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약방' 그리고 '인스타그램 약방'

- 아날로그형 소심이의 약방 두 곳 -

by 린ㅡ


린- 인스타그램 약방
린- 브런치 약방



'1주 1포스팅'

나와 나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몰아붙일 것이 분명하므로,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지 않는 것 또한 나와의 약속이고.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시달되는 업무를 마친 후, 잠자기 위해 퇴근했던 15년도 넘은 습관이 사직을 했다고 하여 단번에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새벽녘 고양이처럼 살살 걸어 나와 초콜릿과 믹스커피를 단번에 삼켜내는 것, 딱 그것까지만 같은 뿐.

오늘 하루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많은 날들을 보내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을 기에 적당한 시간을 알아낼 수 있었으며, 그것들을 중심으로 하루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치 내가 나에게 시달하는 업무를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해내는 재택근무 중인 워킹맘의 기분이다. 물론 수입은 전혀 없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는 3년,

'브런치'를 시작한 지는 1년.

모두 미지의 디지털 세상이며,

완료나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절로 두 눈이 꼭 감기는, 아날로그형 소심이인 나에게는 보통 어려운 세상이 아니다.


그림과 함께 시작한 '인스타그램'이므로 그곳의 세상은 손과 눈을 깎는 고통이라면,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의 세상은 머리와 가슴을 짜는 고통이라고 할까.


매일 아무도 모르게 혼자 소리 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손가락으로 조금만 올려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인스타그램',

그 안의 세계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몰입 시 쉽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른 그 아이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도록 늘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나는 분명 숨을 쉬기 위해 그리기를 시작한 것이므로 호흡이 가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다.



반면 '브런치'의 세상은 반대였다. 글을 읽기 위해, 생각하고 그 글의 세계로 깊게 빠져들기 위해 손가락으로 밀어내지 않을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나의 글쓰기에는 심각하게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은 잡히지도 않았고, 겨우 잡아 곱게 모아 써두고는 다음 날 읽고 경악을 하며 지워내길 1년.


그렇다고 다시 완성한 글이 더 근사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매일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손 모양만 연습하듯 움직이지 않는 두 손. 그리고 그 안의 경직된 열 손가락. 글을 쓸 때 나의 모습은 정확히 그러했다.


아무도 모르니 다행이지, 누군가 보고 있다면 그런 말이 절로 나오지 싶다.

참 힘들게 산다..




1년을 두고 보면 지독히 아픈 때가 있더라.

그럴 때면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다.

그리려고 충분히 쉰다. 빨리 나아 그리려고.


또 그 1년 안엔 지독히 우울하고 슬픈 때도 있더라. 마음이 아픈 때. 그럴 때면 아무 말이나 써버리고 싶다.

'쓰고 싶다'는 말보다 '써버리고 싶다'는 말이 적당하다.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마음을 글자로 내어 마음에서 버려내고 싶으니.


그리하여 그림과 글, 이 둘은 지금의 나에게 완벽한 치료제인 것이다.



처음 보는 맛없는 약을 삼켜낼 때 고통스럽듯 내겐 아직 넘겨내고 소화하는 이 과정이 서툴러 사투를 벌이듯 고통스럽지만, 이것 말고는 아직 다른 치료제를 찾지 못했으므로 끊어낼 수가 없다.

둘 다 나의 몸과 마음의 유일한 약인 셈이다.


혼자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내적 동기도 중요하지만,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외부적인 도구도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은 나에게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다.




처음 무작정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그린 그림들은 엉망이었지만 소중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인스타그램' 안에 포스팅하며 남겨놓기 시작했다. 혼자 그리는 그림은 스스로 체크해보지 않으면 문제점을 알기 어려우므로 포스팅을 비교해 가며 익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계정에 주기적인 포스팅을 위해 스스로 다독이듯 열심히 그려내었으니, '인스타그램', 그곳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선생님이자 감독관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남긴 기록들이 지금 내게는 커다란 보물이 되었다.


'소심왕'이라고 불리던 내가 포스팅했던 용기가 신기하고, 지금껏 쉬지 않고 그려왔던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간들 내가 가졌던 여러 가지 마음의 변화와 빛깔들이 전해진다.


시작은 그저 깊은 우울감을 망각하기 위한 일이었기에 울며 그렸던 기억이 난다.

아른아른했던 눈물 종이들.


하지만 조금씩 몰입하면서 울 사이가 없어졌고, 그렇게 슬픔의 색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언제 다시 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난 슬픔 그 자체에 빠져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색과 방법을 찾는데 빠져있을 것이므로 깊은 슬픔이 내 안에 들어올 공간이 없을 테니까.




혼자 매일 끄적거렸다. 그러고는 가족들이 볼까 봐 숨겨놓았고. 이곳저곳 낙서된 나의 마음을 정리해주고 싶던 무렵, 이곳 '브런치'를 찾게 되었다.


'소심왕'이라고 불리던 내가 작가 신청도 했고, 초심자의 행운 덕분으로 이곳에 있을 수 있었다.


그땐 몰랐다. 나의 수첩에 나를 꺼내놓는 일과 이곳에 꺼내놓는 일이 이렇게나 다른 기분일 줄은.


아직도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멈춰있는 시간이 훨씬 길며, 글자로 내어지지 않는 답답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울함이 나를 찾아오려 할 때나 잊지 않고 남겨두고픈 순간과 마주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곳부터 떠오른다. 정작 자판 위의 손은 다시 모형처럼 정지되지만.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타입의 사람이므로 '브런치'와 친구가 되기 위해, 마음이 열리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따스함은 이미 충분히 전해졌으니 이제 내 마음의 문제이다. 나의 총체적인 언어능력 부족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판 위의 내 손이 신나게 피아노 칠 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날, 내가 너를 듬뿍 사랑해 줄게.

아직은 어려워. 조금만 기다려줘. '브런치 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