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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l 14. 2023

너는 모를 너의 이유.

- 마스카라, 핸드크림, 사과껍질 -


마스카라 = 눈물금지


마스카라. 

나는 그것을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다. 메이크업엔 소질이 없는 탓인지, 나의 눈매가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탓인지, 그 모든 것을 합한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것 그저 어렵다. 그렇기에 내가 마스카라를 하는 것에는 보통의 쓰임과는 다른 이유가 있다.


눈물경보가 발령되었다는 것.

우울에 잘도 젖어드는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말아야 할 별한 라면 눈물샘을 막아줄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나의 의지로는 조절이 되지 . 특히 축하해야 하는 자리나 신이 나야 할 자리에서 웃으면서 울던 때가 많았다. 고 나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은 내 마음속 그대로였다. 그래서 떠오른 묘책이  사달을 만든 마스카라, 울면 순식간에 번지는 마스카라였다. 번지지 않기로 유명한 초강력 워터프루프 제품은 절대 아니 된다.


우울구름이 내 머리를 따라다닌대도 반드시 참석해야 할 기분 좋은 자리가 있다면 난 꼭 마스카라를 골고루 눈썹에 입혀준다. 러고 서는 판다가 되고 싶지 않으면 꾹 참아야 한다. 혹여 눈물 나는 것이 들킨다면 왜 우는지 설명해주어야 하고, 한번 새어 나온 눈물은 스스로 잠그기가 어렵기에 악착같이 참아낼 수 있다.


 잘도 번지는 마스카라, 나에겐 그것이 이유 없는 눈물에 대항할  있는 최고의 무기다.


무엇을 해도 슬픈 날엔 아이를 데리러 가는 때에도 마스카라를 하고 나선다. 아이는 예쁘다며 좋아하고 그런 의도가 숨어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저 어딜 다녀왔다고 말해준다. 그러다 눈물이  떨어지면 마스카라 때문에 눈이 아프다고 하면 되니, 그렇게 이래저래 나에겐 그것이 아주 귀중한 쓸모가 있다.


언제 산 건지도 기억나지 않고 유통기한조차 지워져 지금 사용해도 되는 것인 모르겠, 진정 오래되고 오래된 그것으로 인해 눈물이 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내게 그것은 반짝반짝한 케이스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한 번은 울면서 마스카라를 하던 나를 보다 그것을 버려버리고 싶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우울함이 저 멀리 내 곁을 떠나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본래의 용도대로 어여쁘게 속눈썹을 올려줄 요량으로 즐거이 연구하며 써볼 것이다. 그렇게 언제고 널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고마웠으니까.



핸드크림 = 구역방지


직장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먹는 일부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점심때에도 밥을 넘겨내기 어려웠고 빈 속에 속을 게워내기 일쑤였다. 괴로웠지만 괴롭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장난 섞어 내는 "그렇게 안 먹으니까 비실거리는 거지."라던지 "쟤는 몸매관리하는 거야!"라는 식의 말이 듣기 싫어 갔던 어느 회식자리에서 나는 야무지게 고기를 씹어 삼켰다.


그렇게 먹은 고기가 탈이 나는 바람에 며칠 뒤 삼켰던 고기를 토해내면서 고기를 다시는 먹지 못하게 되었다.  속을 긁으며 나오던 까끌거리는 질감이나 올라오던 향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었다. 고기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나를 제외한 남편과 두 아이 모두 아토피가 심한 터라 집에서 대부분 요리해 먹어야 하며 그들은 고기를 몹시 좋아한다. 오래전에 이유식을 만들 때에는 고기를 넣고 한참을 젓고 나면 팔꿈치까지 깊게 고기냄새가 어 몇 번을 씻어도 가시질 않았다. 그러고 둘째 아이가 분수토를 하루에 몇 번이고 하니 여러 가지 냄새로 나 또한 구역이 나서 먹는 것이 힘들더라.


지금은 식욕이 왕성한 그들을 위해 삶든 굽든 매일 고기와 사투를 벌이므로 여전히 팔에 깊숙이 고기향이 밴다. 주방세제로 씻고 향 좋은 손세정제로 다시 씻어내어도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들면 손에서 고기향이 나서 밥 먹기가 어려웠다.


향에 예민한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핸드크림을 살 땐 무엇보다 향기에 집착했고, 향수를 살 여유는 없으므로 향이 오래가는 핸드크림으로 골라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자주 바르며 기분을 환기시켰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고기요리를 한 후엔 팔 끝까지 씻고 핸드크림으로 듬뿍 덮어주는 것. 그러고 나면 고기향은 핸드크림의 향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힘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나에게 핸드크림은 두 손의 보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고기향이 나의 코끝지 못하게 도와주는 방어막이자, 나의 식욕저하를 막아주는 소중한 물건인 것이다.


그들이 냉장고에 고기가 떨어질까 봐 걱정하듯, 핸드크림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그들은 알고 있으려나.



사과 껍질 = 탈출희망


과일을 그렇게 좋아한 적이 없지 싶다. 그중에서도 사과는 특히 그랬다. 그런 내가 사과 깎는 일은 참 좋아했다. 과수원에서 자라 사과를 무척나 좋아했던 엄마가 어느 날, 내게 슬쩍 과 껍질에 대한 비밀알려주었다.


"사과 껍질을 끊기지 않게 한 번에 깎으면 시집 멀리 간대."

그때부터 나는 말도 없이 조용히 집중해서 깎기 시작했다. 끊기지 않게 대단히 조심조심, 몹시도 열심히. 그렇게 단번에 끊기지 않고 깎아내는 일에 매번 성공했다.


"그렇게 멀리 시집가고 싶어?"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정말 당신 곁을 떠나겠다는 어떤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재의 나 자신 상황이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열심히도 깎아내던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슬펐을까. 어리석게도 는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과는 먹는 용도가 아니라 내겐 껍질을 깎아내기 위함이었다. 잠시 희망이라는 것을 꿈꾸었던 시간. 


그러고 이렇게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 멀리 시집을 와버렸다. 울산에서 서울로. 정말 사과 껍질의 마법이 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꿈꾸었던 희망만큼 좋았냐고 묻는다면 덩그러니 가족으로부터 멀어져 고립되어 살아간 시간들이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먼 곳에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게 된 일을 사과껍질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 그래야.. 지..


그럼 이제 어떤 곳을 꿈꾸며 사과껍질을 깎아볼까.

빠르게,

얇게,

끊기지 않게 한 번에,

눈감고서도 잘 깎아낼 수 있는데 말이지...: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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