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를 꼬박이 연애하고선 상견례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당신과의 결혼으로 나는 속절없이 종갓집 며느리가 될 거라는 사실을. 갓을 쓰고 줄지어 절을 하던 장면을 떠올리고선 부모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기어이 결혼을 했다.
매달 돌아오는 것만 같던 제사는 15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연 세 차례로 횟수가 줄었고, 종갓집 며느리는 되고 싶지 않다던 나는 다행히 전을 부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일 년 내내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내게 전 부치는 일은 그저 따뜻해지는 일.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아궁이 앞에서 찜질을 하는 기분이랄까. 종일 손이 따뜻하게 고소해지는 일이었다.
김장 대야에 가득한 반죽을 한 수저씩 덜어 전을 부치는 일이나 고동색으로 철갑을 두른 밤을 반들반들하게 까는 일, 전쟁터에 던져진 것 마냥 맹렬하게 달려드는 뒷설거지와 같은 일들은 기묘하게도 내겐 유쾌한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프로젝트를 단정하게 마무리 짓는 기분. 제사의 의미를 반추하기보다 모처럼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시부모님과 함께 먹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온온해졌다.
명절을 보내면 어김없이 일주일 내내 비빔밥을 먹는다. 제사 음식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며느리는 언제나 지고 말았으므로. 삼색의 나물은 시간에 대항할 힘이 별로 없어 보였고, 이상한 냄새로 상해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속히 먹어주길 재촉했다.
명절로 며칠의 휴일을 보내고 나면 한동안 남편의 이른 퇴근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아이들은 매끼 같은 반찬을 먹지 않았다. 그러니 명절 후 집으로 가져오는 음식은 고스란히 나만 홀로 먹어내야 하는 것, 그것이 싫었다. 그것이 어려웠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버리는 일에 능하지 않은 내게는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무슨 음식이든 김장 대야에 하는 시어머니를 보고선, 다음 명절엔 나와 함께 장을 보러 가기를 간청했다. 야채 가게에서 시어머니가 세 소쿠리를 달라고 하시면 나는 한 소쿠리만 담았고, 정육점에서 시어머니가 몇 킬로그램을 달라고 하시면 난 그 절반으로 수정하여 요청했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는 분식집에서 자상스레 떡볶이를 사주셨고, 내게 간곡히 부탁하셨다.
"고생했어. 다음부턴 절대 따라오지 말아라."
그렇게 15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제사의 횟수는 줄었지만, 음식의 양은 줄어들지 못했다. 여위고 약해지는 시어머니를 보면 안타깝고, 당신의 정성을 그득 담아 버무려낸 음식이 애처로워 꿀꺽꿀꺽하고 싶지만, 속이 좁은 며느리 혼자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말려도 검은 봉지로 마술을 부리듯 봉인하여 몰래 실어주시는 찬들,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번번이 거절하는 일도 쉽지 않다.
'잔반 없는 제사'
나는 속이 별나게 좁고, 간이 유난하게 비대한 종갓집 며느리다. 불량스러운 종갓집 며느리는 추석 음식을 준비하며 설날을 센다. 다음에도 감히 '잔반 없는 제사'라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그저 사랑스러운 당신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할 것이다.
당신과 가장 큰 추억이 어쩌면 잔반 많은 명절인 것만 같아 기쁘게만 보내고 싶다. 그렇게라도 당신과 정성스레 사랑만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