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순간들이나 잊고 싶은 사람들은 가슴속 어딘가에 깊이 박히는 법. 언젠가 쏙쏙 골라내어 나만의 요술장도리로 고이 뽑아낼 테지만, 그와는 다르게 내게 전해준 처음의 온기가 너무나도 달콤해서 내 마음 곳곳에 스며들어 지워낼 수 없는 사람, 내 안에서 달콤한 풍선처럼 떠다니며 나날이 부풀어 마음속을 가득 채워주는 소중한 사람도 있더라.
지루하도록 조용해서 보이지도 않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지고 먼저 안아준 따스한 사람이 있었다.
사직을 결심하기 전 그 이후의 삶을 계획하여 두었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실상 사투를 벌이는 듯한 일상 속에서 사직을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는 사직 이후의 어떤 것도 생각해 두지 못했다.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누구에게 먼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아니 말씀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금 생각해 보니, '사직'이라기보다 '도피'에 훨씬 가까웠으므로 모든 일들이 그저 두려웠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의 도피, 그것을 간절히 바랐으나 현실적으로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집의 어두운 한 구석으로도피할 밖에.
그 쿰쿰한 도피, 그것이 바로 사직의 시작이었다.
모르는 이들은 나의 사직 소식을 전해 듣고 멋있다고, 부럽다고 하더라. 실상은 이러했거늘,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그 이면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드레스룸 앞, 가장 어두운 한 켠에 앉을 곳을 찾아 하루종일 우두커니 앉아, 나를 이겨낼 아니 당장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웃어낼 힘을 모아내는 일.
매일 울고 웃고를 반복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마음껏 어두워질 수 있는 밤시간만 기다렸다.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 오면 불도 켜지 않고 고요히 앉아 흘려보냈던 시간들. 그것은 다음날을 살아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으므로 결코 의미 없는 시간들이 아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시간들이 나를 천천히 일으켜주었다. 오늘 하루도 숨기고 싶은 나를 들키지 않고 살아낸 자신을 조용히 다독여주던 시간, 매일 떠오를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끄집어내던 시간,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의 어둠을 스스로 꺼내어 버려 버리던 시간.
그 시간들이 간절했고, 간절함만큼 힘이 셌다.
굳이 집 한 구석으로 도피하지 않았더라도 정상적이지 못한 아우라가 가득히 풍겨오는 내게 감히 누구도 다가올 수 없었을 테지만, 나 또한 한 발자국도 바깥세상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기에 집안에서 모든 계절을 감각했다. 그때의 더디게 흘러가던 하루의 시간들이 생생하다. 한 구석에서 혼자 철저히 고통스러웠다. 버리고픈 생각들로부터는 도피하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고 생각도 없이 그렸다. 어두컴컴한 방 한 구석에서 다른 세계로 가 있는 것 같은, 그림은 그야말로 나만의 완벽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혼자 지냈다.
그러다 한참이 흘러 학기 초 신청해 둔 학부모 봉사날이 돌아왔다. 일을 그만두었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혼자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신청했던 터인데, 2인이었고 그렇게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고 섬세한 그녀는 그런 나의 불안함을 단번에 알아챘다. 무언가 바삐 묻거나 요청하지 않았고,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았으며,봉사활동의 시간 동안 그저 미소 지으며 따뜻한 차와 함께 고요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같이 해주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일이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낯선 경험이었다.
덕분에 한참을 살았던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웃이 생겼다. 물론 지금도 그녀는 나의 유일한 이웃이다.
집에만 갇혀있는 나를 적어도 계절마다 한 번은 불러 사계절을 감각하게 해 준다. 그저 날씨 좋은 날을 골라 내 손을 끌고 함께 산책하며 따사로운 햇빛으로 온몸을 적시게 해 주고, 그런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기도 하고, 기억해 두었던 근사한 곳에 데리고 가 맛있는 식사도 한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그 멋진 풍경들을 그저 놓쳐버렸을게다.
그렇게 한 해의 많은 날들이 그녀로 인해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녀와 그녀와 함께한 시간으로 사람에게서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웠다.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나의 도피처에 대해 털어놓았다. 혼자 무작정 그림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비공개'로 남겨놓고 있는 나를 보고 그녀는 의아해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으며 '비공개'로 두는 것보다 '공개'로 전환하면 그림에 대한 피드백도 받을 수 있고 혼자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혹여 나중에라도 불편하다면 언제든 다시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팔로워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참 두려운 일이었다. 언제나 독기 서린 말들만 온종일 들어왔으므로 이제는 그것과 유사한 것들이 글로 전해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의 따스한 토닥거림으로 눈 질끈 감고'공개'계정으로 전환하여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남겨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을 겪었다. 물론 근사했던 경험들만.처음 댓글의 알림을 받았을 때엔 손이 떨려 읽기가 겁이 났던 기억이 난다. '좋아요'의 알림도 겁이 나서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조차 두려웠던 때이므로 그러하지 않은 디지털 세상은 더욱더 두려웠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상은 나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은 내 인생 중 어느 때보다 따스하게 말을 건네어 주었으며, 바쁜 시간에도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조언해 주고 근사한 말들로 격려해 주었다.
그녀 덕분으로 용기 내지 않았더라면 절대 닿지 못했을 소중한 인연들이다. 덕분에 그림 자체가 나를 위한 치료의 수단이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따스한 말들 덕분으로 스스로를 더욱더 치유해 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그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나의 조그마한 글과 그림이 누군가에게 눈 질끈 감을 만큼의 용기를 주고, 자그마한 생각의 전환이 되기만 해도 참으로 좋겠다.
그러니 한없이 세상에서 오그라지고 싶은, 계속 오그라지고 작아져서 결국엔 사라져 없어져버리고 싶을 만큼 기운이 빠져버린,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삶'이라는 향기로움이 진심으로 전해질 수 있을 때까지 곱게 살아가 볼 테다.
그렇게 내게 건네어준 따스함들이 헛되지 않도록 근사하게 열심히 살아내어 보자고, 오늘의 내게여전히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