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을 안고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꼬박 두 달인 지금의 겨울방학은 언제나 어렵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부모는 긍정적인 부모이지 싶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단단한희망의 마음으로 아이에게 미소를 건넬 줄 아는 사람. 아이를 키우기 전엔 그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감히 나는 부모라는 자리를 탐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별한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부모로부터 배어 나오는평온함과 안정감은아이의삶에커다란 거름이 된다. 억지로 만들 수도 없고 급하게 만들어지지도 않는 그 탄탄한 거름. 내게는 그것이 아직없다. 없다는 조바심만 가득하고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우울감과 죄책감을 만든다. 이상스러운 사이클이다.
그리하여'혼공'을 시작한 아이 곁에 함께였던 나는 어려웠던 한 해였고, 아직도어렵기만 한 긴 방학의 시간을 우리는 함께 보내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작년 새해 첫날,첫째 아이는 모든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하루종일 집에서 보내니 지루하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고, 하나를 다니면 또 다른 것을 배우고 싶다며 그렇게 영어, 놀이수학, 수영 학원을 시작으로 음악줄넘기, 축구, 플루트, 체스 등 방과 후 수업을 4개나 참여했다.꼬박 4년 동안 쉰 적이 없었다.
그는 나와는 완전히 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이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므로 학원을 놀러 가듯 신이 나서 열심히도 다녔다.
한 번도 학원을 바꿔본 적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안 사줄 거야"가 벌칙이라면, 나의 아이에겐 "학원 그만두게 할 거야"가 가장 무서운 벌칙일만큼 학원 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같이 다니는 친구도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고, 그렇게 신이 나서 다니니 선생님들마다 칭찬일색이었으므로 그 또한 희한한일이었다.
그런 아이가 돌연 모두 중단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못된 시나리오들이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고, 그것이 유일한 이유랬다.
나의 아이이기에 타인보다는 내가 조금 더 잘 안다고 착각했고 그렇게 그의 말은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좋지!"라고 흔쾌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때마침 내가 사직한 터라 그의 제안에 흔쾌히 응할 수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의 학원중단선언이 '나'와 이렇게나 상관있을 줄이야.
그렇게 1년 전, 요즘 유행하는 '혼공', 말로만 듣던 '혼공의 시대'가 우리 집에도 찾아왔다.그것은 내가 그의 선생님이자 친구, 동시에 부모도 되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유를 얻었고, 나는 부자유를 얻었다.
그는 행복하다고 했고,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이는 1년이라는 우당탕탕의 시간을 보내면서 본인만의 학습법을 익혀가고 있고 본인의 취향도 찾아가고 있으며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있다. 학교시험 결과가 나쁠 때는 본인 탓, 결과가 좋은 때는 본인 덕분.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깨닫고 터득한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한 해 동안 스스로 공부한 결과가 모두 좋았고, 요즘은 본인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를 알고 관련 시험 등을 찾아 준비하고 있으며, 무엇에 어려움이 있는지도 파악하고 내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지극히 나의 관점이므로 종종 그에게 물어보았다.
"학원 그만두니까 어때? 네가 생각한 대로야?"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 나는 이제 스스로 할 줄 안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항상 행복하니까."
이렇게 결론만 두고 보자면, 그에게는 '매우 훌륭함'을 붙일 수 있을 한 해였을지 모르겠으나, 이 과정의 나날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내게는 '매우 불편함'이라는 스티커를 붙여주고 싶은 해였다.
'혼공', 그것은 하루종일 오롯이 나와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였다. 먼저 그것은 내가 아직 다 치유하지 못한 감정들을 숨길 장소가 없다는 의미였다. 내겐 단연코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잠시도 말하기를 멈추지를않고, 먹는 것을 사랑하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가퐁퐁 솟아오르는 그.
말할 기운도 없고, 먹는 것을 싫어하며,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나.
소개팅 상대로 만났다면 그의 큰 덩치와 쉴 새 없이 내어놓는 이야기에, 5분도 되지 않아 도망 나왔을게다.
그런 그와 거실에서 함께 지금도 각자 자신만의 '혼공' 중이다.
그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내게 구구절절 설명해 주고, 틀린 것을 내내 투덜거리며 틀린 이유와 자신의 문제해결방법을 궁금해하지 않는 내게 정성스레 이야기해 주며, 쉬는 시간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요란하게도 재충전을 한다.
또한 나보다 20킬로그램이 더 나가는 그는 계속 배고프다며 밥을 요구하고, 나는 온갖 논리를 다 섞어가며 그의 식욕을 고요히 잠재워 주어야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가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게 곁에서 더 신나게 추임새를 넣어주며, 그의 잠재웠던 식욕을 보상해 줄 법한 근사한 식사를 준비해 주는 것. 딱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인 그 일들이 내게는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나의 온 시간과 정성을 내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아이가 잠든 후에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그의 쉴 새 없는 말들에 조용히 생각할 틈이 나지 않았고, 생각할 수 없으니 글쓰기도 험난했다. 모든 것이 나의 욕심이라 생각한 날도 많았고, 이유도 없이 우울함이 몰려올 때나 잊고 있었던 호흡의 곤란함이 찾아올 때면 잠시 다 두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 보이지 않게, 아등바등 치열하게 적응하려 노력했다.
'혼공'이라는 혼란에 적응하느라 1년을 폭풍같이 보내고 나니, 앞으로의 날들이 다시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은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시간을 기대하게 된다.
내가 아이들의 아토피의 늪으로부터 조금의 자유를 얻는데 십 년이 걸렸듯이, '혼공'이라는 이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