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헤아려 주신 어머니
어머니는 5남매 자녀들 마음을 잘 헤아려 주셨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독자로 태어났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 살림을 10대에 이끌어 가셨기에 자녀들에게 자상하시진 못하셨다. 가끔 쉬실 때 장난도 쳐주시기도 했지만, 술을 드시고 오시거나 우리가 잘못했을 때는 아주 엄하게 훈육하셨다. 하루는 큰 누나가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아주 늦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누나가 들어오자 마자 아버지는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닌다고 회초리를 드셨다. 큰 누나는 눈물을 뚝뚝흘리며 용서를 구했고, 아버지가 주무실 때까지 머리 맡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렇게 혼나는 형들과 누나들을 본 나는 어려서 아버지께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그냥 기에 눌려서 말하기도 두려워했다.
반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간과하는 자녀들 일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 5남매는 어머니께 필요한 것을 구할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왜 나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엄마한테만 이야기 하느냐'고 불평을 하셨지만,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큰 형이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용기를 내서 아버지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드렸었다. 백화점에 근무하던 누님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예쁘게 생겼고 그리 흠이 없어 보였지만, 아버지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몇 번 형님은 그 여자친구에게 받은 선물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어린 나로서는 참 신기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얼굴이 복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만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에 상처받은 형님은 하루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불을 덮어쓰고 반나절을 끙끙앓고 있었다. 보다 못한어머니가 아버지가 출근한 사이에 살살 달래서 한 번 만나고 오라 하셨다. 그 말에 마음이 풀린 형은 바로 서울에 가서 그녀를 만나고 왔다. 아마도 마지막 작별을 고한 것 같다. 참 안타까운 인연이었지만, 그 뒤에 지금형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렇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천사같은 분을 만나게 하셨으니 말이다. 형수님은 늘 우리에게 푸근하게 대하셨다. 그래서 대학강의가 끝나고 방학 때면 의례 서울로 올라가 며칠 씩 신세를 지고 왔다. 촌놈들이 아파트에서도 자보고 고급스런음식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시험끝나고 고향집에 내려가기 보다는 큰형네를 먼저 들렀다.
어머니는 엄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우리 사정을 잘 헤아려 주셨고 사랑으로 대해 주셨다. 이것이 우리를 견디게 해 준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