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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Dec 11. 2022

영어공부 어디까지 해보았니?

- 두 번째 이야기, Ellin~~! -

아시지요?
요령이라면 할 톨도 있지 않습니다.
또 아시지요?
여전히 못해요.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할수록 재미가 나는 영어를 즐기는 다채로운 방법들이에요. 아주 재미가 나서 질리지가 않게 된 두 번째 방법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소소한 영어습관이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이것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것이 나의 영어마인드를 고쳐준 커다란 전환점이기 때문에.


사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가져야 할 터인데, 나처럼 말이 내어지지 않는 소심이의 경우 사람과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았다. 늘 속으로 푸념만 했다.

'난 왜 이런 사람만 만날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돌처럼 굳어있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는 것은 너무나 큰 요행이었고, 해코지하려는 이들은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항상 내게 먼저 다가온 쪽은 이쪽이었다. 여하튼 그것을 깨닫고 난 이후였지 싶다. 내가 먼저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




영어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던 나는 궁금했다.

원서 읽기는 영어실력 향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다른 방법도 함께해 보고 싶었고. 그럼 사직 기념 나에게 주는 선물로는 완벽했다.

'영어회화 학원'


찾고 찾다 이상하게 도돌이표처럼 돌아왔 페이지.

마음 이끄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등록과 관련해 문자로 문의를 드렸더니, 바로 테스트를 잠깐 해도 되겠냐는 답변이 왔다.

그럼 난 이렇게 답장드릴 수밖에.

"전화로 영어 테스트요? 그럼 전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다시 예전의 전화영어 알레르기 같은 것이 쇼옥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폭신폭신하게 달래어 마침내 꽁꽁 얼어붙은 나의 열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편성된 반이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90분 동안 영어로 대화나 토론하기.

인원은 4명 미만. 한국어 불가.


그러고 보니 그곳은 일산에 위치하고 있어 가는데만 1시간이 꼬박 걸렸다. 홍대 근처에 사는 터라 근처에 비슷한 종류의 곳들이 많았는데, 난 그렇게 열기가 힘들다는 내 입을 열낸 그곳에 홀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곳은 나에게 단순한 어학원이 아니었다. 어로 진행되는 마음상담센터였다.

어도 에게는 그랬다.

야말로 나라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마법 같은 공간. 처음으로 내가 먼저 다가간 그곳엔 따스함만이 있었다.




'처음은 언제나 두렵지.'라고 생각하고 간 수업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Ellin~", "Ellin!", "Ellin!!"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영어로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지온화한 미소를 가득 담은 사람들이 내가 대답할 때까지 나만 바라보며 기다리는 그 고요의 시간, 나는 는 눈을 그려놓은 돌처럼 굳은 채로 "Yes.", "I'm sorry"만 몇 번 하고 돌아왔다.


1년 반을 그곳과 함께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기에는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가 아팠을 때 한 두 번 빼고는 빠진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멤버들이 자주 바뀌었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나였다.


영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마음의 불편함, 생각처럼 표현해 낼 수 없는 답답함, 좌절감, '내가 이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불확실성, '내가 이것을 왜 하고 있는 걸까'하는 의구심 등 수많은 감정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격렬히 다투었다.


처음의 6개월 정도가 고비였던 듯 싶다. 

그런 수많은 감정들을 달래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기까지는. 실제로 각자의 그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다. 

초반의 격렬한 6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것은 영어라는 다른 언어에 적응하 자신의 음을 다독거리는 시간이기도 했고, 선생님과 멤버들에게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매주 재미있는 프린트를 만들어 수업을 하셨고, 음성파일과 함께 Listening 숙제, 오늘 배운 주요 표현들 활용한 영작과 더 나누지 못한 주제에 대한 Writing 숙제, 그리고 그 숙제를 녹음하여 음성파일로 제출하는 Speaking 숙제! 매주 숙제 만만치 않았다.


수업시간은 주로 대화와 토론만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어로도 토론에 참여해 본 적 없던 소심왕인 나에게는 충격적인 수업방식이었지만, 그렇게 1년 반을 하고 나면 그 어떤 주제에도 마음에 평안이 온다.

조금. 아니 아매우 조금.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평온함,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선생님은 내가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나는 준비하지 않으면 몹시 불안사람이므로 처음 수업에 임할 때는 프린트물의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노트에 정리하고 어느 정도 외워갔다. 하지만 실상 내게 던져지는 대부분의 질문들준비된 주제가 아때가 많았으므로 즉흥적으로 말을 내어야 했고, 한국어는 금지!, 한국어가 서툰 선생님이 고개를 도리도리 하실 것이므로  어떻게든 영어로 설명해내야 했다.





그렇게 일 년 반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상대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일컫는 정확한 단어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아는 쉬운 단어들을 총동원한다면 충분히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


대화에 완벽한 준비는 필요가 없다. 그것이 영어라 할지라도. 마음의 문제일 뿐. 


내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으려는 노력, 내가 상대방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진심으로 전달하려는 노력, 그것제일 중요하다. 그것을 나의 몸과 마음이 전적으로 이해하는 순간 그곳은 '영어공부', '영어학원'이라는 개념보다 나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친구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으로 임하게 된다.



그리고 깨달은 또 한 가지.


내게 영어는 꺼내기 어려운 마음들을 조금 더 쉽게 낼 수 있는 도구 중의 하나였다. 마음에서 꺼내기 어려운 불편한 이야기를 할 때는 영어로 말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아마 그것이 내가 선생님과 비교적 단시간에 깊게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커다란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말을 낼 때에는 슬프고 부정적인 감정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정신이 분산되므로 감정 그 자체에 빠지지 않고 말로 낼 수 있었고, 말로 냄과 동시에 해석되어 귀에 담아지는 속도가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디어서였을까,


어둠이 온 마음을 덮었그때 내 마음을 꺼내기에는 영어가 훨씬 편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도 내가 영어를 항상 곁에 두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은 '음악심리치료'를 공부 중이셨다. 그러니 나의 마음의 상태를 알아채시고 늘 내게 생각해볼 만한 질문, 분명 생각해보면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질문들을 내어주신 게다. 그리고 내가 쏟아내는 부정적인 대답들을 즉시 유연하게 아름다운 해석으로 돌려놓으셨다.


머리 위에 먹구름을 가득 안고 간 날에도 선생님과의 수업 끝에는 무지개를 얹어 돌아갈 수 있었으니, 영어에 나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시는 그녀와의 시간을 생각하며 아픈 날에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기꺼이 달려갔다. 내가 먼저 용기 내어 다가가 찾아낸 소중인연이다.


그런 곳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바로 이곳, '브런치'때문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고, 도저히 글 쓰는 시간이 내어지지를 않아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과 함께한 영어의 시간들은 내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다양한 학습방법들을 알려주었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나만의 영어공부 방법을 찾아 영어와 야무지게 지내고 있다.


'무의 상태'에서 즐거이 스스로 습관처럼 영어와 함께 하기까지 이곳이 튼튼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상스러운 영어공부 방법들을 다음에 남겨보기로 하고,

I'm dying to see you, Ju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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