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자서전 1

충주로 출애굽

by 장블레스

1974년 어느날, 우리 가정은 경북 문경 산골짜기에서 충북 충주로 이사를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머니가 매우 아프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 역시 몸이 안 좋으셨기에, 아버지 혼자 농사를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친척이 있는도시로 나오기로 결정하시고 실행에 옮기셨다.


이 일이 우리 가정에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 일은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 사건과 견줄만한 사건이었다. 고육지책으로 택한 길이 놀라운 생명길이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너무 완고하셨고,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외갓집에서 대체로 자유분방하게 자란 어머니로서는 쉽게 적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9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고, 외갓집에서 유일한 딸이었다. 외할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지만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시집을 온 뒤부터는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떡을 하라고 해서 떡을 찌고 계셨는데 어머니가 잠깐 조는 사이 떡이 설 익게 된 것이다. 그것을 시어버지께 드리자 할아버지는 조금 맛보고는 찜통 째, 마당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이와 같이 시아버지로부터 많은 모욕과 수모를 당한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충격에 빠졌고, 이내 우울증으로 이어진 것 같다. 얼마 안가 몸져 누워버렸으니 말이다. 어느 병원을 찾아가도 원인을 찾지 못했고, 어떤 병원에서는 진료를 한 뒤, 한 간호사가 맛있는 거 많이 드시라는 말만 하고 내 보냈단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서럽게 울면서 그 병원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충주로 이사 온 뒤 옆집에 사는 한 아줌마가 우리 어머니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그곳은 바로 시골 작은 교회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교회가 사람들로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교회마다 부흥회가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다. 그 소문은 우리 가족에게도 들려왔고, 고모는 어머니를 교회에 가보도록 권유했다. 마침 옆 집 아주머니가 자신이 다니는 작은 교회로 어머니를 이끌어 주셨고,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와 함께 교회에 나가시면서 마음과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셨다. 실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무슨 약을 써봐도 어떤 병원을 가도 못고치던 질병이 교회에 다니면서 치유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점점 좋아지면서 더욱 열심히 교회에 다니셨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2~3살 밖에 되지 않았기에 어머니 등에 엎혀 함께 자연스럽게 교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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