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린다'는 게 무엇이지요?

- 보는 이들이 질려버릴 뿐 -

by 린ㅡ

"독하다"

많이 들었다.

직장에서도,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서도.

어감이 호감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마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직 후에도 여전히 들려왔다.

"독하다. 지독해, 너."


그러고 보니 난 지겹다고 느꼈던 적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직장을 다닐 때도 무섭고 두렵고 슬펐을 뿐, 지겹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지겨운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에서 조금도 자리를 내어주지 말아야지.




중학교 때는 '수학의 정석'이라는 크기가 작고 두꺼운 문제집을 사서 그곳에 바로 풀지 않고 공책에다 페이지와 문제번호를 적고 풀었다. 그래야 새 문제집처럼 다시 풀 수 있으니까. 문제집 사는 돈을 아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을 테고 그렇게 그것을 5번, 풀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두 번째 풀 땐 조금 더 빨리, 그다음부터는 가속도가 났다. 다시 술술 풀어나갈 때,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풀어냈을 때, 마지막 페이지까지 깔끔하게 정리하여 끝냈을 때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것이 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수능시험에서 수리영역에서는 만점을 받을 수 있었으며,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수학과외로 월세를 충당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많은 직렬 중 국세공무원을 선택한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그리고 여전히 나의 아이들의 수학 채점을 할 때 이 반짝반짝. 다른 길로 가더라도 같은 답에 도달하는 아이들의 생각의 미로, 그것을 볼 때 신이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지치지 않고 즐겨나갈 수 있는 방법을 나름 찾아가고 있었던 듯싶다. 같은 문제집을 풀 때에도 종이를 자로 이리저리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서 더 보기 좋게 써보기도 하고, 문제번호의 짝수와 홀수마다 색을 번갈아 써보기도 하고, 답을 낼 때 되도록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내려 노력했다. 마치 새로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지루함이 오지 못하게 격렬하게 막아냈던 것은 아닐까.




첫째 아이를 낳고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거의 일 년을 삼시세끼 미역국만 먹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는 6개월을 그랬다. 모유수유와 사투를 벌이던 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몸이 무척 좋지 않았는데 미역국이면 밥을 씹지 않고도 꿀떡꿀떡 넘길 수 있었다. 그때는 남편이든 시어머니든 보는 사람마다 무척이나 질려했지만, 사실 지금도 난 그것을 몹시 좋아한다.


돌아보면 좋아하면서도 아니 좋아하기에 즐겨 먹으려 무던히도 노력했던 듯싶다. 어느 날은 전복을 넣어 먹고, 어떤 날은 황태, 홍합, 새우, 굴, 들깨 그리고 또 다른 어떤 날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미역만 잔뜩 넣어 끓여 먹었다. 재료만 바꿔 넣어도 푹 끓여내면 다른 색의 맛을 낼 수 있었고, 덕분에 지겨울 틈은 없었다.


한 마리의 고래처럼 미역으로 상처를 야금야금 치유해 나갔다. 미역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냄비 속 미역에게 계속 새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면서.




사직을 하고 마음을 정리할 겸, 집안의 모든 옷을 꺼내 정리했다. 대학교 때 음주와 자취생활의 자유를 만끽하느라 20kg 이상 증가한 때를 제외하고 늘 체형이 비슷했으므로 고등학교 때 옷들이 많더라. 아무 무늬가 없고 단색의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옷들. 그토록 오랫동안 입었음에도 몰랐다. 모두 비슷한 색의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소재의 옷이라는 것을.


문득 동생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니는 왜 같은 옷을 사? 집에 이런 옷 있잖아!"

그랬군. 진짜 그랬던 거다.


그럼에도 그 옷들은 내게 전혀 지루함을 안겨주지 못했다. 1번 블라우스와 A번 바지, 1번 블라우스와 a번 스커트, 1번 블라우스와 A번 바지와 #번 재킷. 이런 방법이면 1번 블라우스는 매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옷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한결같이 꼭 맞는 1번 블라우스가 지루하지 않게 나는 오랫동안 나름 노력했던 모양이다. 1번 블라우스가 집에 있는 줄도 모르고 유사한 블라우스를 음 보는 것처럼 다시 골라 들었던 걸 보면.




지금의 그림도 내겐 마찬가지다. 사직 후 매일 그렸다. 그림에 대해 먼지 한 톨만큼도 모르는 내가 무작정. 혼자서 매일매일. 물론 조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지루하지 않게 그림을 그려내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갔던 것은 아닐까?


햇살 좋은 날엔 해가 드는 창문 쪽으로 책상을 끌고 가 캠핑 온 것처럼 음악을 틀어두고 그려보기도 하고, 생각의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날엔 한껏 몰입할 수 있는 추리소설로 골라 오디오북을 틀어두었으며, 색연필로 그리다 색감을 찾는데 지치는 날엔 색감 없는 재료로 바꿔 연필 몇 자루로 그려보기도 하고, 빛의 흐름이 가득한 사진으로 골라 그려보았다면 다음은 어둠이 짙게 표현된 것으로 골라 그려보기도, 우울함에 휘감겨 그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앞이 흐릿한 때는 어서 가까운 화방으로 뛰나가 색연필 두세 자루를 사 오면 약간의 산책과 함께 새로운 색연필 친구로 작은 마음의 전환이 되니, 또다시 그리고 싶어 지더라.


나를 치료해주고 있는 나의 그림들



지루함이 오지 못하게 발버둥 치는 이런 이상스러운 습성이 내가 지루함을 모르는, 무언가에 질려볼 틈 없이 심각하게 빠져드는 방법인 것도 같다.


질리지 않고 할수록 재미가 나니 지독해질 수밖에.



어찌 보면 새로움을 모르는 아주 답답한 사람.

한 우물만 파다 아예 우물 속에 풍덩 빠져 헤어 나올 생각도 없는 기묘한 사람.

그래. 그게 나인 듯 싶다.


이젠 헤엄쳐 나오는 방법도 배우고, 우물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도, 천천히 숨 고르는 법도 배우며 다른 근사한 일도 해기로. 그래야 또 다른 어여쁜 우물 하나를 만들 수 있을 테니.


그런 날을 꿈꾸며 오늘도 지루해 보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나의 일들을 지독하게 한번 시작해 볼까:D


린- 의 그림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