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Dec 28. 2022

당신의 마음속엔 당신이 있나요?

- 나에게 주는 칭찬 한 알 -


저물어가고 있다.

나는 저무는 그 시간들을 좋아한다.

한 해를 돌아보저 멀리 아쉬움부터 힘껏 달려와 내게 안기려 하므로 그를 맞이하기 전에 기어코 칭찬 하나만 찾아 먼저 안겨주고 싶다.




사방이 막힌 곳, 불도 켜지지 않은 암흑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갇혀있는 기분으로 살았다. 용기 내어 도망가 보아도 그것이 그것인.
한 치 앞이라는 것도 없고 조금의 희망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이대로 견디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날들. 한 발을 내딛을 기운도,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할 마음도, 그럴만한 곳도 없던 날들이 생생하다.
감히 희망이나 행복 따위를 꿈꾸지 못했다. 꿈꾸고 싶지도 않다.
삶은 내가 지었을지 모르는 죄에 대한 대가로 평생 견뎌내야 하는 형벌,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주어지는 일들을 고스란히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살아오면서 본 어른들의 삶이기도 했다.
나의 머릿속 생각의 미로에는 입구도 출구도 없는, 그래서 밝음을 찾아 따라갈 길이 없는 생존을 위해 파놓은 구덩이 같았다.
오롯이 고통을 느껴내기 위한 삶의 구덩이...

여기까지가 예전에 기록해 둔 나의 오랜 일기장 속 이야기들의 편집본이다.


다시 읽으며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어제 일처럼. 그때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조금 읽다 얼른 일기장을 덮었다.


맞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울하고 슬프고 무기력한 극단적인 부정주의자.



그래.

나는 어쩌면 여전히 그런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얼마 전, 하필 나의 생일.

올해도 여전히 일 년 중 가장 피하고 싶은 . 어머님이 보내주신 반찬에 밥을 먹으면서도,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지내라며 다시 오셔서 잡아주시는 두 손에도, 선물을 주고는 고이 잠든 남편 얼굴을 보면서도, 생일축하한다며 꼭 안아주던 아이들의 숨결과 멀어지면서도,

행복함들을 알면서도 그 모든 날을 울었다.


아직은 내가 태어난 것에 호기롭지 못했고 슬펐다. 올해도 슬픈 음악은 여전히 내게 금지곡이었으며 통화버튼을 누르거나 밖으로 내딛는 걸음은 힘겨웠다. 평온함에 마음을 놓았다가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그 마음은 다시 순식간에 수렁으로 떨어졌다.


그런 시선에서 본다면 난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다.

내가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쳤던 그 자리.

내가 벗어났다고 착각했던 바로  자리.




아니다.

깊게 돌아보아야지.

깊은  안의 시선에서 본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새벽이면 종종 고꾸라지는 때가 있었다.

출근하려 세수를 하고 돌아 나오다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잠시 후 정신이 들면 내일 아침 같은 상황으로 혹여 다칠까 봐, 나의 아침 동선에 뾰족한 가구나 짐이 없도록 치워두었다.

그야말로 언제든 고꾸라져도 괜찮도록.

'왜 쓰러졌을까?',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 '병원을 가봐야겠다.'등을 고민하지 않았다.

다치면 아이을 돌볼 사람이 없고 직장에 못 가면 당장 나의 세적을 돌보아줄 직원이 없다는 생각, 철저히 나를 배제한 걱정. 


그때 나의 생각의 미로에 '' 없었다.

내 머릿속에 '나'라는 것,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 지금 기분이 좋.', 

''나' 오늘을 무엇으로 채워볼까?'

나의 머릿속에 드디어 '나'를 데려왔다. 

이렇게나 바뀐 게다.



언젠가 말했었다.

"난 아이 절대 안 낳을 거야. 나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다 너처럼 사는 건 아냐."

"그래도 나처럼 살 수도 있잖아."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하루를 근사하게 살아내려 노력한다. 나 같은 삶을 살게 하려고.

형태가 같은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이 없는 하루하루근사한 일들로 채워 즐겨나가고 있는 나처럼 아이의 인생도 그만의 멋진 일들 가득 채워나가길 바다. 이렇게 아이 존재 자체가 나의 삶 커다란 동기가 되어  또한 더 삶답게 살아가려 노력다.


이렇게바뀌었다. 바뀌었말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색을 물었다.

그땐 "이 색은 이래서 싫고, 저 색은 저래서 싫지."라며 좋아하는 색을 물은 질문에 싫어하는 색과 이유 아닌 이유들을 많이도 가져다 대었다.


얼마 전 다른 누군가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

이제는 "이 색은 이래서 좋고, 저 색은 저래서 좋아!"라며 좋아하는 색을 신이 나서 말다. 미워할 색 하나도 없었다. 미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이렇게 나머릿속 생각미로 새로운 길을 내어가는 중이다. 입구도, 출구도, 쉬어가는 곳도 만들어가며.




제주로 향하던 어느 날, 하늘이 잔뜩 구름과 함께 웅크리고 있었다. 두려움을 가득 안고 검은 구름 속으로 이륙했고 기류에 휘말려 내내 휘청거리고 나니 그다음 눈부신 햇살이 기다리고 있더라.


그 마법 같던 하늘이 꼭 인생 같았다.

구름 위로 올라서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바람까지 보태어 흔들어댔고, 한동안 그러고 지쳐갈 때 즈음 그 위엔 내가 몰랐던 근사한 세상이 있었다.


긴장과 불안, 초조함으로 오랜 시간 손을 움켜쥐었지만 이것이 지나가면 언젠가는 고요와 평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이것을 안다. 알기에 헤쳐나갈 수도 있을 게.


생각하지 못한 고난과 아름다움들, 그 모든 것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제는 조금 신나게 살아가고 싶다.



과거의 내가 하루 종일 눈물이 내리는 9시 방향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면, 지금은 그 9시 방향을 등지고 3시 방향의 따사로운 햇살만 바라보며 미소 지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눈물이 난다. 나의 미소와 행복함이 9시까지 미치지 못했으므로. 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순식간에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니, 향이 틀어지지 않게 나를 유지하는 일, 그것은 매 순간 상당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이렇게나 노력한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주 그 반대의 슬픔으로 돌아간대도 내가 등을 돌려 스스로 반대방향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그거면 충분하다.



나의 세상에서도 다른 이들의 세상에서도 슬픔이 걷어지고 용기 있는 따사로움이 지배하길 바란다.

그러니 너무 크게 절망하지말라고 나에게도, 나의 아이들에게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고이 알려주고 싶다.


가까운 곳에 기대하지 않은 사로운 희망이 있다고 속삭여줄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곁에 있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영어공부 어디까지 해보았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