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Mar 22. 2024

분홍색과 토끼를 사랑하는 남자

- 취향도 유전이 되나요?-


그래. 나도 그랬다. 네 곁의 인형들처럼 그득하진 않았지만 인형과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었기보다 재재거렸다. 혼잣말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그즈음 텔레비전에 나왔던 인형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 '처키'를 본 날, 온전히 밤을 새웠다. 고이 앉혀둔 나의 유일한 인형을 으밀아밀 살피며, 서늘함과 후텁지근함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렇게 그것은 내게 다시  수 없는 가장 무서운 영화로 남았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아무도 없을 때면 속삭이듯 내 마음을 꺼내 들려주었다. 인형을 조금 기울였다 다시 일으켜 눈을 깜빡이게 만들었다가, 목을 더듬어 끄덕이게도 도와주었다. 마치  얘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내가 인형을 도와주었고. 나를 도와주었다.


고적한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습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라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말에 감응하는 듯했고, 감히 내가 소리를 내는 시간, 비밀스럽지 않은 비밀을 나누는 그 시간이 좋았다.

내겐 더할 수 없는 평온함의 시간이었다. 


살다 보니 자신만의 이상한 구석이 있더라.

나는 이상스러운 구석이 많았고, 그중 하나일 뿐이었.




둘째 아이는 인형을 좋아한다. 

태어나 한결같이 좋아했고, 지금도 유일한 장난감들.


대체로 귀여운 인형은 여자 아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디자인된 편이다. 동물의 종류라던지, 옷이나 장신구라던지, 색깔마저도.


그렇기에 초등학교 졸업을 목전에 둔 둘째 아이의 방은 보통의 남자아이들의 방과는 조금 다르다. 그와 모든 순간을 함께 해온 나의 예상과는 일치하고.


그의 놀이공간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린이날이나 생일날이면 생떼를 부리며 어 낸 토끼들과 그 친구들로 그득그득하다. 공부를 할 때면 보드라운 털을 가진 인형을 책 앞이나 배 위에 앉혀두어야 한다나. 자는 곳엔 신한 솜으로 통통해진 인형들로 포근하게 둘러잠에 들 수 있단.




"남자아이는 런 거 가지고 노는 거 아냐!"

"몇 살까지 런 거 가지고 놀 거야?"

년이 넘도록 수도 없이 들었다. 마음이 편치 않지만 탓할 수 없었다.


과연 나는 보통스럽지 않은 아이의 면모를 볼 때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을까. 그저 '나의 아이는 그렇구나.' 하고는 쉬이 이해할 수 있었던가.


걱정했다. 불안을 찰랑찰랑하게 품고 있는 나는 심히 걱정했었다. 어린 시절 오래도록 인형과 소복하게 마음을 나누었던 나조차도.



태어나서부터 몇 년간 아이가 이름 모를 구토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가위소리울며 속을 게워내기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했다. 그렇게 다소 긴 머리카락에, 아프고 힘이 없어 가느다랗게 작아진 목소리, 오목조목 작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태어나 조용히 인형만 가지고 놀던 그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여자 아이인 줄로 착각했다.




유치원에 가서는 "넌 여자야, 남자야?"라고 물어오는 친구들이 많았고, 와그르르한 남자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도 내게 자주 물었다.

"사람들은 나한테만 계속 물어. 나 남자 맞지?"


분홍색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토끼를 유독 사랑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는 것들이 변할 테니 지금 너의 시간이 분홍색의 토끼로 채워지는 것뿐이라고. 스쳐 보내려고 노력했다.


보내려고, 넘기려고 노력했던 것이지 쉬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말로 내지 못했던, 아니 말로 내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고 그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매일 약속했으니까.




"오늘은 말이 잘 안 나와도 세 번은 꼭 말하고 올게!"

새 학년의 새 반으로 등교하는 첫날, 아이는 내게 다짐하듯 이야기하고는 반달눈으로 집을 나섰다.


매년 가을 상담 즈음이면 선생님들이 걱정하셨다. 아이가 항상 말없이 다음 시간을 준비하며 혼자 있다고. 하나 본인은 전혀 외로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는 않아 보인다고.


알 것 같다. 난.


도 외로웠겠지. 외로움을 자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눈빛도, 나의 불안한 마음도, 모두 알았을 테지. 그래서 꼭 한 문장으로 만들어 안심시켜 주고 간 게다. 아이가 떠난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학기 초에 제출해야 할 서류들, 기재해야 할 항목들의 마지막 즈음 언제나 '가장 친한 친구 ()학년 () ()' 당차게 자리 잡고 있다. 아이는 한 번도 그곳을 채워본 적이 없다. 비워진 칸을 보며 그가 속삭였다.

"이제 5학년이니까 친구가 생길 거야!"


혼잣말. 아니 혼잣말이 아닌 것처럼.


그래. 널 알아보아 주는 근사한 친구가 분명 있을 테지. 분홍과 토끼와 보드라운 털과 폭신한 솜을 좋아하는 널 그대로 보아주는 친구 말이야. 사랑스러움을 두른 네 곁에 투명망토를 두른 채 응원하고 있을 테니, 한 번 말을 내어 볼래? 아니, 네 말처럼 세 번 용기내어 볼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