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상담하는 이유

- 병원에 가도 말이 내어지지 않는 사람, 여기요..-

by 린ㅡ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 마음이 아플 땐 정신과를 방문해 보세요. 아프면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병원을 찾아가서 치료받아야죠."

라고 했던 어느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사실 내겐 병원 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렸을 때 병원에서 들려준 죽음의 세상이 두려워서였을까, 물론 그런 두려움의 이유도 마음 저변에 담요처럼 소복이 깔려있겠지만, 나를 더 곤란하게 하는 것은 의사 앞에서도 잘 내어지지 않는 나의 고약한 입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방문은 감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참는 게 덜 어려웠다.

네 덕분에 마음치료의 마술을 경험하기 전까지.




둘째 아이가 7살이던 해, 일하던 도중 유치원에서 문자가 왔다. 요지는 아이에 어려움이 있어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시고 추후 서울시에서 심사 후 선정되면 지정된 기관에서 8주 간의 상담치료를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이의 특이한 행동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던 터라 즉시 회신했고, 둘째 아이가 지원대상에 선정되었다. 배정된 센터는 동대문에 위치하여 집에서 1시간 거리, 퇴근 후 매주 한번 아이와 둘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열심히 다녔다.


도착하면 아이는 놀이치료실로 가서 40분 동안 선생님과 활동했고, 활동이 끝나면 내가 아이 담당 선생님과 현재 아이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한 주 동안 숙제도 받아오고 조언도 듣는 방식이었다.


하나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아이가 놀이치료에 임하는 40분 동안 부모상담실에서 부모 담당 선생님과 '내가' 상담에 임해야 하는 일이었다. 충분히 필요한 일이라고 이해가 되면서도 매우 불편하고 어려웠고, 결국 첫 번째 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정작 걱정하는 아이의 많은 것들이 내 탓인 것 같아 오는 내내 멀미인지 속이 울렁거렸고 집에 와서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왔음에도 말이다.



"많이 불편하세요? 그럼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편안히 쉬다가 가세요. 상담일지는 적어야 하는데 그럼 오늘은 사방에 놓인 모형들 보이시죠? 그것들로 가족을 한 번 만들어 보고 가세요."


그렇게 40분 동안 나는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다니며 모형들만 만지작거리다 갔다. 수많은 모형들 중 고르는 것도 어려웠고, 작은 방에 타인과 둘이 앉아있는 것도 너무나 불편했다.

그렇게 그날의 시간이 모두 흘러버렸다.

"죄송해요."라는 말만 남긴 채.


그리고 남은 10분을 아이 상담실에 불려 가 호되게 혼나며 짧은 시간 내 호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조금은 슬픈 얘기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겪어보니 세 번째는 더욱 두려웠다. 분명 타이틀은 아이의 상담인데 나만 어려웠다. 아이는 나와의 데이트가 좋다고 했다. 부끄럽고 감사했다.


부모상담실 앞에 서니 알 수 있었다.

난 나를 직시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슬프고 싫어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땐 내 안에 이해 가능한 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터였다.


"아직도 많이 불편해 보여요. 난 시간에 아이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안 좋은 얘기 많이 들었죠? 그거 전혀 신경 쓰지 말아요.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이 얼마나 잘해왔는지. 그런데 이 방에선 아이 얘기는 안 할 거예요. 난 당신이 스스로 편안해지도록 돕고 싶은데 한번 기회를 줄래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8주간의 치료기간이 끝난 아이의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단번에 사라지거나 내가 돌연 변화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상담의 시간으로 생각의 바늘이 아주 조금 긍정의 방향으로 틀어진 것이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사랑 가득한 아이로 성장하고 있으며, 나도 더 이상 아이로 인해 감히 불안감과 유사한 의심스러운 감정들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느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해라는 커다란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때의 어두침침한 상담실에서의 마법 같은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국세청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경우 본인의 복지포인트를 상담치료에 사용할 수 있었다.

최대 1년에 5회.

얼마 되지 않은 일이고 지금도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직원들의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고안한 일일 테다.

어디든 비슷할 테지만, 일하면서 위험한 순간들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때 나 또한 반드시 털어내고 싶은 일들이 있지만, 이렇게 회상하면서도 두려워 손이 멈추므로 아직은 아니다.



호흡곤란도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시작될 땐 괴로웠다. 첫째 아이도 호흡에 어려움을 가지고 대학병원에 가게 되면서 나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병원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집 근처 병원에서 심장전문병원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선 정신과로 안내되었다. 결국 직장과 연계된 상담센터를 먼저 방문해 보기로 했다. 별것도 아닌 그 일이 나에겐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직장과 연계된 곳이라 몹시 가기 싫었지만, 그땐 어디든 매한가지 그저 모두 싫었다.


상담 첫째 날, 또 말이 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5번뿐인 기회를 고스란히 그런 식으로 버릴 수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5회의 상담으로 결국 나는 사직을 결정하고 어렵지 않게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으며 지금의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온전하다'라는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사직을 권유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저 나의 생각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을 뿐. 하지만 그 조금은 여전히 조금이 아닌 것이다.


아론 벡은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그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으며, 환자의 생각, 그들의 자기 대화(self-talk)가 치료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동일한 객관적인 사건이 매우 주관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통찰이 벡의 새로운 접근법의 토대가 됐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은 객관적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주관적이 해석이라는 사실이다.

인지행동치료는 환자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사고하게 도와줌으로써 우울증을 비롯한 심리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이는 우리가 아동기에 어떤 고통을 겪었든 부정적인 자기 대화에 유의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부적응적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다른 기술들처럼 우리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낙관론자처럼 해석하고 반응하도록 연습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현재 우울증의 심리치료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그 효과가 항우울제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입증됐다.

- '앤절라 더크워스'의 <GRIT> 중에서 -

난 아마 정확히 이 책에 기술된 내용을 기반으로 상담받았던 듯싶고 그것이 얼마나 나를 변화시켰는지 체감했다.


하지만 상담료를 지불할 경제적인 여유가 고 말이 쉬이 내어지지 않는 나를 위해 이곳, '브런치'를 찾았고 이제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상담 중이다.


하나 이곳에서 난 생각지도 못한 치료를 받고 있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며 치유되기도 하고,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기도 하며,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나의 글을 읽어주시고 고운 말들을 남겨주시는 분들로 인해 약이 아닌 사랑으로 치유되고 있다.


내가 이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가 받은 이 감사함들을 영양 가득 키워내어 고스란히 내어낼 수 있는 날이 오면 모두 내어주기 위해.


오늘도 언제나처럼 나의 자리에서 열심히 그리고, 쓰고, 또 다듬는다.


차곡차곡 감사함을 쌓아낸다.


그 근사할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