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마다 신사역 근처에 위치한 화실을 가야 하므로지하철을 타고 한강 위를 지나게 된다. 멀리 보이는 근사한 경치를 보려고 유리문 쪽에 바짝 다가갔다가 바로 아래 내려다보이는 짙은 회색빛의 한강물에 숨이 가빠진다. 수많은 기억들이 스치며 잠시 고통스럽지만 나아질 거라 여기며, 아니 나아져야 한다고 다독이며, 강물의 잡아먹을듯한 어지러운 일렁임을 주시한다.
요즘 내 머리 한 구석에는 여기서 추락하면 무엇을 잡고 떠있을 수 있을까 하고 주변을 살피는 때도 있는 걸 보면 이제 살고 싶지 않다던 마음은 사라진 게 분명하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책장을 크게 정리하면서 중고책 팔기를 해보았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때가 많아 책장이 책으로 넘쳐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처음 읽기 시작했던 책들이 하나같이 죽음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려 무지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고, 속이 잘 꺼내어지지 않던 내가 나만의 공간에 갇혀 갑갑한 하루를 견디며 오랫동안 곱씹었던 의문이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 내가 이 삶을 끝까지 견뎌내야 하는 이유를 책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책은 내가 이것저것 이상한 질문들을 물어도 날 이상하게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고, 내가 궁금한 것들에 최선을 다해 답을 알아내어 줄 것 같았다.실제로 책은 내가 가장 힘들 때 언제고 시간을 내어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되어 주었다.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찾아오는 호흡곤란의 고약한 느낌이 들 때, 난 죽음의 관련된 책들에 더 깊게 파고들었고 책은 나의 그 트라우마적인 시간 동안말없이 언제고곁에 있어주었다. 지금도 매우 가까운 곳에 다다르는 외출일지라도 반드시 책을 들고나간다.
이제 죽음에 관련된 책은 아니지만, 그것은 신발을 신고 외출하는 것과 유사한 당연한 습관이자,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살아갈 수 있는 마법의 부적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주 흐릿하면서도 또렷한기억 속 한 장면이 있다.
중학교 때 두 친구와 학교 근처에 있는 바다로 갑자기 버스를 타고 갔던 모양이다. 장난치고 놀다 보니, 내가 하릴없이 바다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중이었고,눈앞에 함께 가라앉은 잔뜩 구겨진 빈 새우깡 봉지를 보며 '이게 죽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동해바다는 몇 걸음만에 발이 안 닿을 정도로 깊어진다. 이후 눈을 떠보니 난 구조된 상태였으나, 덕분에 그 일 이후 물에 대한 엄청난 공포감이 생겼다.
그리하여 직장인이 되어 첫 월급을 받고나서단번에 수영이 생각났다. 수영을 배우면 물에 대한 공포감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직장 바로 근처에 다행히 좋아 보이는 건물 꼭대기에 수영시설과 각종 피트니스 시설이 있어 바로 등록했다.
가장 오른쪽 레인에서 수업이 이루어졌고 첫날 수업은 그 직사각형 레인을 걸어서 몇 바퀴 도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수영장 가장자리의 딱딱한 시멘트 벽을 잡고 걸었는데, 레인을 돌아오는 길은 완전히 달랐다.빨강, 노랑, 파랑 등 색색깔의 동그라미를 끼고 일렁거리면서힘없이 떠있는 줄, 그 레인 구분선을 잡고 돌아와야 했다.작은 물의 일렁임에도한껏 출렁이는나약한 레인 구분줄은 내가 꽉 잡아도 내 몸을 전혀 지탱해주지못했으므로감히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아니 몇 걸음 내디뎠다가 혼자 몇 번을 고꾸라지고 소리치는 바람에 강사분께선나로 인해 수업 진행이 안된다고그 시간이 끝나고 수업료를 모두 환불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물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물에 가두어져 청테이프로 숨구멍을 다 봉쇄해 버린 것 같은 숨 쉴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워터파크와 같은 곳에는 놀러 가지 못한다. 목욕탕에 몸을 푹 담그는 것도 두렵고, 한강 위를 지나는 지하철에 있을 때면 순식간에 과자봉지와 함께 숨을 못 쉬고 가라앉기만 하던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휩싸인다.
직장인이 되고 한강물을 내려다보면금세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물에 대한 내 마음의 공포이자, 그 공포심으로 이곳에 뛰어들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한 공포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있어 '사직'이라는 결정은 단순히 일을 그만둔다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단 한 번도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을 거스른 적이 없는 나에게는.그래서 그 결정 자체가 파격적이었지만,오랜 시간이 걸린 어려웠던 선택이었던 만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타인의 만족감의 대상이 되지 않게 오롯이 나에게만 귀 기울이기로. 언젠가 삶의 끝이라는 순간에 직면한다고 해도 나 스스로에게는 후회 없이 미소 지을 수 있을 만큼 내 멋대로 나머지 시간들을 꾸려나가기로.
내게 직장은 나의 오랜 트라우마의 공간이었다.
2008년 즈음 간이 망가져 쓰러졌을 때,겨우 기어가컴퓨터를 켜고 수십 번사직서를 고쳐 쓰면서 10년 후에도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면 여지없이 그만두라고 용기 없고 불쌍한 나에게 속삭여줬다. 그렇게 10년 뒤 내게 그 말은 고대로 전해졌고, 더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정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10년 뒤의 나는 더 많은 것들에 속박된 터였으므로 사직을 하는 데에는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길고 거대한 트라우마의 시간은결국더 용기 있는 나로 만들어 주었다. 아직 그 상처 난 기억들을 곱게 부수지는 못했지만 피하지 않으려 한다.
고스란히 떠오르는 두려운 감정들과 잊고 싶은 기억들은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나를 괴롭히지만 이제 언제고 마주하여 잘게 부수어낼 것이다. 돌이키고 돌이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때까지.
트라우마도 내가 겪었던 경험 중의 일부일 뿐이라고 되뇌어본다.좋은 경험이 있었던 것처럼 좋지 않았던 경험도 있었을 터인데 나라는 사람은좋지 않았던 일들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것이라고. 좋지 않았던 그 감정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고 그것에 휩싸여 스스로 거대한 감정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하지만 그것들처럼 좋지 않았던 경험들에서 사소하더라도 깨달음은있었을 테고그것으로 난 조금이라도더 성장할 수 있는 조각들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와 같은 경험들을 더하게 된다고 해도 그 불편한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을 이겨내고 있는 내 자신에게 마음을 쏟으려 한다. 마음에 새겨진 소중한 조각들을 모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