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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Dec 18. 2022

엄마라는 향기.

- 집에서도 밖인 것처럼 -


긴 머리를 했던 예전의 어머니 위로가 더 좋았다.
어머니가 나를 꼭 끌어안으면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물처럼 내 얼굴에 흘러내리곤 했다.

-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 중에서 -


사직 후, 알았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엄마 머리카락 정말 부드럽다. 머리가 너무 예뻐."

9살인 둘째 아이는 틈이 날 때마다 빗으로 나의 긴 머리카락을 빗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아주 심취해서.


"엄마, 오늘 좋은 냄새가 나네! 계속 안고 있어 줘."

아이의 하교 직전 화장실 청소 겸 샤워를 한 날은 내내 매미처럼 내게 붙어있었다.


"그 옷 어디서 났어? 오늘 엄마 예쁘네!"

입을 옷을 찾지 못해 직장에 입고 다니던 불편한 원피스를 입고 그가 하교 때 데리러 가면 유독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와 내 두 손을 낚아챘다.



둘째 아이도 역시 남자아이이다.

첫째 아이와는 달리, 너무나도 예민하고 섬세하며 예쁜 것을 좋아하 아이. 

그것이 한때는 커다란 고민이기도 했던.

그의 평생 유일한 장난감은 '실바니안 패밀리', 토끼 소꿉놀이가 10살인 지금도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이다.



사직을 하고 보니 둘째 아이 생애에는 처음으로 내가 그의 곁에 상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리고 그는 나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그렇게 1년 그와 지내보니, 이제야 난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었다.




정신없이 직장을 다니던 시절, 너무 아파 몇 시간 조퇴를 했었다. 그러고는 시어머어서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씀드리고 내가 둘째 아이의 유치원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아이가 나를 보는 순간, 차에서 내리지 않고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대했던 사람이 아닌 엄마라는 사람을 보고는 화가 많이 난 듯 울부짖으면서. 그날 아이는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서 있었던 것에 단단히 실망했던 모양이었다.

돌아보니 난 이기적이었고 깊이 슬펐다.


하원 차량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므로 유치원 선생님께서 아이를 이끌어 내리려 했고, 결국 억지로 내린 아이는 혼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넘어지듯 달려가 사라져 버렸다. 



그날 나는 마음이 아픈 탓에 다행히 몸이 아픈 것은 느끼지 못했다. 고통은 분명 상대적인 탓이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은 둘째 아이에 대한 나의 핵심 기억이 되어버렸다.


내가 아이와 지낸 시간에 대한 결과지를 받은 기분. 그렇지 않아도 엄마로서 실격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그때, 확실한 방법으로 내게 알려준 기분. 그리고 아이의 지난 고통을 한꺼번에 고스란히 안은 기분.



몇 년 전 그랬던 아이는 이제 매일의 루틴처럼 쉴 새 없이 내게 달려와 안긴다.

우리 모두 변하기에 슬픔이 슬픔에 머물지 않고 행복으로 변할 수도 있다. 서로의 코드를 알아내어 아주 조금만 노력한다면.




어렸을 때, 난 집에서 입는 해진 옷들이 무척 싫었.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티셔츠, 길이가 줄고 줄어 배가 차가운 티셔츠, 고무줄이 없는 것 마냥 늘어진 밴딩팬츠, 모양이 비대칭스럽게 줄어 움직이기 불편한, 정말 말 그대로 해지고 해진 옷들.


이 옷들은 도대체 어디서 났을까가 궁금했다.

이 옷들은 처음 볼 때부터 이런 형태였으므로.

가족이 아닌 타인의 앞에서는 입지 않을 옷들. 서랍을 열면 잔뜩 그런 옷들이었다.


그것이 가장 사랑스러워야 할 가족들에게 가장 못난 모습을 보여주시작점이라. 그것 때문에 족들에겐 사랑스러운 말들보다 격하고 못난 말들이 쉽게 나오 것 같아 가족의 불화를 괜히 그 못난 차림새 탓을 하기도 했다.



결혼한 이후, 특히 사직 후 예민한 둘째 아이와 밀접히 생활하게 되었을 때 난 절대 그런 옷을 입지 않았다. 물론 그 정도의 옷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성인이 된 후, 가 옷을 구입할 때 항상 목이 늘어나지 않을 옷으로 유념해서 샀고 고무줄이 있는 밴드형 옷도 잘 사지 않았다.


지금 고등학교 때와 체형이 비슷하고 옷을 자주 사거나 유행에 민감한 편이 아니어서 고등학교 때 입던 옷이 몇 벌 있었지만, 사직할 무렵 찢어지고 구멍이 난 것들은 버리고 줄고 줄어든 옷들은 깨끗이 세탁하여 의류수거함에 넣어두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옷들이라 작은 몸을 가진 누군가에게 소중히 입혀지길 바라면서. 

그렇게 내게 맞지 않는 옷들은 억지로 입지 않았다. 




사직  매일 주말도 없이 나가던 이전과 비교하면 외출할 일 지만, 나매일 깨끗이 씻고 리도 감고 외출할 것처럼  갈입고 하루를 시작했다. 외출복이라고 해야 거창할 것이 없고, 단지 파자마가 아닌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언제든 달려 나가도 괜찮은 옷으로. 이 보아도 되는 옷으로.


이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 아이가 내 품에 더 안길 수 있게 한다면야. 


그리고 외출 유무에 관계없이 선크림과 체리 립밤까지 기본적인 메이크업을 해둔다. 정말 언제든 달려 나가도 괜찮은 모습으로. 아이가 생기 넘치는 나의 모습을 훨씬 좋아하는 듯했고, 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픈 것이 아니냐며 걱정했으므로.


그렇게 그의 사랑코드를 알아냈다.

사랑 가득한 엄마라는 향기, 그를 맞이하는 예쁜 차림새, 그리고 시간을 멈추어두는 듯한 따스한 품.




사실 나는 씻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씻으려고 보면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이 눈에 보이므로 함께 청소하고 나면 큰일이 되어버리니 씻는 것이 싫어졌다....라고 하기에는 게으름의 탓이 크다. 그래도 사직 후 매일 아주 잘 씻어왔다. 특히 예민한 둘째 아이가 하루에 열 번 이상 내게 안기므로.


"엄마, 안자!"

"엄마, 지금 안을 시간 돼?"

"엄마, 오늘 덜 안았지? 그러니까 대신 길게 안자!"


그가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없이 코를 옷이나 머리카락에 파묻고 오랫동안 안고 있다 방으로 돌아간다.

조금 피곤했던 날에는 "오늘은 힘드네"고 말하며 조금 더 안고 있다 간다.


나의 향기와 머리칼의 부드러운 촉감, 따스한 포근함이 그에게는 말로 건네는 위로보다 더 힘이 센 것 같아서, 나도 그의 머리칼만 쓰다듬으며 고이 그 시간을 멈춰.




집에서 차려입는다는 것.

내겐 단지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고 있는 것일 뿐, 대단하게 차려입는 것이 아니다. 에게 위로가 되는 엄마라는 향기를 유지하기 위해 씻고 단장하며, 그가 안정감을 느끼는 부드러운 머리칼을 위해 빗으로 머리카락도 열심히 빗어두고, 그러다 어떤 날에는 아무 일이 없어도 분위기를 바꿀 법한 그의 취향인 원피스를 입어보기도 하고.


이것은 단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며,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에 대한 나만의 예의기도 하다. 



씻기 싫어하는 내가 이렇게나 노력해서였을까.

둘째 아이는 격양된 거친 표현을 내지 않는다.

그의 말은 독특하고 감미롭다.

가까이하는 친구가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가족들에게 표현하기 어려울 법한 사랑의 표현들을 가득 내어준다. 나는 그 말들을 야금야금 먹으며 다시 씻을 기운을 내는 것이고. 



"하지만 그거 알아? 나만 빼고 남자 셋이서 여행을 떠나는 날엔 있잖아.... 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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