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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Oct 09. 2022

"엄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 흐음.. 아니거든 -


사직서를 제출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모처럼 마음 편히 낮시간에 씻지도 않은 채, 9살 둘째 아이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와 한참을 소파에 기대 안고 있었다. 갑자기 내 배 위에 앉은 채 내 가슴에서 얼굴을 떼며 울음을 터뜨렸다.

쉬이 멈추지가 않았다.


"왜?"

"엄마가 많이 늙어서. 죽을 때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그래? 세수를 안 해서 그런가 보다!"

"아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그래? 그런데 늙는 게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야.."


힘든 나날들이 지난 뒤였다. 이 지쳐 보였을게다. 그리고 아이의 말처럼 정말 많이 늙어버리기도 했을 테고.





이제 어엿한 10살이 된 그와, 어제.


"엄마, 요즘 안 늙은 거 알아? 아주 살 날이 많아진 것 같아. 이젠."

"그래?" 하고 울을 집어 들었다.

"엄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아니야~ 기분이 좋아서. 즘 엄마가 어떤가 하고 보려고 했지."

"엄마,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글쎄. 어렵네."

"바로 시간이야. 지금 시간. 오늘은 지나가면 내일로 다시 돌아오지를 않아. 그러니까 얼굴에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그림 많이 그려. 난 다녀올게."

라고 말하고는 학원으로 신나게 달려가 버렸다.





이 말이 슬픈가?

써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다.


분명 1년 전보다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1년 전 울며 내게 했던 말이  본인의 마음에  었던 것이다.


집 한구석에서 하루 종일 혼자 앉아 1년 넘게 그림만 그리고 있는 나를 응원해 주고 있는 이다. 간혹 "엄마는 친구가 없어?" 물어보며 걱정하면서도 웃으 곁에 항상 머물러 주었던 아이이자 친구.

어떤 날은 "엄마, 이 그림은 좀 맘에 안 드는데 열심히 했으니까 됐어!" 핀잔을 줄 때도 그것은 름대로 나에게 최선을 다해 건네는 응원의 말이었을 게다.


그의 희한한 위로의 말은 더 희한한 내게 완벽히 들어맞았고, 그것은 그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보이지 않는 눈물로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1년 전 그날처럼.



내가 나를 치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감히.

네가 나를 그동안 돌보아주고 있던 걸 몰랐다.

아이의 눈으로 불안한 나를 알아채고 관심을 쏟아주고 있음을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들이 의도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별빛처럼 마음에 박히는 때가 다. 메모장에 남겨두거나 되뇌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더없이 빛이 나는 보석 같은 말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을까?


아이들의 마음을 유난히도 열어보고 싶은 날, 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콕 박혀 빛이 되고픈 그런 날이었다. 너처럼.




돌아보니 내가 늙었다고 아이가 울어댈 그때에도 그리 힘들 것이 없던 나날들이다. 지난 수년간 늘 있던 곳에 나는 자리하고 있었고, 해왔일들 아무런 의식 없이 반복하고 있었을 뿐. 


아이가 늙지 않았다고 하는 지금과 차이점이라면 단 한 가지. 그땐 내 안에 내가 없었고, 지금은 그 안에 내가 오롯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고 내 마음의 공간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시절,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지나가는 풀잎들을 보아줄 여유만 내 마음속에 있었더라면 그런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진 않았을게다.



자, 그럼 다음은 이제 다시 늙어 보일 차례인가.

음.. 그건 절대 안 되지!

내년엔 더 깜짝 놀라게 해 줄게.


사실, 엄마는 외모에 신경을 조금 써...: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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