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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pr 12. 2023

'소심이'의 꼭대기층 생존기

- 명랑쾌활 '두 남아'의 꼭대기층 생존기 -


암회색 빛깔생각구름이 머릿속에 틈도 없이 가득 하나, 말이 내어지지 않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층간 소음은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곤혹이다.




처음 신혼집을 얻어 두 번의 재계약을 거치는 동안 위층의 이웃도 여러 번 바뀌었다. 종일 민원에 시달리는 업무였던 터라 아무리 위층에서 쿵쿵 요동을 친다고 해도 말할 기운이 없었다. 그냥 고이 귀를 닫고 나면 지쳐 잠들어있더라.


그러다 점점 심해져 위층 부부의 한밤 중 싸움이 두꺼운 천장을 뚫고 음절 하나하나 고스란히 전해질 때엔 무슨 사달이 나는 것은 아닌가 무서웠다. 잠을 자는 것은 고사하고 거친 욕설과 우당탕탕 물건들이 나뒹구는 소리는 공포였다. 

그야말로 낮과 다름없는 밤의 시간.



처음 이사를 결심했을 때 첫째 아들은 3살, 둘째 아들은 나의 뱃속에서 야단스럽게 놀고 있었다. 두 남아를 둔 이사였지만 고민하지 않고 말씀드렸다.

"꼭대기층 매물만 보여주세요."


마음 졸이는 밤의 시간이 싫었다. 밤의 시간만큼은 어떤 것에도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만은 두려움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기에 새로운 집의 조건은 유일했다.

'꼭대기층'





몇 주 뒤 출산을 앞둔 터라, 꼬마 아들과 이사를 마치고 나니 그야말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이사하는 동안 시끄러웠을 터, 짧게 손 편지를 쓰고 케이크도 사서 아래층 이웃에게 인사를 하러 내려갔다. 첫째 아들 손에 케이크를 쥐어주고, 나의 한 손은 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부푼 나의 배를 받친 채로. 

위층 이웃으로 가히 호감적인 비주얼이 아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대답이 없으니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 위층에 새로 이사를 왔어요. 오늘 많이 시끄러우셨죠?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빵 좀 나눠려도 될까요?"


"저희 그런 거 받고 싶지 않아요! 전에 계시던 분 때문에 넌더리가 나요. 받지 않을 테니 앞으로 조심해 주세요."

뚝!

닫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아, 나와 같이 많이 시달리셨구나.

조그마한 아이의 손이 민망히 여겨졌다. 동시에 아이는 거절당한 케이크를 먹을 생각에 신나 보였고.


'혼자 올걸.' 

아이와 처음 하는 이사라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하지만 서운함만큼이나 속이 무척이나 상한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덕분에 아이와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 저번 집에서 시끄러워 속상한 적 많았지? 이분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우리는 쿵쿵거리지 않을 수 있지? 약속!"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아이가 가까스로 '23'버튼을 누르고, 뒤이어 누군가 그 바로 아래버튼을 눌렀다.

"너구나."


빙그레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예전에 서운하셨죠? 전에 너무 시달려서 그랬어요. 저희 때문에 신경 쓰지 말아요. 저녁 맛있게 먹으렴, 아가."

그날 이후 아이는 아래층 이웃의 얼굴을 게 되었고, 오며 가며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고 아랫집 보수와 관련하여 확인할 것이 있어 여차저차 연락처를 교환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서로의 번호를 알게 되었다. 물론 보수가 끝난 뒤로 연락한 적은 없었고.



그리고 다음 사무실에 출근한 어느 날, 아침 일찍 문자가 도착했다. 아래층 이웃으로부터.


"오늘 저희가 이사를 갑니다.
진이랑 민이랑 가족들과 행복하세요!
전 윗집에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위층으로서는 아래층 이웃에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죄인이 되는 심정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소음이 있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나의 경우에는 명랑 쾌활한 남아 둘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니 얼굴을 뵈면 우리 모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처음 인사를 갔을 때, 그들의 마음의 문처럼 문을 닫은 채 열어주지 않던 아래층 이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먼저 그분들이 인사를 건네어왔고,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만날 땐 아이의 이름을 붙여 다정하게 인사하여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했다.


물론 우리도 '소음의 예절'을 지키려 열심히도 노력했다. 본인 아이의 어렸을 때가 생각나신다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껏 즐겁게 내라고 말씀 주셨지만, 듣기 싫은 시끄러운 소음이 삐져나오는 날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마지막 인사를, 그것도 가장 바쁠 이삿날, 이렇게 좋은 말들을 가득 담아 전해주시니 감사할 수밖에. 그분의 말처럼 나야말로 당신과 같은 이웃을 만나 참 좋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어떻게 꼬마 아들 둘과 살며 아랫이웃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위층이웃으로부터 괴로웠던 억이 있었고, 게다가 이사 후 아래층 인사를 갔을 때 조심해 달라는 강력한 경고를 받았기에 아이들 스스로 이웃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다. 다행히 커가며 경계심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예의를 배워나가게 되었고.


주말엔 눈을 뜨자마자 놀이터나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야말로 루종일을 뛰어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너무 춥거나 더운 때엔 도서관으로.  전혀 읽지 않는대도 책들에 익숙해지길 바라면서 열심히도 달려 나갔다.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주말에는 눈만 뜨면 나가는 습관을 들였던 덕분에 지금도 주말 동안 이른 시간부터 야무지게 보내는 편이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바닥에 두꺼운 매트를 모두 깔았다. 청소하는 것이 몹시도 불편하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은 참도 쿵쿵 경쾌하기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소심이가 산 육아용품 중 가장 고마웠던 물품이었다.



그렇게 다행스럽게도 첫째 아이가 13살이 되는 동안 우리는 아래층 이웃으로부터 층간소음의 민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물론 무엇보다도 우리가 마음이 넓고 근사한 이웃들을 만난 덕분일 테고.





올해 6학년이 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등교할 때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어.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친구가 탔어. 학교를 갔더니 그 여자친구가 우리 반에 있더라고. 그래서 물어보니 그 친구가 우리 바로 아래층살아. 그 친구는 정말 조용한 친구거든. 하........."

유난히 긴 한숨이었다.


세상에, 같은 반 친구의 아랫집 이웃이라니!

좋지,,,,,,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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