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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Nov 22. 2024

아들고발서

- 어머님은 휘파람이 싫다고 하셨어 -


남자 아이 그리고 한 남자 성인과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감사했던 일이라면 함께 사는 남자 셋 모두 나와 완벽히 반대의 성정을 가졌다는 것.


목 끝까지 우울이 잘방거리는 엄마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어둡고 축축한 내 안의 것들이 아이에게 미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직장을 다닐 때에도 아이와 노는 일만은 남편이 담당했다. 마음을 잃은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피폐하고 괴괴한 기운이 전해지지 못하도록. 내가 부탁하기 전에 그도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주었다.


내가 했던 일이라면 혼자 해낼 수 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요리, 빨래, 청소 정도. 그리고 말없이 꼭 안아주는 일은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그것은 기운이나 시간이 들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충분히 해낼 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온도가 높은 일, 황홀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십 년이 넘어가, 올해 아이 둘은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함께 살아오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같은 양과 다른 질감으로 아이들 또한 내가 이해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로서  더욱더 작고 초라해지므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해불가능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혼자 주문을 외우듯 다독였다.

'아이들이 나와 달라서 다행인 거야.'


주문을 부리는 데도 영 소질이 없는, 어젯밤엔 자면서도 휘파람을 부는 그를 보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휘파람.

그게 시작이니까. 내가 아이들과 유별나게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별것 아닌 시작점.



캄캄한 원룸촌, 언제나 가로등이 말썽이었다. 덕분에 가지를 알 수 없는 골목 어디선가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특히 내가 살던 반지하 조구마한 창문을 넘어 점점 가까워지던 휘파람 소리는 언제고 소름이 끼쳤다. 휘파람은 잘못이 없다. 그저 우연한 나의 불호일 뿐.


아이가 어렸던 시절, 아빠에게서 휘파람을 배웠다. 배웠다기보다 아빠에게서 흘러나온 소리가 신기했던지 단번에 따라 하고는 그때부터 잠든 시간을 빼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내가 고요나 적막을 호한다는 걸 그때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꼭 맞는 귀마개로 두 귀를 야무지게 도, 바짝 달궈진 기름에 무언가를 요란하게 튀겨보아도, 소란스레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 앉아있어도 기어코 비집고 들어오는 휘파람 소리를 견디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멈추지 못하는 그의 행동으로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실수할까 봐 염려되어 수없이 말렸다.


어느 날엔 지쳐서 울며 말을 기억도 다. 그럼에도 그는 대답이 끝나자마자 휘파람을 불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싫으면 하지 않을게요. 휘~~"




휘파람 같은 아이였다. 언제나 휘파람처럼 신명 나게 즐거운 사람. 그것이 아빠와 꼭 닮았고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학교나 학원 상담 시에 아이의 태도를 물어보면 기묘하게 좋은 답변만 돌아오니, 그만하기로 했다. 


다스릴 수 없는 아이의 휘파람이 감당할 수 없는 나의 눈물과 같은 거라고.


그렇게 수년을 불더니, 소리는 세지면서도 잠들지 않은 것처럼 므흣게 휘파람을 불게 된 것이다.

 

학교 동아리 발표회가 있는 날. 그는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고 있다. 몇 달 동안 드럼에 심취한 탓에 손가락 모두 물집이 잡히고 터져서도 드럼 소리 아래에 휘파람 소리를 베이스처럼 깔아서는 원 없이 휘파람을 불었을 . 자는 동안에도 눈을 감고 신이 난 얼굴로 공연할 곡을 휘파람으로 연주하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2:46 AM. 이웃에 들릴까,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흥이 난 그의 입술을 고이 오므렸다.


그는 언제나처럼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 날, 공연이 끝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경을 손에 들고 집에 돌아왔다. 철제 콧받침이 고무와 함께 통째로 사라진 안경. 축구를 하다 부서졌다며 가져온 기이한 안경은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부러지고 이제 네 번째 안경을 맞추러 가는 길. 오늘의 축구경기가 어땠는지부터 친구가 열심히 하다 자기 위로 엎어질 수밖에 없었던 곡절한 사연까지. 그의 입은 쉬지 못했고, 그의 두 손은 드럼 치는 시늉으로 하릴없이 바빴으며, 군데군데 휘파람 소리까지 섞느라 자신에게 심취한 듯 보였다.


"다시 안경이 부서지면 네가 사기로 했지? 골라보자."

"네. 그럼 사장님, 여기서 제일 싼 걸로 주세요."

쭈뼛쭈뼛 본인의 지갑을 열어 돈을 확인하더니, 크게 실망한 듯 작은 두 눈이 한없이 처졌다. 아주 잠시.


돌아오는 길에 새 안경 덕분에 더 잘 생겨졌다며 기분이 한껏 좋아진 그는 발로 리듬까지 맞춰가며 손으로 가상의 드럼연주를 시작했다. 본인의 상상연주에 도취된 그는  입으로 칙칙거리며 달려가듯 앞섰고, 멋진 드러머가 되겠다며 기르고 있는 머리카락은 다듬지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느 추노에 가까웠다. 바라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니 듣지 않는 주문이라도 외울 수밖에.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야. 나와 달라서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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