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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l 02. 2022

나를 위한 처방전

작년 3월에 사직서를 낸 즈음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해오는 일들이 있다.

사실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난 나만의 공간에서 빈틈없이 하루를 메워 매우 바쁘게 보내고 있다.

난  이런 말을 평소에 많이 듣는다. '제발 좀 쉬어라!'

쉬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나다. 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이지 아마 알고 나면 엄청나게 가속도가 붙어 아주 신나게 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만의 공간이라고 하니 특별하고 근사한 공간일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난 내 방도 없으니 거실에 교자상을 펼쳐 앉으면 그곳이 내 공간이 된다. 아주 오픈되고 집중하기 어렵지만, 아이들의 소리에 바로 대응할 수 있고 부엌과 세탁실과 인접하여 바로 집안일에 투입할 수 있으 현재의 나에게는 최적화된 공간, 펼 때마다 나무 조각이 으스러지는 이 오래된 교자상 앞이 나의 조그만 사무실이자 나를 치유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실행되는 날 위한 처방전들 남기어볼까?



1. 4시 30분, 시작!


사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5시가 나의 보통의 기상시간이지만, 사직 후 1년은 거의 4시 반에 아무리 피곤해도 일단 눈을 감고 유령처럼 흐물거리며 걸어 나와 정수기의 물로 대충 섞은 믹스커피와 초콜릿으로 내 머릿속을 깨웠다. 4시 반이라는 기상시간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었으나 그것은 내가 가장 효율적으로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일찍 일어나는 것에 길들여져 있고 남편은 새벽 4시에 출근 준비를 하고 나간 부재의 시간,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이 절대 깨지 않을 4시 반 정도가 나에겐 가장 적당한 때였다.

그리고 믹스커피와 초콜릿! 이것은 완전히 불량스럽고 비추천적인 조합이나, 나는 초콜릿을 참 좋아하고 오랫동안 장에서 간식을 먹을 여유가 나지 않 습관에 초콜릿이라면 종류를 따지지 않고 환장했으며 값싼 초콜릿을 대량으로 구매하면 아침마다 500원 정도이면 초콜릿을 뱃속 가득 즐길 수 있으니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아침식사의 조합이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운 날에도 이 달콤한 믹스커피와 더 달콤한 초콜릿을 상상하며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 자체만으로 이렇게 나를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적당한 카페인과 뇌가 좋아한다는 탄수화물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불량스러워 보이지만 내게는 사랑스러운 아침식사이다. 길들이기 어려울 수 있는 이른 기상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로 아침식사의 조합을 만들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찾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야무지게 즐기고 보니 이 근사한 습관에 완전히 중독되어 버렸다.



2.


눈을 비비며 초콜릿을 꺼내어 달콤한 커피를 죽 들이켜고 나면, 바로 다이어리를 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의 공정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나의 공정 중 일부였다. 오늘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을 확인하고 내 마음을 꺼내어 나와 대화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아직 기록방법은 나의 마음대로다. 오늘 꼭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의 말이 있다면  그것을 죽 써 내려가고, 많아진 스케줄들에 필요하다면 정리도 해보고, 읽고 있는 책 중 남기고 싶은 구절들이 있다면 나만의 북 노트에 옮겨적으며 내가 읽은 책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순한 일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되는 일임에도 이것은 내 안의 부정적이고 불편한 것들을 떨쳐내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과였고, 언젠가 힘이 들 때 열어보는  기록들이 나에게 강력한 충전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 기록의 습관에 깊이 중독되었고, 이것이 내가 지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사직 전 직장에서 연계된 상담치료를 간 적이 있었다. 가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상담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엇을 해도 삶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분노했던 그 시기에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것은 다해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햇살 눈부신 날 반대의 마음을 안고 갔던 첫걸음이 기억난다. 사람이 싫어서 생긴 병인지라 처음 만난  분과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은 내게 숨 막히게 불편한 상황이었다. 내가 느끼는 것 그대로 상대방도 느껴졌을게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하게 따뜻한 차만 마시고 가라고 하셨다. 분명 슬픈 문장이 아닌데 그때 내겐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을까? 말은 거의 하지 않고 잔뜩 울고만 돌아왔다. 대신 숙제를 내주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 한 가지만라도 아오기, 아주 사소할수록 좋다고도 하셨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와 같은 조금은 희한한 일들만 떠올라 일주일 동안 꾸역꾸역 억지로 떠올린 것이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였다. 선생님은 내가 오랫동안 에 불편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어 병으로 자라나려 하니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보내 주어야 하는데, 말이나 표정, 행동 등으로 표출하지 못한다고 하니 제일 좋아하는 일들로 꺼내어보자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 책 좋아한다면 책을 읽지만 말고 책을 다 읽고 나서든 읽는 중이든 그것에 관한 나의 생각이나 느낌들을 조금이라도 적어보라고. 그림을 좋아한다면 전시회 관람이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지 말고 무슨 그림이든 작게라도 우선 그리는 것을 시작해 보라고 하셨다. 내 마음속에 담아내는 것 외에 밖으로 내는 활동들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많은 것들이 나오게 되면서 마음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절대 잘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금은 잘하려고, 성공해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고 하는 일이라고. 상담 당시 호흡이나 나의 모습들이 불안정하여 정신과 약 복용도 함께 권하셨는데 요즘은 약을 거의 먹지 않고 있다. 물론 가끔씩 호흡에 어려움을 여러 날 겪게 되면 약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 외의 많은 날들은 이렇게 열심히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3. 그림


뜬금이 없다. 지난 세월 동안 그림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살아왔고 경제학과 호텔경영의 나의 전공만 보더라도 그러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어릴 적 내가 정말 미치도록 좋아했지만 가정형편상 좋아한다고 말로 꺼내면 안 되었던 그 일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다. 안 하고 죽으면 눈을 감는 순간 분명 가장 후회할 일이었다. 그것이 소심하고 용기 없는 내가 조용히 혼자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이다.


사직을 앞둔 12월 나의 생일날,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커다란 박스를 내밀었다. 100개가 넘는 색연필컬러링북이었다. 언젠가 내가 그림 그리고 싶다고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 선물을 안을 때 살랑였던 내 마음의 온도를 난 절대로 잊지 못한다. 혹여 내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함이 느껴지는 때에는 그날의 그의 마음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그런 사소한 부정적인 마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 색연필이 내가 실제로 그림을 그리게 된 첫걸음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그 거대한 색연필 박스를 오픈했을 때 그 색연필의 냄새, 그 어스름한 빛에 반짝이는 스케치북과 그 평온한 고요의 기운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 시작의 첫날부터 빠져버린 그림이 1년이 지난 지금 나의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주일의 스케줄이 모두 기본적으로는 그림 그리는 시간의 확보에 맞춰져 다른 스케줄이 정해진다.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초조함과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순식간에 내 온 마음을 덮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절대 잘 그리지 못한다. 고작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린 남아 둘을 돌보며 얼마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나 스스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바쳤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양은 부족했고, 아직 스스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온전히 에너지를 쏟아붓기 불가능했다. 그러니 잘 그려내서 그림이 좋았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내가 그릴 수 있음에 행복했다. 내가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계이다. '내가 하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구나'하고 신비로웠고 한편으로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지내온 세월과 고통들이 지금의 나의 감정을 극대화해 준 것이 아닌가 싶어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던 원망 가득했던 세월들이제 감사함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그림은 분노의 나를 완전히 돌려놓은 마법의 약이다. 처방전을 받으러 병원에 예약할 필요도 시간을 낼 필요도 없고, 몸이 별로 반기지 않은 약을 복용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필요한 때 언제든지 맘껏 용량에 상관없이 부릴 수 있는 그림이 지금 내겐 나를 위한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다.



4. 책


사실 난 책을 어렸을 적부터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수업시간에 갑자기 독후감을 쓰라고 하여 난 난감했고, 결국 텔레비전에서 본 것으로 겨우 스토리를 알던 심청전으로 매우 짧게 썼던 기억이 난다. 책은 지난 세월 동안 나의 관심에 조금도 자리잡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럴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전혀 없던 시절들이었다. 것도 아마 핑계일 터이다.


2019년 즈음, 출근길 지하철에서 겪던 호흡 이상 증세가 이유를 모른 체 날로 심해지던 날, 직장동료로부터 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사실 전혀 관심 가지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편지와 함께 받은 선물이라 처분하기엔 마음의 가책이 들어 가방에 한 권 넣어두었는데 그날따라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려니 숨쉬기가 너무 두려워서 그것을 잊으려 아무 생각 없이 가방에 있던 그 책을 꺼내 읽어 내려간 것이 나의 책 읽기의 시작이었다. 나와 비슷한 감정들을 기반으로 다룬 짧은 단편 모음집이었는데, 난 그 어쩌면 나의 호흡곤란을 잊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출근길에 책을 눈앞에 가까이 갖다 대고 완전히 집중하여 천천히 몰입하며 읽었다. 그 책들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처음으로 서점에 가서 책 곳곳을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표지와 책의 촉감을 가지고 내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으로 골라 아침마다 려움 잊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물론 과는 미미했지만 그때 나는 책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도피처였다.


그렇게 독서를 시작해 사직 후엔 한 달에 2권 이상 읽기가 목표였다. 아직 독서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어 대중교통으로의 이동 시간이나 기상 직, 잠들기 직전만 활용하고 있다가 요즘은 오디오북에 흠뻑 빠져 내내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말 꿀맛 같은 시간이다. 나를 안정시키고 스스로 응원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책 덕분이었고, 사람으로 상처받아 오랫동안 가족 외의 타인과 소통 없이 지냄에도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분명 늘 가장 친한 친구 내 곁에 있어주었던 책 덕분이었다. 다독이든 정독이든 읽기라는 행위로부터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 곁에서 언제나 나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근사한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커다란 위로, 그 자체였다.



5. 영어


난 영어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아니 공부를 목적으로 학원을 다녀본 적이 거의 없다. 엄마는 를 중학교 때 학원에 보내본 적이 있는데, 다녀와서는 학원에배울 게 없다며 다니지 않겠다고 내가 선언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작은 떡볶이 가게 아픈 몸을 겨우 이끌고 나가 온종일 미니김밥을 만드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조차도 죄송한 마음에 했던 말일 것이다. 15평의 방 2개가 있던 집에서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시는 할머니, 여동생과 한 방에 두어져 뿌연 담배연기만큼이나 흐릿한 하루를 살아내며 오로지 교과서만 읽어가며 이곳에서 탈출하리라는 꿈을 안고 살아갔다. 그 외의 꿈은 없었다. 내가 학비이며 생활비를 감당하겠다고 겨우 설득하여 서울 소재 대학교 입학하며 탈출의 꿈을 이루게 되었고, 혼자 세상을 바라보며 내게 부족한 것들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나는 따져보자면 극소심의 성격으로 내 안의 감정이나 의견들을 밖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참 고약한 성격이다. 이런 내게 영어는 또 하나의 신세계였다. 남의 시선이나 감정들을 생각하며 절대 표출해내지 못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다른 언어로는 훨씬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영어실력이 매우 부족하므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머릿속이 불편한 일이지만, 영어로 말할 때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한, 참으로 아이러니한 행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영어로 말할 때는 내가 그 문장들을 한국어만큼이나 즉시 직시하지 못함으로써 부정적인 표현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되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의 표현 자체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겨를도 없이 훨씬 솔직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외국어 공부는 내게 즐거움과 통쾌 그 자체였고, 동시에 나에게 진심으로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아직까지도 난 요즘 어린아이 수준의 영어 단계에 있지만, 언젠가 영어를 활용한 자원봉사를 하게 되는 날을 꿈 꾸며 즐거이 배워나간다. 유창한 수준의 완벽한 영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고 내 안의 나를 꺼내어 내는 수단으로써의 언어 공부이기에 이 또한 나를 치료해나가는 방법일 수밖에 없다.



이것들은 내가 항상 하는 것들이며, 아파 잠시 멀어졌다가도 반드시 찾아 다시 하게 되는 일들, 내겐 즐거움과 위로 그 자체가 되어버린 중독적인 일들이다. 어떤 때는 이것들을 조금 덜 좋아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잠도 자지 않고 할 때가 많다. 지금껏 못했던 욕망의 풍선이 한꺼번에 터져버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여하튼 나는 지금 조금 심하게 '탐닉 중'이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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