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상처를 고백해 보라
요즘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다 결국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이 깊어진다. 얼마 전 학창시절 즐겁게 지내던 외삼촌을 잃었다. 그 외삼촌은 외갓집 늦둥이로 태어나 나와 4살 차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른 나이에 조울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음의 병으로 인한 죽음을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영정사진 속에서 외삼촌이 당장 걸어나올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뒤에 따라온 ‘성장통’도 만만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치는, 우리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부모 세대를 돌아보면,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시대는 한 개인에게 감당하기 벅찰 만큼의 무게를 지웠다. 일제강점기와 6·25, 그리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외화벌이까지.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내 아버지도 그 시대를 살아내신 분이다. 열다섯에 할아버지를 잃고, 병약한 어머니와 누나를 책임져야 했다. 응석 부려야 할 나이에 논밭을 일구며 어른이 되어야 했다. 이후 결혼해 다섯 남매를 키우며 살아내셨으니,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못하셨다. 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요구하셨고, 작은 투정조차 받아내기 어려워하셨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나는 수학책을 잃어버렸다. 엄격한 수학 선생님이 무서워 책을 구해달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집 안 샘터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본 아버지는 결국 화를 내셨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육중한 손이 내 빰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번개가 번쩍하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때 조금만 다독여 주셨다면, 내 울음은 금세 그쳤을지도 모른다고...
아버지 세대는 그렇게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삶.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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