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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06. 2024

아이의 비만을 대하는 나의 자세

- 밥. 학. -


결혼한 지 15년이 지나면서 혼수로 장만했던 소소한 살림살이들이 낡아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맞벌이였던 기간 푹 쉬고 있었던 전기밥솥은 그나마 잘 버텨왔지만, 광폭해져 가는 남자 셋의 식욕은 버거웠던지 요란스레 앓는 소리를 내다 생을 마감했다.


방학을 앞두고 급한 마음에 가까운 곳으로 가 밥솥들을 살피며 설명을 들어보니, 모두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여기 밥을 하면 밥맛이 좋아서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 그러면 안 되는데..."


밥맛이 더 좋아진다는 설명에 속히 집으로 돌아왔다. 비만아의 가족에겐 튼튼하고 효율이 높은 밥솥이 필요할 뿐, 근사한 기능이나 밥맛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밥맛이 지금보다 더 좋아진다면 식사담당자로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온라인으로 저렴하고 효율이 높은 것으로 고르다 조차도 '밥맛이 좋다'는 후기를 보면 망설여져 결제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엄마, 이거 너무 맛있어요!"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본 방학의 어느 날, 그들이 말했고 그 많던 식탁 위의 음식을 조금도 남기지 못했다. '반만 올려둘걸.'하고 후회하고는 '당분간 이 요리는 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했다.


"엄마, 밥 더 주세요! 밥이 그릇에서 사라졌어요!"

별거 아 요리를 내어놓은 날, 그들이 말했고 어김없이 수북하나란했던 식탁 위의 음식들조금도 남기지 못했다. 다시 유사 후회를 하고는 비슷한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 밥을 지금 하셔야  것 같은데요, 배가 고파서 어지러워요."

방학 동안 두 아이는 번갈아 가며 나와선 밥솥을 열어 확인하거나 러지는 시늉을 하며 식사담당자를 종일 괴롭혔다.



먹는 일관심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난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한 근사한 요리를 해본 적이 없고, 으레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나 우걱우걱 씹지도 않고 내가 만든 음식을 흡입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간혹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했다.


돌아보면 그저 불가피한 연습의 결과이자, 선택의 여지없이 나의 요리에 길들여진 탓. 고작 하루 세끼에 온 하루의 시간을 소비하는 나는, 여전히 요즘의 말로 우당탕탕 '요린이'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극심한 아토피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렸을 때부터 외부음식 섭취가 어려웠고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근사한 플레이팅은 생각지도 못했고, 알레르기가 두려워 최소한의 재료만 넣고 만든 그저 안전한 요리. 응당 맛이 없었을 테지만, 그땐 아이도 알레르기나 구토가 두려워 무엇이든 잘 삼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먹지 않는 요리를 해댔다. 먹고 나면 구토로 이어지는 음식들을 울며 불며 매일 매 끼니 실험하듯, 기도하듯, 맛이 없는 희망을 요리했다. 먹는 일이나 먹이는 일이 참 버겁고 슬펐다.


세월흐르는 동안 아이는 별 먹는 것도 없이 시간이 길러내어 주었고 이겨낼 수 있는 재료나 섭취가능한 부재료들이 많아지면서 맛에 눈을 뜨고 순식간에 격한 대식가가 되어버렸다. 


키와 몸무게, 특히 후자의 경우 말도 못 하게 거대해졌다. 부지불식간'튼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성인 체구의 아이로 겅중 자랐다.



이번 방학엔 첫날부터 아이들 모두 배가 고파 일어설 수 없다며 앓는 소리를 내더니, 가볍게 때우던 아침마저 풍성한 상차림을 요청했다. 예전과는 반대로 아이의 맛을 잠재우기 위한 건강한 식단에 골몰하며 온종일 식사를 준비하고 치웠다.


소마소마했던 아이들의 방학, 매끼 밥과 전쟁을 치른 덕분으로 나는 오랜 시간 마음을 우울 사이에 두지 않을 수 있었다. 감사함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의 거대해지는 몸과 격렬해지는 식욕을 나의 하찮은 요리로 달래주는 일에 마음을 다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내게 아우성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별 것 아닌 소박한 끼니마다 치르는 의 대란이 이제 끄트머리에 다다른 것만 같아서. 마음껏 야채들을 숭덩거리그들의 식욕을 숭덩숭덩 다듬었다.



매끼 버려질 식사를 준비하던 때엔 예정된 실패 에서 의무적으로 요리하던 시간과 정성들이 더없이 무의미해 보였다. 매일 네다섯 시간마다 돌아오는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실패들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그래 보였다.


하나 아이들이 지금과 같이 격하게 먹고 성장하는 일은 무의미해 보였던 그때의 시간과 경험들이 겹겹이 포개져 단단하게 토대가 되어준 덕분이라 믿는다.


정성이나 사랑과 같은 따스한 것들이 빚어낸 것은 결코 무의미하게 버려지거나 사라지않는다. 언제고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이번에는 먼 길을 둘러선 토실토실한 형태로 당당하게 돌아온 것.


 먹어주길 바라며 요리를 하다 잘 먹어주길 바라며 요리하던 시절이 떠올라, 눈물겹게 감사함을 보냈다.





'방학'이라는 글자가 '밥학'이라고 아른거릴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보니, 아이들은 방학이 끝나감에 유난스레 아쉬워했다. 밥. 밥 때문에.


그리고 그 밥 덕분으로 내겐 아쉬움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서툴고 나와의 시간 사이사이에 밥내음이 찰지게 배어 들었기를, 갓 한 밥의 따뜻한 김이 농밀히 서렸기를, 부디 형용할 수 없는 감미로운 것들이 그대들 마음에 맛깔스레 스미었길. 잠잠히 바랐다.


덧붙여 방학을 무사히 마친 지금, 그들이 덜 맛있고 더 신나는 하루를 보내길. 토실토실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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