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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n 12. 2024

공부를 못한대도 갈 수 있는 자사고 《입학설명회》

- "엄마, 가서 좀 다 알아와 주세요!" -


처음 당신의 손에 이끌려가 뮤지컬을 보았 날을 기억한다. 내 두 토끼눈의 세로길이는 가로길이를 넘어섰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으며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오늘 아이 때문에 겨우 끌려간 그곳에서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작고 작은 미지의 세상을 경험했다.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엄마, 저 외고나 국제고, 자사고 같은 곳에 갈 거니까 아는 거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야말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눈살을 조금 찌푸렸던 것도 같은데, 어안이 벙벙하고 적이 당황해서이지 불편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실린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것들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는 과연 무엇을 꿈꾸고 있나.



우울한 히키코모리인 나는 주변에 정보를 나눌만한 이웃이 없고, 소심함마저 제대로 겸비한 탓에 교사인 동생에게조차 물어볼 용기가 없다. 터무니없는 일에 시간을 는 것 같아 미안하고 무엇을 물어야 지조차 모르겠고.

 

중학교 1학년이 된 첫 번째 아이는 4학년 때부터 스스로 공부를 해보겠다며 소위 말하는 '혼공'을 시작했다. 선행을 척척 알아서 해나가는 공부마니아도 아니었고, 먹는 일과 노는 일을 가장 사랑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평범한 아이. 


지금껏 내게 특별히 무엇을 요청해 온 적이  숭굴숭굴한 아이였기에 절절한 눈빛으로 건네어온 그의 간곡한 부탁에 정성스레 대답해주고 싶었다.

그럼 직접 알아 밖에.



우연이었을까. 당장 주말에 집 근처 자사고에서 입학설명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필 그것은 내가 화실에 가는 날과 겹치니, 그릴 준비물을 잔뜩 챙겨 거북이처럼 등에 지고서는 감히 자사고의 입학설명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엄마, 가서 좀 다 알아와 주세요!"

아이는 내 등에 호기롭게 소리쳤고, 내 등에 얹힌 봇짐은 그날따라 유난히 투박스럽게 무거웠다.



두 시간씩 4회, 회당 1200명으로 제한된 입학설명회. 나는 번째로 예정된 오전시간의 설명회를 신청했고, 20분 전에 여유 있게 도착했으나 앉을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가족단위의 참석자가 많았고 혼자 온 사람은 많지 않더라.


두 시간 중의 반은 학교나 입학요강선생님의 설명으로, 나머지 반은 재학생들의 공연, 질의응답과 재학생들이 인솔하는 학교투어로 진행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설명회에 봇짐을 지고 갔던 나는 호텔과 유사한 학교전경에 놀랐고, 뮤지컬 공연장보다 큰 강당규모와 근사한 시설다시금 놀랐다.


'1인 1악기'칙이라며 들려준 재학생들의 협연 중엔 눈물이 흘렀다. 올해 눈물병이 제대로 걸려버린 탓이겠지. 다행히 입학요강에 대한 선생님의 섬세한 설명이 이어졌고 눈물은 금시에 말랐다.


참석자들을 30명 정도로 나누어선 학교홍보 동아리에 속해있는 학생들이 조별로 인솔하여 학교를 낱낱이 소개주었고, 하필 모두 나의 취향 그대로였다. 게다 신이 나서 설명하는 학생들의 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탓에 내 마음마저 곱게 살랑이는 채로 돌아왔다.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두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낼 것으로 생각하고 부러 혼자 왔는데, 아니었다. 아이가 직접 느껴야 했다.


요란하게 싱그러운 공간들부터 고요함을 그득히 담은 조그마한 구석들마저 나의 취향이었기에,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 담아 온 마음을 침착하게 정리하여 문장으로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되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며, 나의 아이가 가뿐히 가질 수 있는 선택지도 아니기에.


모든 학년의 주요 과목 성적이 극도로 우수해야 하고, 동아리나 학생회 등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도드라진 활동들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생활기록부에 남길만한 독서기록들을 지금부터 촘촘히 채우고, 인성이나 행동사항도 탁월하게 보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들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분명 아이가 가장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을 부분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 그것을 정리해 보면 겨우  네다섯 문장밖에 되지 않지만, 어느 문장 하나 해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 알려주어야 하는데.




아이에게 사진으로 담아 온 학교모습을 구석구석이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이미 그의 마음은 그곳에 먼저  있으며, 그는 그곳의 교복을 신명지게 차려입고 있다.


한껏 부풀어버린 마음 때문일까, 그는 저녁을 야무지게 많이 먹었고, 일찍 깊이도 잠들었다. 그런 그를 보다, 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잠을 설쳤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알아온 것을 너에게 현실감 있게, 하나 희망을 잃지 않게 잘 전달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앞으로 널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오늘따라 '알려주다'나 '돕다'의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


항상 물건을 팽개치듯 던져놓던 네가 책상 위에 고이 둔 학교홍보책자와 볼펜이 마음에 쓰인다.



다음엔 함께 가자.

마음을 떼어놓고 세밀하게 알려주는 일엔 내가 영 소질이 없으니, 부디 그땐 네가 내게 찬찬히 알려주렴. 

나도 다시 놀러 가보 싶어. 봇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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