옹이 있는 영화다. 살과 살의 마찰이 아니라 보듬고 끌어안는 접촉이다.


불안한 세상이 예언처럼 한 남자에게 다가온다. 오로지 그만이 들이닥칠 거대한 재앙을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감각한다. 이렇게 실제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니, 당황하다가 외로워진다.

사실 남자는 처음에 자신이 미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있다. 병원에 가고 상담을 받고 열심히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과 아내가 곧 닥칠 재앙에 위험하단 생각에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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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공호를 만들기 시작한다. 맑은 날씨에 방공호를 짓는 남자, 커티스는 흡사 구약 성경에 나오는 방주를 짓는 노아 같다. 커티스는 그의 행동으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되고, 친한 친구와도 등을 지고 외톨이가 된다. 딸의 수술비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그래서 아내는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나는 그 아내, 사만다의 눈빛과 손길을 눈여겨본다. 사만다가 커티스를 바라보는 눈빛, 따뜻하게 기대고 안아주는 제스처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부부는 실컷 화도 내고 미워도 하지만 결국 대화한다. 온몸을 기대서 포옹하고 팔을 뻗어 서로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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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는 세상이 무너져도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 어쩌면 그에게 가족과 떨어지는 것이 더 재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불안만큼 무너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정신이상 판정을 받아 입원 진단을 받는다. 가족과 떨어져 입원하기 전 커티스, 사만다, 해나(딸)는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그때, 그가 그렇게 꿈에서 보고 환상으로 감각한 대폭풍이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나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랑하고 접촉하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어쩌면 세상이 우리를 함께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내게 덤빌 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의 곁에 있어준다. 세상 속에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의 우리는 더 잘 접촉하고 싸우는 법을 알아야겠다. 그것이 불안이라는 거대한 폭풍 앞에서 그저 날아가는 비닐봉지가 되지 않도록 살과 피를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랑이 우리를 단단하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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