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지나고 보면,
그 순간 나는 분명 내가 아니었음이 틀림없다고, 잠시 누군가의 주문에 걸려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깨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릴 용기가 없어 그만 그대로 둔다.
내가 '브런치'의 작가신청 버튼을 누른 것,
그 또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외워준 마법의 주문에 걸려든 탓일 테다.
좋은 친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으면 이 세상은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좋은 친구 한 명이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을 얻은 것과 같다. 이것은 친구와 내가 나눈 음식이나 따뜻한 옷과 약, 그 이상을 의미한다.
사람의 영혼에 최고의 위안은 우정이다. 우정이 있었기에 나는 불가능한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 에디 제이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중에서 -
나의 직장은 매해 부서 이동이 있고, 2년마다 의무적으로 서를 이동해야 했다. 그것은 매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15년을 일했음에도 나의 연락처에 저장된 직장동료의 전화번호를 세어보니 단 5명. 가족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포함된 카톡친구도 50명 미만.
이런 내가 나도 어렵다.
그런 내가 국세공무원을 그만두고 뜬금없이 그림을 그린다. 말이 내어지지 않는 소심이인 내가 감히. 제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일 두 가지를 다 해버린 게다. 새해의 마음을 가다듬다 이 일의 처음을 되짚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나 용기 낼 수 있었을까?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로 사직을 하고 보니 집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병원에 가기도 힘겨웠다. 그러다 그림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일, 혼자 갇혀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종일 내가 낼 수 있는 시간을 다 주어 그렸다.
말이 내어지지 않는 소심이인 내게는 이것이 정신과 방문보다 나의 치료에 훨씬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그런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 나라는 사람도 세월을 살고 보니 친구가 있다.
그때도 여느 때처럼 싱그러운 목소리로 나의 안부를 물어보았고, 그 소리 깊은 곳에서 걱정과 애정이 넘어 들어와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전화하는 내내 그 품에서 사랑 가득한 말들을 듣고 나면, 마음속 눈물주전자도 비워지고 비워진 자리에는 단단한 용기가 심어졌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나의 아기 좀 그려줘.
내가 네 그림의 첫 고객이 되고 싶어.
그 말을 들으며 늘어놓은 나의 그림들을 보니 그날따라 유난히 볼품없어 보였고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기한이 없고 적정한 금액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만 하고는 끝.
그렇게 고운 아이를 그렸다. 새로 이사한 뒤에는 거실 제일 가운데에 두었더라. 1년 전쯤 그렸을 테다. 다시 그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녀에겐 다른 의미로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안다. 고마움에 마음이 아렸다.
누가 보아도 부족했고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을 터였다.
초등학교 때, 우리가 알게 된 때로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나의 꿈 곁에서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욱 아쉬워했던 소중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나의 실력 따위는 중요하지가 않다.
단지 어렵게 처음 혼자만의 결정으로 박차고 나온 자리에 여전히 혼자 갇혀 있는 나를 걱정했을 것이고, 혼자가 아니라고 보듬어주고 싶었을 테고, 그동안 쌓아두고 내어놓지 못한 응원과 용기의 마음들을 듬뿍 내어주고 싶었을게다.
그녀 덕분이었다. 겉으로는 혼자 갇혀 있었던 것으로 보일 테지만, 안으로는 혼자가 아닐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들려주는 말들은 말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나를 위해 걸어주는 마법의 주문, 그 덕분으로 이제 몸도 마음도 많이 치유되었고, 세상으로 나갈 용기도, 더 신이 나게 그려나갈 용기도 생겼다.
고맙다고 전했다. 그런 내게 내가 살아있어 주어 고맙다는 말이 돌아왔다. 20대의 나날들에 내가 삶을 저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고 했다. 맞다.
인생의 어느 때는 그런 생각이 드는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시절이 그랬다. 엄마의 말처럼 눈을 감으면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세계로 잠식하고 싶었다. 엉망이던 내 모습들이 떠올라, 그것으로 아팠을 너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미안했다.
살아가는 것이 마음이 조그마한 나에게는 치열하게 버거웠다. 이제 우리 치열하지 말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에 완벽하게 걸려든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 생겼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전의 나처럼 우울의 저 끝까지 허우적대지 않을 자신이 있고, 무엇이든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도전해 볼 자신도 조금 있으며, 언제든지 내어줄 수 있는 따스한 품도 생겼다. 네가 내게 준 사랑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절대 식지 않는 나의 품.
이제 슬픔이나 어두움 말고 따스함만 나누며 살자.
그리고 그녀의 마법 덕분으로 이제는 이런 꿈도 감히 꾸어 본다. 언젠가의 나처럼 인생의 힘든 때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글과 그림으로 따스하게 보듬어주고 싶다고.
꿈이 너무 큰가,
여하튼,
'용기마법사 1호' 검거완료!
앞으로는 내가 부릴 황홀한 마법들을 기대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